FASHION

FROM KELLY TO BIRKIN

그레이스 켈리와 제인 버킨, 두 뮤즈의 이름에서 시작된 가방은 이제 에르메스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우아함과 자유, 상반된 두 세계가 하나의 메종 안에서 이루어낸 조화.

에르메스 켈리 II 새들 백 32, 에르메스 버킨 백 30 든 여자 모델 사진

(왼쪽) 에르메스 켈리 II 새들 백 32 사이즈 (오른쪽) 에르메스 버킨 백 30 사이즈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버킨 백과 켈리 백은 배우이자 가수로 활동했던 제인 버킨, 그리고 배우에서 모나코 공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탄생했다. 먼저 세상에 나온 건 켈리 백이다. 1930년대, 에르메스의 4대 회장이자 디자이너였던 로베르 뒤마(Robert Dumas)는 단단한 잠금장치를 더한 남성용 가방을 디자인했다. 이는 ‘사크 아 데페슈(Sac à Dépêches)’라는 이름 그대로 서류 가방이었다. 그레이스 켈리는 이 가방을 1954년 영화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에서 들었는데, 전설적인 영화 의상 디자이너 에디스 헤드(Edith Head)가 부유하고 우아한 미국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가방을 마음에 들어 했던 그레이스 켈리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가방을 반납하지 않은 채, 오히려 여러 개를 추가로 구입했다. 1956년, 모나코 공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에르메스 가방으로 가리고 찍힌 사진이 <라이프(Life)> 매거진 표지를 장식하면서 ‘켈리 백’이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에르메스는 1977년에 이를 가방의 공식 명칭으로 채택했다. 켈리 백은 제작 방식에 따라 부드럽고 유연한 르투르네(Retourne)와 구조적이고 각이 잡힌 셀리에(Sellier) 타입으로 나뉘며, 사이즈는 25·28·32·35cm 등 다양하다. 그레이스 켈리가 사용한 켈리 백 중 한 점은 2017년 아르퀴리알(Artcurial) 경매에서 10만 유로(약 1억 3000만 원)에 낙찰된 바 있다. <라이프> 표지에 등장한 가방은 현재 모나코 대공궁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다.

2022 F/W HERMÈS 런웨이 사진

2022 F/W HERMÈS

한편 버킨 백의 역사는 1984년,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시작됐다. 에르메스 5대 회장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 옆자리에 앉은 제인 버킨의 라탄 바구니가 쓰러지며 안에 든 물건이 와르르 쏟아졌다. 당시 두 살배기 딸을 둔 제인 버킨은 기저귀와 소지품을 모두 넣을 수 있는 멋진 가방이 없다고 푸념했고, 장 루이 뒤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가방을 스케치했다. 그 디자인의 원형은 1892년, 안장과 승마 부츠를 휴대하기 쉽게 제작된 에르메스 최초의 가방 오트 아 쿠르와(Haut à Courroies, HAC)였다. 1984년, 장 루이 뒤마는 이를 35cm 크기의 블랙 컬러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해 제인 버킨에게 선물했다. 제인 버킨은 버킨 백을 아껴 쓰지 않았다. 가방이 터져나갈 정도로 짐을 넣어 다녔고, 스티커나 참을 잔뜩 달아 ‘버킨화(Birkinif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백꾸(가방 꾸미기)’ 트렌드의 원조랄까? 이렇게 버킨 백을 잘 사용하고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그녀 나름대로의 원칙이었다. 에르메스는 제인 버킨이 기부할 때마다, 그러니까 제인 버킨 생애 다섯 차례 버킨 백을 선물했다.

2025 S/S HERMÈS 런웨이 사진

2025 S/S HERMÈS

2026 S/S HERMÈS 런웨이 사진

2026 S/S HERMÈS

2025년 7월, 소더비(Sotheby’s) 경매에 최초의 버킨 백이 등장해 860만 유로(약 137억 원)에 낙찰되었다. 핸드백 경매 사상 역대 최고가였다. 제인 버킨은 10년 넘게 이 버킨 백을 거의 매일 사용하다가 1994년 프랑스의 한 에이즈 자선 단체 기금 마련을 위해 내놓았다고 한다. 2025년 12월, 소더비는 제인 버킨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사용한 블랙 40 모델을 다시 한번 선보일 예정이다. 제인 버킨은 가방을 인권 협회에 기부할 당시 내부에 은색 잉크 펜으로 일러스트와 메시지를 잔뜩 써넣었다. ‘LOVE JANE B’라는 이니셜과 함께 쓰여 있는 문장은 ‘Mon Birkin bag qui m’a accompagné dans le monde entier(나의 버킨 백, 나의 세계 여행 동반자)’. 사용자의 인생이 짙게 묻어나는 낡은 백은 얼마나 멋진가? 마침 이번 시즌부터 ‘오래 사용한 듯 낡은 가방’ 디자인이 유행할 전망이니 클래식에서 영감을 받아보자.

WRITER
명수진(볼드북 대표, 패션 칼럼니스트)
PHOTO
LAUNCHMETRICS/SPOTLIGHT, COURTESY OF HERMÈ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