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별 헤는 겨울밤

겨울밤을 놓쳐선 안 되는 이유에 대하여 별 애호가 4인이 답했다.

별 가득한 밤하늘

PHOTO Westend61/GETTYIMAGES KOREA

행복한 우주먼지
내가 별을 만난 것은 35년 전이다. 고등학생 때, 우리나라 최초의 별자리 안내서인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 출간되었다.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데, 정작 나는 몰랐다. 이 책을 산 친구가 야간자습을 마치고 걸어 내려오다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알려줬다. “어, 진짜로 있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모르고 보면 그냥 배경일 뿐이다. 알고 나면 보이는 것이 전과 같지 않다. 책에서 본 그리스 로마 신화 주인공들의 별자리가 밤하늘에 똑같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때부터 야간자습이 끝나면 인적이 끊긴 운동장에서 별을 보곤 했다.
작은 쌍안경으로 들여다보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여름철의 은하수 자락을 보면 수많은 작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고, 이쪽저쪽으로 시야를 돌리다 보면 중간중간 별들이 잔뜩 모여 있는 성단이나 희미한 성운도 만나게 된다. 은하수도 멋지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밤하늘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날 수 있다. 별은 밝기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가장 밝은 1등성 21개 중에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별이 15개이고, 이들의 절반인 7개를 겨울철에 볼 수 있다. 밤하늘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오리온자리부터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품은 큰개자리, 그리고 작은개자리, 쌍둥이자리, 마차부자리, 황소자리까지 저마다 1등성 하나씩은 품고 있는 별자리들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
게다가 작은 쌍안경이나 망원경으로 봤을 때 ‘우와’ 소리가 나오는 대상들도 이 시기에 몰려 있다. 밤하늘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외부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 북반구에서 가장 크고 밝은 성운인 오리온 대성운, 맨눈으로 봐도 예닐곱 개의 별이 보이는 플레이아데스성단이다. 일 년 중 하늘이 가장 맑은 것은 덤이다.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밤의 추위를 막아줄 여벌의 옷을 준비한다면 밤하늘이 충분히 보답해준다.
우리나라는 광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한 곳이다. 하지만 도심에서도 밝은 별로 이루어진 겨울철 별자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지자체 등에서 운영하는 천문대가 많다. 이곳들이 별 보기 가장 좋은 곳이다. 매우 비싸고 다루기 어려운 망원경을 무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수도권의 별 보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으로 화천조경철천문대와 강화천문과학관이 있다. 서울에서 한두 시간이면 접근이 가능하다. 화천조경철천문대는 해발고도가 1000미터가 넘어서 희미한 천체를 관측하기에 이상적이다. 혜성이 출현하면 많은 사람이 모여서 주차장이 꽉 차기도 한다. 한반도 북쪽의 높은 곳이라 태양 극대기에는 오로라가 관측되기도 한다. 2024년 5월과 10월에 촬영된 오로라는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오로라가 보인다는 사실이 놀랍지 아니한가. 우리나라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영양반딧불이천문대다. 이곳은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공인되었다. 밤하늘의 밝기를 측정해보면 전국에서 가장 어둡게 나온다. 지자체 중에 가장 적은 인구가 사는 곳 중 하나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멀리 가야 하는 곳이지만 맑고 달이 없는 밤이면 전국의 별 고수들이 달려온다.
겨울철, 별을 보면서 우주먼지가 되어보자.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 아래에 서서 광대한 우주를 느껴보자. 그런데 사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저 수많은 별 대부분이, 우리은하를 접시 정도 크기로 본다면 그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콩보다 작은 영역에 들어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광대한 우주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은하만 해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규모이지만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수없이 많다. 그러니 인간은 우주먼지일 수밖에. 어차피 우주먼지라면 행복한 우주먼지가 좋다. 겨울 밤하늘에서 별을 보면서 느껴보시라.
- 권오철(천체사진가)

영월, 별들의 소굴
우리나라에서 별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땅이라는 강원도 영월에 살고 있다. 일 년 365일 중 무려 196일이 별을 볼 수 있는 날인데, 이는 타 지역 평균보다 80일이나 긴 기간이다. 꼭 관측이라는 거창한 행위가 아니더라도 영월에서는 가로등 불빛만 피하면 어디서든 별을 볼 수 있다. 이런 천혜의 환경에서 산 지도 어언 4년 차가 되었지만, 사실 내 삶에 별이 들어온 건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미술 작가인 남편의 작업실을 구하느라 4년 전 서울에서 영월 봉래산 자락으로 이주했다.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 구할 수 있는 부동산은 시골 마을의 빈집 정도여서, 좀 허름하더라도 직접 꾸며보자며 남편과 셀프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야심 차게 첫 삽을 뜨고 시멘트 가루도 꽤나 마셨지만 한동안 즐겁게 일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사가 그러하듯 계획보다 지출은 커지고 일은 늘어났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째려보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이 어느새 하루를 마감하는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덧셈과 뺄셈을 거듭한다고 잔고가 늘어날 리 없는데, 그 당시 나는 눈앞에 놓인 숫자가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창밖 풍경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어느 날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말했다. 영월에 와서 별은 본 적 있냐고. 밤하늘의 별 정도는 좀 보고 살자고.
내 앞길이 캄캄한데 밤하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떨떠름하게 마당으로 나가 하늘을 보았는데, 정말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이 떠 있었다. 까만 허공을 빽빽하게 채우고선 나 보란 듯이 반짝거리던 별빛들. 소리 없이 고요한 밤하늘이 시끌벅적해 보일 지경이었다. 언제부터 저기 저런 게 있었지, 머쓱해진 나는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계산기만 노려보느라 아름다운 것들을 다 놓치고 말았으니까.
몇 개월 뒤 우연한 기회로 별마로천문대에 올라갔다. 그리고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한 연구원에게 별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주 공간에 떠도는 수소와 헬륨이 중력에 의해 뭉쳐서 핵융합이 시작되고, 그 순간의 열과 에너지가 우리에게는 ‘별빛’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별빛은 이미 생명을 다해 사라진 별의 흔적이기도 하다고 했다. 별의 표면에서 출발한 빛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수백만 년에 걸쳐 우리 시야에 도달하므로 그 주체인 별의 생사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어느 별의 마지막 목격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우주를 향한 나의 노파심이 되었다가 이제는 이상한 책임감으로 자리 잡았다. 나의 별 보기 루틴이 낭만적이기보다는 집요해진 까닭이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 나는 마당으로 나가서 한참 동안 밤하늘을 응시한다.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면 보일락 말락 희미했던 별빛까지 아주 선명해지는데, 오늘 뜬 별만큼은 남김없이 다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영 맥아리 없는 별빛까지 기어코 찾아내어 눈에 담으면 하루 치 별 보기 루틴이 끝난다.
별을 바라보는 일은 아직 유명하지 않은 예술가를 지켜보는 일과 닮았다. 어떤 예술은 사람들에게 뒤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은 예술을 만든 이는 이미 작업을 멈췄거나 일찍이 예술을 포기했을 수 있다. 이미 사라져버린 별의 빛이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인지 별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미술 작가인 남편과 그의 동료 예술가들을 떠올리곤 한다. 나에게 빛을 수신한 저 별이 아직 소멸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그리고 어느 예술가가 아직 창작을 포기하지 않았기를 기도하며.
해마다 많은 예술가가 각자의 현실을 이유로 우리 곁에서 사라진다. 그림을 그리는 나의 남편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강원도에 작업 공간을 마련했으니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번 작업이 미술 작가로서 활동하는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서늘한 긴장감은 쉽게 떨쳐낼 수 없다.
작년 가을, 작업실 한편에 딸린 창고를 개조해서 ‘굴(Guul)’이라는 예술가 레지던시를 시작했다. 난처한 환경에 놓인 작가들이 포기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일정 기간 6평의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공간의 제약에서 비롯되는 예술가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꺼이 작업 공간을 공유하고 싶다는 남편의 제안 덕분에 실현할 수 있었다.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레지던시와 달리 굴은 공백기가 긴 작가에게도 열려 있다. 창작의 끈을 다시 붙잡을 진지한 마음만 있다면 최근 실적이 없어도 괜찮다. 지금까지 예술가 4인이 굴을 거쳐 갔다. 예술 신에서는 굴이 제도가 품지 못하는 이들을 환대하는 장소로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별이 우주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약해지긴 하지만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별은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 에너지가 희미해지지만, 영원히 우주를 떠돌며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의 어둠 속을 떠도는 빛도 여전히 그곳에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선명해질 테니 그 여정에서 잠시 머물 ‘굴’을 만나길 바란다.
- 김가현(스튜디오어중간 대표)

우주는 이미 제철
고백한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집 불면증 주동자였다. 별이 흐드러진 겨울밤이면 옥상에 올라 언 발을 동동 구르며 토성을 찾았고, 여름밤이면 집 안팎을 왔다 갔다 하며 별을 보느라 모기를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천문학자가 꿈인 소년의 변명은 단순했다. 별이 너무 좋았다.
별을 본다는 건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이다. 달의 분화구는 경탄을, 목성의 줄무늬는 생동을, 토성의 고리는 어이없이 귀여움을 부른다. 은하수는 말을 줄이는 종류의 풍경이다. 천문대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목성만 보면 꼭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목성 줄무늬가 삼겹살 같아요! 쌤 배에 많은 거요!” 그런 장난이 섞인 밤하늘은 결국 웃음을 낳는다. 과학적 해설은 그다음에 와도 늦지 않다. 먼저 감탄하고, 그다음에 이유를 배워도 된다. “별 보기는 뭐랑 닮았나요?” 나는 별 보기가 꼭 계절 음식을 먹는 일 같다. 겨울에는 기름이 꽉 찬 대방어, 봄에는 막 돋아난 나물 비빔밥, 여름 복날엔 삼계탕, 가을이면 단맛이 도는 대하. 이것들은 꼭 먹어줘야 한다. 대방어가 없어도 겨울은 오고, 삼계탕을 먹지 않아도 여름은 지나간다. 그래도 그 음식을 먹으면 계절에 더 풍덩 빠지는 느낌이다.
별도 그렇다. 사계절 내내 우주는 저마다의 향을 낸다. 겨울엔 어느 때보다 밝은 별빛이, 가을엔 별이 수두룩 모여 있는 성단이 제철이다. 여름엔 은하수가, 봄엔 쌍성이 저마다 주인공이라며 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다만 제철 음식들처럼 먹어야 의미가 있다. 구슬은 꿰어야 보배고, 넷플릭스 신작도 틀어야 재생된다. 별도 보아야 의미가 생긴다. 고개를 젖히는 그 한 동작으로 우리는 우주의 ‘계절 음식’을 제철에 받아 든다. 먹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지만 먹으면, 고개를 들면 더 다채로운 세계가 입과 눈으로 들어온다. 우리가 좀 더 생생하게 살아진다.
아쉬운 건 도시가 우리 눈을 속인다는 점이다. 1994년 대지진 직후 LA에 정전이 닥쳤을 때, 많은 시민이 그리피스 천문대로 전화를 걸었다. “하늘에 이상한 구름이 떠 있어요.” 그들이 본 ‘이상한 구름’의 정체는 생애 처음 마주한 은하수였다. 전기는 꺼졌지만,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있던 별빛이 비로소 켜졌다. 별과 은하는 늘 거기 있었고, 우리가 만든 불빛이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별을 보러 간다는 건 새로운 걸 추가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알아보는 일에 가깝다. 존재 확인. 체크.
그러니 오늘 밤, 불 하나만 줄이고 창문을 열어보자. 별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우리가 할 일은 고개를 드는 그 한 동작뿐이다. 그다음은 하늘이 한다. 좀 더 진한 우주를 느끼고 싶다면 조금 더 멀리 떠나면 된다. 도시의 불빛이 없는 곳으로. 겨울의 대방어처럼, 봄의 나물처럼, 여름의 삼계탕처럼, 가을의 대하처럼. 우주는 이미 제철이다. 우리는 다만 맛을 보면 된다. 그 맛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 조승현(구리어린이천문대 대장)

내가 우주를 사랑하는 방식
인류가 우주를 사랑해온 시간은 정말 길다. 누구든 한번쯤 유튜브나 SNS에서 흥미롭고 매혹적인 블랙홀의 비밀이나 우주의 탄생, 외계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 등을 설명하는 영상들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최소한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모아둔 매대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집어 들고 훑어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블랙홀의 구조를 설명해놓은 그림이며 보이저 1호가 최초로 찍은 지구의 사진을 흥미롭게 응시하다가 ‘그래서, 여기가 그렇게 작고 우주는 그렇게 크단 말이지?’ 중얼거리며 책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나 역시 <코스모스>를 통해 우주와 처음 만났다. 빛바랜 필름 사진 속에서 나는 담요에 파묻혀 낡은 <코스모스>를 짐짓 진지한 얼굴로 읽고 있다. 따뜻한 핫 초콜릿과 코스모스의 시간. 세 살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세 살의 나는 다만 글을 읽을 수 있을 뿐 그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단지 우주, 별, 태양, 바다, 인류라는 단어들의 반복을 흥미롭게 되뇌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우주라는 광활한 미지의 영역을 수백 년 동안 관찰하고, 탐험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인류는 우주를 사랑해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 중 가장 무한에 가까운 것을. 불가사의로 가득차 있지만, 이 세계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유일한 단서처럼 느껴지니까. 인류는 무엇을 위해 우주의 지혜를, ‘코스모스’를 깨달으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100년 전보다, 200년 전보다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니 어쩌면 더 나쁜 길로만 향하고 있는데. 어쩌면 사람들은 그리 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부자들은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나는 다른 행성에서 살고 싶지 않다. 다른 별에 인간들이 들어차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인간은 그곳이 화성이건 달이건 똑같이 전쟁을 일으키고 가난을 발명하고 서로를 미워하며 살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우주에 대해 알아가는 만큼 우주가 작아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디에서 석유가 솟아나고, 어느 행성에 골프장을 짓고, 어떤 주식의 가격이 치솟을지 한 손에 넣고 파악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떠났던 캠핑은 정말 추웠다. 밤사이 기온은 영하 15도 가까이 내려갔고, 갖고 있는 건 주물로 만든 유단보 하나와 핫 팩 몇 개가 전부였다. 잠이 오지 않아 어두운 텐트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결국 점퍼를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남은 장작을 그러모아 물을 끓이고 홍차를 우리며 꽝꽝 얼어붙은 강 위로 떠오른 별들을 바라보았다. 어느 행성의 밤이 이럴까 싶은 순간이었다.
우주는 고독하고 쓸쓸해야 한다. 나는 그저 아주 먼 곳의, 확인되지 않은 생명체와 영원히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고 싶다. 이 끔찍한 우주가 끝날 때까지 다 식지 않을 백색왜성이 보내는 빛을 바라보며, 영원히 우주를 그리워하며 사는 것. 그래서 우주와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차갑고 어둡고 외로운 곳으로 향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주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 한정인(뮤지션)

EDITOR
백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