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불확실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양자역학의 권위자인 채은미 물리학과 교수와 함께 일상과 학계, 과학의 최전선을 잇는 양자적 행보를 따라가 봤다

채은미 교수

채은미 교수는 레이저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빛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실험물리학의 길에 들어섰다.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서 극저온 분자와 레이저를 활용한 양자 기술을 연구하는 동시에 과학을 쉽고 친근하게 전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최근 더 많은 사람에게 양자역학과 양자 컴퓨터의 세계를 알리고자 첫 대중 교양서로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를 펴냈다.

2025년은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UN이 지정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다. 하지만 일반 사람은 여전히 양자를 기존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로 여긴다. 미국 2위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보고서에서 양자 컴퓨팅을 인류 역사상 ‘불의 발견’에 버금가는 혁신이라 평했다. 2028년에서 2030년 사이에 상용화될 전망인 양자 컴퓨터와 양자는 우리의 삶의 판도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갈 예정이다. 유튜브처럼 대중적인 영상 콘텐츠에서도 양자를 주제로 다루며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펴낸 채은미 물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문화 영역에는 다양한 교양서가 넘치지만 유독 과학 분야, 특히 양자역학에서만큼은 교양서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채은미 교수는 어려운 수식을 최대한 쓰지 않고 쉬운 말로 양자에 대해 풀어냈다. 양자역학의 대표적 특징인 ‘불확실성’을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양자역학은 자연이 필연적으로 불확실성을 포함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넓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채은미 교수를 만나 어떻게 양자의 세계에 빠지게 됐는지, 결국 양자가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에 대해 물었다. 그보다 먼저 양자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빼놓지 않았다.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나요? 학기 중이라 연구, 수업, 외부 일정, 육아까지 네 가지 큰일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아침에 아이들 챙기고, 학교에 출근해서 수업과 연구를 하죠. 올해는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라서 과학의 대중화에 관련한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어요. 학교와 외부 일정을 마친 후에는 퇴근하고 집안일과 한바탕 육아에 전념하는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이번에 신간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을 펴내셨죠. 제가 요새 다양한 곳에 강연을 다니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어요. 양자역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니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이죠. 국내에는 양자역학에 관한 몇몇 좋은 책이 있지만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양자 컴퓨터에 대한 책은 별로 없더라고요. 게다가 양자 전문가를 위한 책은 있어도 대중적인 교양서는 찾기 어려워서 한번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가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라는 것도 한몫했고요. 책을 집필하기 전에 최대한 수식을 안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하지만 원고를 쓰다 보니 수식을 아주 안 쓸 수는 없었고 가능한 한 최소화해서 쉬운 말로 풀려고 노력했죠.
양자란 무엇인가요? 책 속에 언급한 미국 이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양자역학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했다니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맞아요. 초창기에 양자역학은 철학에서 많이 언급됐어요. 그만큼 양자역학은 직관에 반하는 내용이 많고, 심오한 학문이에요. 한자로 ‘양 양(量)’과 ‘아들 자(子)’ 자를 쓰는 양자는 양과 단위를 표현하는 개념이에요. 영어로는 ‘퀀텀(Quantum)’이라고 하는데, 셀 수 있는 양을 의미하는 ‘Quantity’에서 유래했죠. 이는 양자역학이 기존의 고전역학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양을 세고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암시해요. 쉬운 예시로, 우리가 극장에서 연극을 본다고 상상해봅시다. 고전역학에서는 파동으로 이루어진 빛이 연속적으로 천천히 무대를 밝히거나 어둡게 만들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빛이 아주 작은 빛알갱이, 즉 광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빛의 밝기를 광자 하나, 광자 둘 이렇게 표현하는 거죠. 이처럼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는 물리적 실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직관에 반하는 내용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나요? 가장 신비롭고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바로 양자 중첩이에요. 예를 들어 ‘0’이라는 상태와 ‘1’이라는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을 떠올려보세요. 마치 컴퓨터 비트처럼요. 고전역학에서는 0 혹은 1뿐인 값인데, 양자역학에서는 0이면서 동시에 1일 수 있어요. 이것을 바로 양자 중첩 상태라고 하죠. 마치 동전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상황과 비슷해요. 회전 중일 때는 앞면인지 뒷면인지 명확히 구별할 수 없고,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이지요. 여기서 손바닥으로 동전을 탁 치는 행위가 ‘측정’이라 할 수 있어요.

처음만나는 양자의 세계 책

양자를 아는 것은 일상에서 어떤 도움이 된다고 보나요? 직접적인 효능감이 느껴지지는 않겠죠. 우리가 19세기 유럽의 역사를 안다고 해서 오늘날 삶에 가시적인 변화가 생기진 않잖아요. 하지만 인류의 반복되는 역사를 알면 생기는 인사이트가 삶을 살아가는 데 지혜, 통찰 같은 간접적인 도움을 주듯이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 새로운 기술을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얼리 어답터가 될 수도 있겠죠.
양자 과학 기술이 미래 산업의 핵심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들었어요. 레이저나 GPS처럼 현재 널리 쓰이는 기술들은 양자역학의 여러 성질 가운데 ‘에너지의 양자화’, 다시 말해 ‘입자성’을 활용한 것이에요. 반면 요즘 주목받고 있는 양자 컴퓨터를 비롯한 양자 정보 과학 기술에서는 양자역학의 또 다른 측면인 ‘파동성’에 주목하고 있어요. 모든 물질이 사실은 파동의 성질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거죠. 이를 활용한 기술로는 해킹할 수 없을 정도로 철통 보안 통신 체계를 구현하는 ‘양자 통신’, 극도로 미세한 신호까지 정밀하게 측정하는 ‘양자 센싱’, 고전 컴퓨터로는 엄두도 못 낼 계산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양자 컴퓨팅’이 있어요.
양자 컴퓨터가 기존 암호 체계를 위협한다는 주장의 이유이겠군요. 모든 양자 컴퓨터는 기본적인 연산을 수행할 때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이라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을 활용해요. 고전 컴퓨터에서 정보의 기본 단위는 비트(bit)예요. 비트는 0또는 1, 단 두 가지 상태만 가질 수 있어요. 반면 양자 컴퓨터의 기본 단위는 큐비트(qubit)예요. 큐비트는 고전 컴퓨터의 비트처럼 0 또는 1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자 중첩 상태’에 있을 수 있어요. 양자 중첩 상태란 하나의 큐비트가 0이면서 동시에 1일 수도 있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 3개의 큐비트가 모두 중첩 상태에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세 큐비트는 동시에 000이면서 001이고, 또 010이면서 011이고, 결국 8가지 조합을 한꺼번에 포함하게 돼요. 고전 컴퓨터가 여덟 번에 걸쳐 계산하는 문제를 양자 컴퓨터는 이 중첩된 하나의 상태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거예요. 이 놀라운 병렬 계산 능력 덕분에 고전 컴퓨터에서 만든 기존 암호 체계를 붕괴시킬 위험이 크죠. 미국의 한 기관에서는 2035년까지 기존 암호 체계를 양자 컴퓨터에 대응할 수 있는 암호 체계로 바꾸라는 권고 지시가 내려진 바 있어요. 그러니 한 10년 정도 내다보고 있는 거예요.
요즘 사람이 활발하게 쓰는 AI 기술과 양자 컴퓨터가 만나면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AI 기술의 가장 큰 문제가 데이터 센터의 전력 과부하예요. 혹자가 재미로 말하길 “AI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해요. 왜냐면 그런 인사마저 수많은 전력을 소모하기 때문이죠. 양자 컴퓨터는 비슷한 계산을 할 때 전력량이 훨씬 덜 소모돼요. 그런 분야에서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또 AI와 융합한 양자 머신러닝이라는 새로운 연구 영역이 발전하고 있어요. 이는 양자 회로를 신경망처럼 활용해 기존 AI 모델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해주죠.
교수님이 연구 중인 분야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저는 현재 개발 중인 양자 컴퓨터의 차세대 버전을 연구하고 있어요. 보통의 양자 컴퓨터라고 하면 초전도 큐비트, 이온 트랩, 중성 원자, 광자 등의 시스템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작은 분자로도 양자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죠. 또한 분자는 화학 반응의 기본 단위인데, 이를 통해서 역학적으로 양자를 제어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어요.
양자역학에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물리학이 재밌다고 느꼈어요. 대학 시절 여러 전공 수업 중에서도 양자역학이 제일 재밌었고요. 양자역학에서 자주 쓰는 행렬, 벡터 같은 수학적 도구가 상당히 흥미로웠고, 제 기준에서는 깔끔하게 딱 떨어진달까요? 대학교 4학년 때는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실험 랩에 들어가야 해서 랩 투어를 다녔어요. 대다수 랩들이 지루해 보였는데, 어느 한 랩에 들어갔더니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레이저가 시선을 사로잡더라고요. 레이저 빛이 컬러풀하고 재밌어 보여서 들어간 랩이 양자역학에 관한 실험을 하는 곳이었어요.(웃음)
물리학도로 실험을 하다가 이제는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죠. 실험과 가르치는 일은 또 다른 영역일 것 같아요. 그렇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졸지 않도록 할까, 어떻게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할까 같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사실 끊임없이 발전하는 첨단 과학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시간과의 싸움이에요. 학문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영역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죠. 학생들을 가르칠 학기는 정해져 있고, 양은 계속 늘어나니 어떻게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지 어려운 고민입니다.
10년 뒤 어떤 미래를 꿈꾸나요? 제가 존경하는 선배 교수님이 계세요. 저 역시 그분처럼 연구뿐만 아니라 교육도 열정적으로 잘하고 싶어요. 학생들과 이야기도 자주 나누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요.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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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