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제3의 장소
아무런 대가 없이 당신을 낙천적으로 만들어주는 건축과 장소에 대하여.
경마장을 생태공원으로 재생한 서울숲. ⓒ남상문
만화경을 닮은 서울의 동네
서울에도 잘 찾아보면 집, 일터, 여가 공간이 한곳에 모여 자연스럽고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동네가 아직 여럿 남아 있다. 문래동은 오래된 산업단지의 흔적을 간직한 철공소와 허름한 창고, 예술가의 작업실과 창작촌, 밤거리를 화려하게 채색하는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어우러져 도시의 다양성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태원 해방촌과 후암동 일대는 오래된 서민 주거지와 새로 유입된 청년 문화, 이국적인 문화가 좁은 골목 언덕길에 구슬처럼 꿰어져 있어 다층적인 삶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성수동은 한때 경마장과 체육 시설로 쓰였던 공지가 생태공원(서울숲)으로 조성되고 소규모 제조업 중심의 산업 유산이 창의적인 스타트업과 세련된 상업 공간으로 재생되며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희망이 공존하는 역사적 장소가 됐다. 이렇게 주거, 업무, 여가 기능이 도보권에 밀집된 지역은 오랜 세월 도시민의 기억과 경험이 축적되며 자생적으로 상호 의존적 관계망을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도시적 친밀감은 도시 조직을 연결하는 유기적 가로망, 인간적인 크기와 비율, 에워싸여 보호된 외부 공간,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의 모호한 경계 등에 의해 강화되며 우연하고 비공식적인 만남을 촉진한다. 이 지역들 역시 홍대, 서촌, 연남동, 가로수길처럼 외지인의 유입과 과도한 상업화·관광화로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고 개발 압력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 구석구석 만화경처럼 펼쳐진 다양한 삶의 조각과 생동하는 도시민의 숨결은 도시가 단순히 건물과 인구가 밀집한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교류하고 돌보고 협력하며 문명을 건전하게 지속해나가는 집합적 삶의 무대임을 일깨워준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도시의 본질적 의미다. 남상문(날곳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 <새를 초대하는 방법> 저자)
산의 능선을 따라 설계된 배봉산 숲속도서관. ⓒ진효숙
도시의 해독제, 숲속 도서관
‘제3의 장소’란 가정과 일터 밖의 영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격식 없이 자주 찾는 공공장소를 통칭하는 용어다. 1989년 미국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동명의 책 <제3의 장소>를 통해 소개했다. 당시 책은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이후에도 종종 거론되는 개념이 됐다. 나에게 제3의 장소를 꼽으라면, 배봉산 숲속도서관이다. 조금 늦은 나이인 서른 무렵에 독립한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에 터를 잡고 무작정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갔다. 난생처음으로 초등학교 내 부설 도서관을 마주한 때부터 도서관이라는 장소는 줄곧 내게 망명처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정을 붙여보고자 배봉산 초입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찾았다. 산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 야트막한 지붕, 건물을 통과하며 흥미롭게 연결된 통로, 건축적 외관이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훗날 찾아보니 이곳은 건축사사무소 리옹에서 설계한 곳이었다. 내부에 들어서니 목재로 만든 서재와 앉아서 쉴 수 있는 좌식 마루, 숲을 보기 좋은 1인용 바 테이블, 편안한 안락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어린이 도서관을 지나 일반 열람실로 들어가니 산 방향으로 뚫린 통창이 온통 초록색을 투영하고 있었다. 그 너머의 널찍한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소음으로만 들리지 않았을까? 사서에게 말을 걸었다. 이 동네로 이사 왔다고 하자 그는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몇 가지 절차를 거쳐 대출증을 만들고 빈자리에 앉아서 한동안 책을 읽었다.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는 것보다 더 따뜻한 환대로 느껴졌다. 보통의 도서관에는 노트북으로 개인 학습에 매진하는 사람이 많기 마련인데, 배봉산 숲속도서관에는 책 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부터 부모와 같이 온 어린아이들, 학생들이 조용히 책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니 그들과 아는 사이도 아닌데, 애독가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아날로그의 반격>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뉴욕 타임스>에 삼청공원 숲속도서관을 방문한 후 그곳에서 도서관의 미래를 보았다고 말한 적 있다. 그는 그곳이 “첨단 기술에 대한 해독제”로서 특별히 잘 설계된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숲속에 존재하는 도서관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백가경(<에비뉴엘> 피처 에디터)
사방이 열린 아트리움 형태의 아모레퍼시픽 로비. ⓒ노경
로비라는 도시의 응접실
일본 도쿄 유라쿠초의 슬릿파크(Slit Park)는 신국제빌딩 입구 홀의 벽을 허물어 건물의 앞뒤를 관통하게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로비의 양끝을 열자 쓸모없던 배면 도로는 쉼터와 정원으로 바뀌었다. 유리문이 열려 있는 시간에 로비는 말 그대로 골목이 되어 마치 길 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듯한 경험을 준다. 작지만 공용 공간의 성격이 극대화된 슬릿파크의 로비를 본 뒤 나는 도시 로비의 공공성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소 규모 건물의 로비부터 대형 오피스의 아트리움까지 서울의 로비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로비는 법적 용어가 아니라 출입과 피난을 위한 공용 공간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 사용자뿐 아니라 가로를 지나는 보행자에게도 열려 있는 공적 공간이다. 공간감이 뛰어난 로비를 만날 때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조금은 친절해지는 듯하다. 건물의 외부와 내부가 단절되어 좁은 인도를 겨우 걷는 답답한 도시가 아니라, 언제든 들어올 수 있고 머물 수 있는 중간지대를 내어주는 곳. 건물 외부의 공개 공지와 이어지는 곳. 로비는 우리를 환대하는 도시의 응접실이다.
을지로의 거대한 블록 위에 지어진 센터원은 청계천 앞 한빛광장으로 이어진다. 약 3300제곱미터 규모의 한빛광장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며 1층 로비를 시민에게 개방했다. 하얀 나무를 연상시키는 기둥, 층고 12m의 공간, 전면과 천장을 투명한 유리로 마감한 로비는 광장과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에스컬레이터와 원형 계단은 오피스 로비 기능을 하는 2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ㄷ자 형태의 2층 로비는 중정으로 열려 있고, 모든 시선은 중정의 녹음으로 향한다. 그제야 높은 식재가 건물 입면을 가로막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층에서는 광장이 연결되고, 2층에서는 을지로의 복잡한 전망에서 벗어난 고요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모레퍼시픽 용산 사옥에서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로비와 엘리베이터로만 연결되는 타워형 오피스 대신 정방형의 단일 볼륨을 택했다. 그리고 저층부를 들어 올려 한 변 90m, 높이 18m에 달하는 거대한 아트리움을 만들었다. 시각적으로나 동선으로나 사방이 열린 공간이다. 섬세하게 시공된 노출 콘크리트의 물성, 8.1m 모듈의 중심 기둥, 빛과 함께 무아레가 쏟아지는 상부 격자 구조는 고전적이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아트리움은 정방형의 중성적 질서를 보여주지만 공항이나 터미널 대합실의 설렘을 담고 있다. 거대한 아트리움을 채우는 백색소음 덕분이다. 잘 보호된 익명의 도시 공간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사방에서 오고 가는 움직임의 역동성과 분주함으로 가득한 로비는 섬세하게 고려된 방음 처리 덕분에 우아한 공감각을 선사한다.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과 아모레퍼시픽의 로비를 들어설 때마다 나는 로비가 도시에 내어주는 미덕을 생각한다. 도시의 스케일에 맞는 익명성과 활기를 적절히 담아낸 로비 공간은 우리를 머물게 한다. 잘 설계된 공간은 우리를 얼마나 고양시키는가? 어떻게 도시의 여행자들을 환대하는가? 로비의 공간감은 모든 감각을 통해 말해준다. 모두에게 열린 로비에서 우리는 도시의 중간 지대를 본다. 임진영(건축저널리스트, ‘오픈하우스서울’ 디렉터)
호흡과 도시를 연결하는 ‘힘의집’
로비라는 도시의 응접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늘 효율과 속도를 강요받는 일상 속에 놓인다는 뜻이다. 이런 자본종속적 환경에서 어떤 건축과 공간이 우리를 조금 더 건강하게 살게 하는지가 나에게는 중요한 물음이다. 한 도시가 다양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지켜주는지는,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제3의 장소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그곳을 향유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직접 제3의 장소를 기획하고 운영하며 참여하는 일은 곧 나의 존엄성과 공동체적 연대 가능성을 실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중 신촌에 자리한 ‘힘의집’은 특별한 사례다. 이곳은 고대 페르시아의 전통 수련인 주르카네를 이어가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장소다. 주르카네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몸과 호흡, 마음을 다스리며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는 의식이다. 나는 이곳의 커뮤니티원이자 설계자로 리노베이션을 맡게 되었다. 기존의 막혀 있던 벽을 걷어내고, 운동과 휴식, 대화와 교류가 이어질 수 있도록 공간의 가능성을 새롭게 마련했다. 용접 파이프 대신 세운 통목 기둥은 중력과 반작용만으로 버티며, 힘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적응하는 주르카네의 태도를 공간적으로 드러낸다. 숲처럼 서 있는 기둥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모이고, 기대고, 서로를 마주 보며 머무른다. 공간의 중심에는 깊은 웅덩이 같은 무대를 두었다. 안팎의 경계가 흔들리며 수행자와 관객이 언제든 자리를 바꾸는 장면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연대감이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리노베이션 이후 이곳은 운동뿐 아니라 공연과 워크숍, 그리고 수련 뒤 차 한잔과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그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일상의 고민을 풀어내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이는 기둥과 단차 같은 열린 건축적 장치가 가능하게 한 흐름이다. 힘의집은 도시에 존재하는 작은 공동체의 장이자 건축이 제3의 장소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풍경이다. 이병엽(바이아키텍쳐 대표 건축가)
EDITOR
백가경
COURTESY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