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예술로 채운 삶

고대와 현대, 조각과 설치 작품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스테파니 쿠타스의 집은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한 편의 자서전이다.

맞춤 제작한 대리석 벽난로 위에 걸린 파브리스 이베르의 작품, 벽난로 오른쪽에 나무테를 형상화한 시몬 팽의 섬유조각 작품, 커피 테이블과 소파, 꽃무늬를 수놓은 스페파니 쿠타스의 쿠션 작품, 자연의 색감을 사용한 메종 렐루의 카페트가 있는 사진

맞춤 제작한 대리석 벽난로 위에 걸린 대형 페인팅은 파브리스 이베르(Fabrice Hyber)의 작품. 벽난로 오른쪽에는 나무테를 형상화한 시몬 팽(Simone Pheulpin)의 섬유조각 작품이 놓여 있다. 커피 테이블과 소파, 꽃무늬를 수놓은 쿠션들은 스테파니 쿠타스 본인의 작품, 자연의 색감을 사용한 카페트는 메종 렐루(Leleu).

다다시 가와마타의 작품이 걸려 있고 19세기 후반의 콩고 부족 조각품과 알베르 페로의 청동 조각품을 배치한 다이닝룸 사진

다이닝룸에는 실내 디자인의 시작점이 되어준 다다시 가와마타의 작품 두 점이 걸려 있다. 그 사이에는 19세기 후반의 콩고 부족 조각품을 배치했다. 식탁 오른쪽에 놓인 청동 조각품은 알베르 페로(Albert Fraud) 작품.

파리의 심장부, 앵발리드(Invalides)를 마주한 오스만식 건축물. 이곳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갤러리스트, 그리고 열정적인 아트 컬렉터인 스테파니 쿠타스(Stéphanie Coutas)가 살고 있다. 남편과 아들을 포함한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이지만 예술과 감각이 숨 쉬는 하나의 전시장으로 느껴진다. 고대의 기운을 품은 조각상과 동시대 아티스트의 실험적 작품, 그리고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이곳은 갤러리처럼 독자적인 미학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꾸민 인테리어 대신 오랜 세월 쌓인 추억과 감각, 그리고 강렬한 울림을 준 예술 작품들로 채워졌다는 점이 특별하다.
쿠타스는 일찍부터 컬렉터의 길을 걸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물건들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어요. 일을 시작하고 처음 번 돈으로도 디자인 오브제를 샀고,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을 바라보기 시작했죠.” 그녀에게 아트 컬렉팅은 투자나 계산이 아닌 감정과 직관에서 비롯되는 행위다. 실제로 집에 놓인 많은 작품은 20년 전쯤 구입했지만 여전히 그녀와 삶의 주기를 함께하고 있다. 거실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프랑스 작가 파브리스 이베르(Fabrice Hyber)의 작품도 그중 하나다. 이 작품은 20년 전 거실에 걸어둔 이후 단 한 번도 옮기지 않았을 만큼 애착이 깊다.

디자이너 페이 투굿이 2011년에 완성한 조각품, 프랑스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아스튀게비에유의 로프 스타일의 램프 작품 사진과 경매에서 구입한 아프리칸 아티스트의 작품이 걸린 침실 사진

(왼쪽) 디자이너 페이 투굿이 2011년에 완성한 조각품. 벽에 부착된 로프 스타일의 램프는 프랑스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아스튀게비에유(Christian Astuguevieille) 작품.
(오른쪽) 침실에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한 아프리칸 아티스트의 작품을 걸었다.

집의 분위기는 그녀가 추구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거칠고 직선적인 파리 건축의 외피 안에서 의도적으로 부드러운 풍경을 구현했다. 곡선과 따뜻한 질감이 공간 전체를 감싸고 원형과 타원형의 구조는 수도원 같은 평온을 느끼게 한다. 이 공간의 출발점은 결국 예술이었다. “예술 작품은 항상 영감의 원천이 돼요. 집의 실내 디자인을 할 때는 일본 작가 다다시 가와마타(Tadashi Kawamata)의 작품 두 점이 단초가 되었어요. 그 작품들이 집의 콘셉트가 되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었고, 거기에 원시미술이 더해져 원초적이면서도 따뜻한 균형이 만들어졌죠.” 쿠타스의 아파트는 예술에서 출발한 인테리어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쿠타스가 선택한 작품들은 모두 진정성이 묻어난다. 다다시 가와마타의 작품을 구입한 이유는 단순한 미적 매혹 때문이 아니라 환경문제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태도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중요해요.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사회적, 철학적 이야기가 애정과 관심을 더 깊게 만들어주죠.” 노르웨이 작가 예르트루드 할스(Gjertrud Hals)의 녹색 섬유를 손으로 꼬아 작업한 설치물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시선을 사로잡는 형태적 아름다움에 이끌렸지만 자연 생태와 환경의 취약성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깊이 매료되어 구입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컬러풀한 로베르 콩바의 2018년 작품이 걸린 아라베스카토 코르키아 대리석으로 꾸민 욕실 사진

아라베스카토 코르키아(Arabescato Corchia) 대리석으로 꾸민 욕실. 컬러풀한 로베르 콩바(Robert Combas)의 2018년 작품이 인상적이다.

쿠타스의 컬렉팅 철학은 갤러리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디자인과 예술, 가구가 뒤섞인 갤러리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감각을 확장하고 아름다운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도록 영감을 제공하는 장소다. 갤러리에는 알렉산더 칼더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있지만, 그녀는 언제나 시대나 시장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스스로의 직관을 따른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페이 투굿(Faye Toogood) 작품 역시 작가의 이름이 알려지기 전부터 집과 갤러리에 들여왔다.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언제나 감정에서 출발해요. 유명세나 가격, 누군가의 조언 같은 것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내가 느낀 감정이 진짜라면 작품은 결국 공간 속에서 제자리를 찾게 되거든요.” 실제로 쿠타스의 아파트에는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의 작품이 모여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작품들과 어우러지는 가구들 또한 직접 디자인하고 장인의 손길을 통해 완성된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대리석과 청동을 조합한 낮은 거실 테이블, 알파카 소재로 마감한 식탁 의자, 황동과 너도밤나무로 만든 침대 헤드보드와 책장 등은 금속 세공 장인, 대리석 장인, 장식 도장 전문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쿠타스는 디자이너로서 장인과의 협업을 즐기며 그들의 기술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해왔다.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도 이런 오브제의 사용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믿는다.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이 아니라 손길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지닌 가구를 원해요. 장인의 기술은 시간이 축적된 예술이고, 그런 물건들을 통해 공간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테이블웨어가 놓인 테이블을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한 스테파니 쿠타스 사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테이블웨어가 놓인 테이블을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한 스테파니 쿠타스.

쿠타스가 강조하는 컬렉팅 철칙은 단순하다. “절대 투자만을 위해 사지 마세요. 무조건 사랑하는 작품을 사야 해요. 그래야만 후회하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 둘 수 있어요.” 이 원칙은 삶과 일, 그리고 갤러리 운영 전반을 관통한다. 실제로 공간에는 고가의 회화뿐 아니라 신진 아티스트의 세라믹이나 작은 오브제들도 함께 놓여 있다. 그것들이 자리를 차지한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심장을 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쿠타스의 집은 그 자체로 시각적 자서전이다. 아시아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캄보디아의 돌 조각, 파리에서 첫 작업 시기에 구입한 청동상, 그리고 최근 수집한 동시대 작품들까지 각각의 오브제는 그녀의 시간과 기억, 당시의 심장박동을 증언한다. 화이트 큐브 갤러리와 달리, 이곳에서는 모든 작품이 일상의 일부처럼 존재하고 숨 쉬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각으로 연결된다.
그녀의 일상은 예술적 경험으로 직조되어 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작은 테이블 위에는 신진 작가의 세라믹이 놓여 있고, 가족과 저녁을 함께하는 식탁 옆 벽에는 익명의 고대 조각이 자리한다. “나는 예술을 생활과 분리하지 않아요. 작품은 박물관 벽에 걸린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함께 숨 쉬고 대화하는 동반자예요.” 집 안의 모든 오브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일상의 흐름 속에서 살아 있는 목소리를 낸다. 스테파니 쿠타스의 세계는 아트 컬렉터의 집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예술 작품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집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출발점이자 종착지가 될 수 있다. 감정의 궤적을 따라 직조된 그녀의 공간은 결국 예술이 우리 삶의 가장 솔직하고 본능적인 순간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WRITER
양윤정(칼럼니스트)
EDITOR
김지선
PHOTOGRAPHER
임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