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지금 당신이 알아야 할 패션계의 이름
패션계가 주목하는 신진 디자이너, 패션의 미래를 제시할 인물 4인을 소개한다.
(왼쪽) 2025 S/S Diotima (오른쪽) 2025 F/W Diotima
Rachel Scott
레이첼 스콧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자메이카 출신 디자이너다. 2023년에 CFDA 신인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수상하고, 2024년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부문에서 마크 제이콥스, 토리 버치, 톰 브라운, 프로엔자 스쿨러 등 쟁쟁한 디자이너들과 경쟁해 최종 수상했다. 팬데믹 전후로 여러 디자이너 레이블이 사라진 뉴욕 패션계에서 가장 강력한 신인으로 꼽히는 스콧은 밀라노의 마랑고니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레이첼 코미에서 경력을 쌓은 후 고국인 자메이카에서 영감을 얻어 디오티마(Diotima)를 론칭했다. 브랜드의 시그너처인 손으로 짠 크로셰 니트 드레스를 비롯해 트위드 슈트, 마크라메 니트, 크리스털 비즈를 장식한 메시 의상은 캐리비언 문화의 수공예 기술을 보여주며, 각각의 아이템은 실제로 자메이카의 여성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에스닉하거나 리조트 웨어 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무채색을 사용해 문화적 정체성과 동시대적 감수성을 잘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매 시즌 한층 정교해진 컬렉션을 선보인다.
얼마 전에는 잭 매컬러와 라자로 헤르난데즈가 로에베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되면서 공석이 된 프로엔자 스쿨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그녀가 맡게 됐다는 깜짝 발표가 있었다.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프로엔자 스쿨러의 스튜디오 팀과 협업하며 2026년 S/S 컬렉션 작업에도 컨설턴트로 참여한 스콧의 공식 데뷔 쇼는 2026년 2월에 열릴 예정이다.
(왼쪽) 2025 F/W Duran Lantink (오른쪽) 2025 S/S Duran Lantink
Duran Lantink
혜성처럼 등장해 하루아침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네덜란드 출신의 듀란 란팅크는 2013년부터 패션의 변방인 암스테르담에서 꾸준히 자신의 컬렉션을 만들어왔다. 빵빵하게 부푼 일명 ‘버블’ 디자인으로 일약 패션계의 총아로 떠올랐으나 란팅크의 디자인 정체성은 업사이클링. 샤넬, 디올, 발맹, 발렌시아가 등 여러 편집 매장에서 판매하고 남은 의류를 받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제품을 만들어왔다. 해체한 의류의 로고나 패턴을 디자인의 일부로 활용한 컬렉션으로 2021년 패션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 2023년 파리 패션 위크 데뷔 쇼에서 ‘버블’ 디자인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화난 복어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실루엣은 매우 가벼운 소재로 형태를 만들고 원단으로 감싸 완성한 것. 그의 입체적인 의상은 런웨이에 공개되자마자 여러 패션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했고 비욘세와 도자 캣의 의상 제작 의뢰로 이어졌다. 란팅크의 디자인을 꼼데가르송의 울퉁불퉁한 실루엣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란팅크는 레이 가와쿠보의 디자인이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것이라면, 자신은 전통적인 복식의 변형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실루엣 자체는 낯설고 파격적이지만 각각의 아이템은 버튼업 셔츠, 미니스커트, 티셔츠, 트렌치코트 등 누구나 옷장에 하나쯤 갖고 있는 베이식한 옷들이다. 올해 4월, 장 폴 고티에는 란팅크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5년 동안 매 시즌 게스트 디자이너와 협업해 쿠튀르 컬렉션을 발표해온 고티에가 란팅크를 적임자로 판단한 듯하다. 이는 패션계에 새로운 ‘앙팡 테리블’의 도래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왼쪽부터) Christen Stretch Mule, Christen Big Bootie, Christen Tabi Stretch Ballerina
Nina Christen
니나 크리스텐은 슈즈계의 피비 파일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즈에 대한 고정관념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2018년 셀린느의 플래닛 부츠, 2019년 보테가 베네타의 인트레치아토 리도 슬라이드와 2020년 퍼들 부츠, 2022년 로에베의 미니 마우스 힐과 2023년 풍선 힐 등 시즌마다 가장 많이 회자된 슈즈는 전부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스위스 베른 출신으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크리스텐은 파리에 있는 프랑스 패션 학교(Institut Français de la Mode)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슈즈 디자인에 처음 흥미를 느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던 발렌시아가에서 인턴십을 마치고 생 로랑에서 스테파노 필라티, 에디 슬리먼의 지휘 아래 슈즈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17년 셀린느에 합류하면서 친해진 다니엘 리가 보테가 베네타의 아티스틱 디렉터가 됐을 때 그녀에게 슈즈 디자인을 일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뒤이어 로에베와 더 로우의 슈즈 디자인 디렉터로 활약한 이후 2024년에 자신의 브랜드 ‘크리스텐(Christen)’을 론칭하고, 올해 6월부터 디올의 슈즈 디자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크리스텐이 디자인한 슈즈는 전통적 기준에서 살짝 벗어난 것이 특징. 이전 히트작의 예를 들면 셀린느 플래닛 부츠와 보테가 베네타 퍼들 부츠의 뭉툭하고 우스꽝스러운 실루엣이다. 발이 예뻐 보인다거나 다리가 길어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평범한 룩에 재미와 유머를 더하기에는 충분하다. 크리스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슈즈도 할아버지가 신을 것 같은 덤덤한 디자인의 슬립온 슈즈 ‘빅 부티’. 실처럼 가느다란 스트랩의 스트래피 샌들은 발가락보다 바닥솔이 더 길게 돌출되도록 디자인해 조형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이렇듯 끊임없이 기준을 재정의하며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니나 크리스텐의 슈즈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왼쪽) 2025 S/S Kartik Research, (오른쪽) 2025 F/W Kartik Research
Kartik Kumra
카틱 쿰라는 보디(Bode)와 캐피탈(Kapital)의 열풍을 잇는 브랜드 카틱 리서치(Kartik Research)의 디자이너다. 겨우 25세의 나이에 올해 7월 파리 패션 위크에서 데뷔 쇼를 치렀고, 프라다와 루이 비통 등 주요 브랜드가 인도에서 영감을 얻은 2026 S/S 시즌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도 뉴델리 출신으로 패션이나 디자인 경험은 전무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드리스 반 노튼을 존경하고 슈프림 같은 스트리트 웨어에 열광했으며, 스니커즈 리셀로 돈을 모으곤 했다. 2020년에 금융권에서 인턴을 하다가 팬데믹으로 쉬게 되면서 뉴델리의 집에서 사업 계획을 세운 것이 브랜드 론칭으로 이어졌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인도 전역을 다니며 자수, 직물, 프린트 등 여러 분야의 장인들을 직접 만나 섭외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온전히 인도 수공예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카틱 리서치의 화이트 셔츠는 인도 구자라트의 장인이 100년을 이어온 부조디 직조 기술을 사용해 손으로 만든 것이다. 오직 카틱 리서치만을 위해 개발한 원단을 85% 사용하고 있으며,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단 하나도 같은 옷이 없기에 쿠튀르적이면서도 캐주얼하고 실용적이라는 장점이 매력이다. 켄드릭 라마, 스티븐 커리, 브래드 피트, 루이스 해밀턴, 폴 메스칼이 그의 옷을 입으면서 급속도로 인지도를 얻어 현재 전 세계 온·오프라인 매장 70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내년 봄에는 여성복 라인을 론칭할 예정. 카틱 쿰라가 추구하는 브랜드 정체성은 인도의 장인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WRITER
송보라(패션 칼럼니스트)
COURTESY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