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살아내는 시
롯데백화점의 캠페인 속 아름다운 문장들의 주인공, 나태주 시인을 만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편으로 손꼽힌다. 이처럼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는 시들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나태주 시인과 함께 롯데백화점은 캠페인 ‘베러(BETTER)’를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등 계절의 이미지에 나태주 시인의 시구절을 녹여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중이다. 계절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전해온 나태주 시인답게 풀꽃문학관 신관에서 마주한 첫인상은 소탈했다. 리넨 셔츠와 바지, 중절모가 시인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후원했던 탄자니아의 한 소녀를 만나러 긴 여행을 다녀왔다”며 운을 떼면서도 손은 연신 잡초를 고르는 중이었다. 시인이 천천히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는 쉽게 흘릴 수 없는 지혜가 곳곳에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삶에 대한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세 가지 삶을 산다. 살아내는 삶, 살아가는 삶, 살아지는 삶. 동시대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수직 상승하며 살아지는 삶을 원한다. 그야말로 수동적인 삶이다. 반면에 살아가는 삶은 계단을 오르듯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며, 그 여정 속에서 무거운 짐까지 짊어지는 것이 바로 살아내는 삶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살아내는 삶, 열악하고 고달픈 노동이나 졸렬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을 마다하지 않기를 바랐다. 여든이 넘은 시인이 지금도 여전히 10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짓고, 젊은 사람조차 쉽게 갈 수 없는 탄자니아로 날아가 매일을 살아내야만 하는 한 소녀를 만난 이유이다.
최근 다양한 방송, 유튜브 콘텐츠 등에서 활발히 강연도 하시고, 인터뷰에도 응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책에서 언급한 “거절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 마음으로 행보를 이어가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거절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 삶은 어려운 삶입니다. 편하게 살려면 거절하고 요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편으로 볼 때 오로지 편하고 좋게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 그러니까 타자를 배려하면서 살려면 거절하고 요구만 하는 삶은 곤란합니다. 오로지 내 편의대로만 사는 삶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강연이나 인터뷰, 원고 청탁 횟수가 많아 벅찬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그간의 저작 중에서 특히 의미 있는 책을 소개해주세요. 개인적으로는 <대숲 아래서> <막동리 소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시집입니다. <대숲 아래서>는 첫 시집이라 그렇고, <막동리 소묘>는 나를 서울의 문단에 소개해준 시집이라 그렇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는 나의 최근 작품으로 독자들의 호응을 받은 시집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장 의미가 있는 시집은 <꽃을 보듯 너를 본다>라는 선시집입니다. 한국에서 8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외국에서도 여섯 나라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시상을 떠올리고 이를 시로 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시나요? 시는 흥(興)에서 나옵니다. ‘울컥’하는 감흥이 시의 소재이지요. 그러므로 감흥이 생길 때가 시를 쓸 때입니다. 시는 절대로 억지로 쓸 수 없고 작정하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주도권이 시인에 있지 않고 시 자신에게 있습니다. 시가 자기를 써달라고 시인에게 부탁할 때 시인은 시를 씁니다. 그리고 나는 시를 종이에 바로 쓰지 않고 한동안 입속으로 중얼중얼 외우고 난 뒤 종이에 씁니다.
왼쪽부터 풀꽃을 닮은 글씨체로 시를 적는 나태주 시인. 최근 개관한 풀꽃문학관 신관의 입구.
시를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를 위해 시에 다가가는 조금 쉬운 방법을 알려주세요. 시의 감상에는 따지며 하는 방법과 느끼며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 교육 자체가 시 공부를 따지면서 하는 쪽으로 이끄니까 시의 감상이 어려워지고 까다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읽고 느끼면 됩니다. 쉽게 느낌이 전달되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더 읽든지 그만 읽든지 하면 됩니다. 시는 이해하는 문장이 아니고 느끼는 문장입니다. 더 말씀드린다면 시를 낭독하면서 읽는다든지, 필사하며 읽는다든지 하면 느낌이 새롭게 전달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191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을 활용해 2014년 10월, 풀꽃문학관이 처음 개관했습니다. 2014년 당시 공주시청에서 공주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일본식 민간인 가옥 한 채를 사들여 복원한 일이 있습니다. 마침 내가 공주문화원장의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본식 가옥, 그러니까 적산가옥을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냐는 시장님의 질문에 문학관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것이 성사되어 개관한 것입니다. 문학관 이름에 나의 대표작인 ‘풀꽃’을 넣어서 ‘풀꽃문학관’이라고 정했으니 나로서는 횡재를 한 셈입니다.
올해 7월에는 풀꽃문학관 신관도 여셨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두 부류입니다. 건물 주인과 손님이죠. 예전에는 주인이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건물을 지었지만, 공공건물이자 문화적인 임무를 지닌 문학관은 주인보다는 손님을 위해 편리한 공간과 시설을 갖추어야 합니다. 새로 지은 풀꽃문학관은 그런 차원에서 설계되고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외부 사용자의 편의와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여 지어진 집이라 하겠습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인용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고자 연간 비주얼 캠페인인 ‘베러(BETTER)’를 운영 중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고 만나는 공간에 시구를 걸어놓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시는 짧으면서도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강력한 힘을 지닌 문장입니다. 인간은 의외로 감정적인 존재라서 백화점과 같이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에서도 얼핏얼핏 외롭거나 불안한 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정제되고 아름다운 시를 만난다면 충분히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감과 위로가 어떤 행위라고 여기시나요? 공감과 위로를 얻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또 말해야만 합니다. 실상 시는 1인칭 문장입니다. 1인칭이 2인칭에게, 혹은 3인칭들에게 자신의 호소와 고백을 담는 문장이 바로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2인칭 편에서 생각하고 3인칭 편에서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위로와 축복, 응원과 동행의 문장으로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타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가을에 읽으면 더없이 좋을 시인님의 시 한 편을 추천해주세요. 존재만으로도 고맙고 소중한 이들에 대한 시 ‘가을날 맑아’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잊었던 음악을 듣는다
잊었던 골목을 찾고
잊었던 구름을 찾고
잊었던 너를 찾는다
아, 너 거기
그렇게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가 좋은가
나도 여기 그대로 있단다
안심해라 손을 흔든다.
롯데백화점의 ‘BETTER’ 시리즈
나태주 시인의 글귀를 바탕으로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고자 계절별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봄 나태주 시인의 ‘산수유’의 “그래도 시작하는 거야” 구절과 인물의 활기찬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시작과 응원의 의미를 전했다.
여름 시 ‘끝끝내’에 나오는 구절 “네 옆에 내가 있음이 그냥 행복이다”에서 느껴지듯 가족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과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가을 시 ‘가을날 맑아’의 “그렇게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가 좋은가”라는 구절로 우리 곁의 소중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EDITOR
백가경
PHOTOGRAPHER
신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