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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차 취미

금세 식어버릴 뜨내기 트렌드일까, 격불이 취미인 ‘다인’이 많아질 징조일까?

OSULLOC 프리미엄 말차와 ANGBOHWA 프리미엄 화과자 사진

OSULLOC 프리미엄 말차 40g 2만원대.
ANGBOHWA 앙금에 보화를 담다는 뜻의 프리미엄 화과자 20구 10만원대.

세계적으로 말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뉴욕, 파리, 런던 등 대도시의 젊은 세대가 열광하고 SNS에서는 셀러브리티와 인플루언서가 말차 음료를 끊임없이 찍어 올린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차 브랜드 오설록의 공식 온라인 스토어의 말차 매출은 올해 3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1072% 증가했다. 말차는 일본 우지산을 최상급으로 치는데,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10년에 비해 2023년 일본에서 생산한 말차는 3배 가까이 늘었는데도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품귀 현상이 일고 있다.
지난 주말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던 서울 창신동의 차차티하우스를 찾았다. 티룸 안은 이미 만원이었고, 대기 인원이 7팀이나 있었다. 차 분야 전반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이 피부로 와닿았다. 가망 없는 대기 시간에 일찍이 입장을 포기하면서도 갑작스러운 ‘말차 열풍’에 의문을 품게 됐다.
말차는 중국에서 기원전 220년부터 마셨다고 전해진다. 말차는 찻잎을 우려서 마시는 녹차와 달리 차를 쪄서 말린 후 곱게 갈아서 전체를 다 섭취한다. 중국 당나라 시대인 8세기, 차의 백과사전이자 경전으로 불리는 육우의 <다경>에 여러 차를 만드는 법이 기록돼 있다. 일본에서는 오늘날까지 4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말차를 마셔왔다. 일본의 생활 문화 전반에 밀접하게 얽힌 말차는 엄격한 격식과 형식으로 발전했다. 현재에도 말차와 관련해서는 일본식 다구들이 주를 이룬다. 센노 리큐처럼 유명한 다인의 영향력 아래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만든 이도다완의 매력에 흠뻑 빠졌는데, 그래서인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장인들을 대거 잡아가기도 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차와 관련된 옛글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 고려시대 문인 이연종이 차를 선물한 박충좌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시 ‘사박치암혜다(謝朴恥菴惠茶)’에 쓰인 “손수 끓여 ‘잔’에 가득 피어나는 짙은 차를 마시니 너무 상쾌해 골수를 바꾼 듯하네”라는 문장을 보면 그 애정이 절로 느껴진다. 세 나라의 말차 음용법과 문화는 제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시간을 들여 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이 아닐까? 일례로 고운 가루 형태의 말차를 물에 녹이기 위한 용도로 쓰는 차선이 있다. 차선으로 말차에 거품이 일도록 빠르게 휘젓는 동작을 격불이라 하는데, 이는 카테킨 성분을 거품으로 바꾸어 차의 떫은맛을 덜고 감칠맛이 돌게 한다. 실제로 빠르게 움직이는 차선을 따라 녹색의 잔잔한 말차가 풍성한 거품을 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명상적 순간이 찾아온다. 과거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중요한 승부를 겨루는 날 아침, 말차를 격불하며 의지를 다졌다는 일화가 백번 공감된다.
요즘 쇼트폼 속 말차는 한 겹 코팅이 된 종이 테이크아웃 잔에 들어 있다. 그들은 밝고 화려한 색깔의 말차를 급하게 입에 털어 넣고, 커피보다 몸에는 좋으면서 그만큼의 각성 효과를 기대한다. 차 자체를 음미하기보다는 자기 계발이나 미용, 비즈니스처럼 또 다른 일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말차의 유행에는 복합적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능력 좋은 마케터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두아 리파 같은 셀러브리티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말차 열풍이 커피의 대안이 되거나 그 화려한 겉모습으로 인해 눈요깃거리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달콤한 말차 빙수와 말차 라떼, 말차 케이크로 시작한 인연이 말차를 향유하는 시간과 과정을 오랫동안 취미로 삼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바 티센트 내부 모습 사진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벽이 눈길을 사로잡는 바 티센트 내부 모습.

말차 패션드 사진

말차 패션드.

바 티센트의 말차 패션드
차(Tea)와 향(Scent)을 합친 이름처럼 ‘티 스피릿’을 칵테일로 온전히 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곳이다. 10대부터 차를 즐겨온 앤디 윤 대표는 바텐더와 바 오너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티 칵테일을 연구했다. 그중 말차 패션드는 세계 최초의 칵테일이라 불리는 올드 패션드를 모티프로 만든 티 칵테일이다. 올드 패션드가 위스키를 베이스로 달콤한 시럽이나 비터스를 섞듯이 말차 패션드에도 위스키와 말차, 약간의 초콜릿과 메이플 시럽을 더해 묵직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극대화했다. 가니시로 올라가는 작고 귀여운 솜사탕도 빼놓을 수 없다. 말차 특유의 씁쓸한 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색색의 솜사탕을 글라스에 꽂는다. 이 외에도 일본 매실주인 우메슈에 말차, 탄산수, 진을 곁들여 청량감이 돋보이는 플러미 말차도 있다.

바 티센트 내부 모습 사진

탁 트인 창, 그날의 날씨에 어울리는 차를 즐기기 좋은 다도레 티룸의 차분한 내부 모습.

말차 패션드 사진

다도레 티룸의 봄쑥 말차.

다도레 티룸의 봄쑥 말차
티&웰니스 브랜드 다도레를 7년간 운영해온 조채련 대표는 차 전문가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차와 다도를 바탕으로 누구든 쉽게 차를 즐길 수 있게 하자는 마음으로 론칭한 다도레에서는 말차 입문 키트를 판매한다. 국내산 차선과 차시, 그리고 고운 말차 가루로 구성되어 있다. 다도레 티룸에서 선보이는 또 한 가지의 특별한 메뉴는 봄쑥 말차다. 찻잎으로 만든 말차는 카페인 함유량이 제법 높아서 공복에 마시면 어지러움과 가슴 두근거림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쑥 말차는 이런 단점을 덜었다. 청정 하동 지역에서 자생하는 어린 봄 쑥을 증기로 쪄낸 후 아주 곱게 갈아서 최상급의 쑥 말차를 만들었다. 카페인이 없으며, 갓 쪄낸 쑥떡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단미가 훌륭하다.

말차빙수 사진

진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인 말차빙수.

사월의 숲 내부 모습 사진

사월의 숲 내부 모습.

사월의 숲의 말차빙수
이준선, 박성준 부부가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문을 연 신사동 사월의 숲은 낮에는 차를, 밤에는 위스키를 판매한다. 평소에도 말차를 좋아하는 이준선 대표는 국내 보성과 사천에서 최상의 비율로 블렌딩한 말차를 공수해 사월의 숲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빙수를 만든다. 특유의 쓴맛 때문에 말차를 즐기지 않던 박성준 대표의 입맛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말차의 진한 담백함을 바탕으로 은근한 단맛이 나도록 여러 개발 과정을 거쳤다. 또한 말차빙수를 여름에만 한정적으로 판매하지 않고, 사계절 내내 선보일 예정이다. 그만큼 말차빙수에 진심이라는 뜻. 한편, 밤에는 깔루아 말차 리큐어에 사월의 숲의 말차라테를 넣은 칵테일도 선보인다. 낮과 밤을 지나며 말차의 다양한 면모에 푹 빠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티노마드의 1인 말차 세트 사진

티노마드의 1인 말차 세트.

티노마드 내부 모습 사진

아름다운 풍경 소리가 울리는 티노마드 내부 모습.

티노마드의 1인 말차 세트
티(Tea)와 유목민(Nomad)이라는 뜻이 합쳐진 티노마드에 들어서면 풍경 소리와 함께 신비한 전경을 마주하게 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남편과 도예를 전공한 아내가 주변인들과 모여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티노마드는 넓은 사각 테이블에 둘러싸인 가마가 있는 공간, 차와 다구 등을 전시해놓은 아틀리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양적 아름다움이 가득한 티노마드에선 1인 말차 세트를 판매한다. 교토 우지산의 최고급 말차를 사용해 차선으로 직접 격불해 마실 수 있다. 또한 당일 아침에 손수 만들어 내어놓는 화과자는 맛이 은은하고 달콤해 따로 포장해 갈 수 있는지 묻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티노마드는 차를 즐기는 오롯한 순간을 위해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EDITOR
백가경
PHOTOGRAPHER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