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건강한 삶을 위한 의지
저속노화 담론은 어디까지 팽창할까? 개인과 사회를 향해 선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희원 교수의 다음 행보.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를 떠나 ‘저속노화연구소’를 세운 이후 정희원 교수의 발걸음이 한층 단호해졌다. 그의 목소리는 라디오를 비롯한 대중매체와 유튜브를 타고 더 많은 이들에게 확산되고 있고, 그의 자문을 받은 기업의 건강식품은 일상 속으로 들어와 식탁의 풍경을 바꾼다. ‘저속노화’라는 화두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사회적 담론이 되었다. 한때 ‘웰빙’이라는 단어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 소비재처럼 소모되었던 것과 달리, 그는 ‘저속노화’ 신드롬이 개인과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정희원 교수는 “10년 뒤에 사회가 실질적으로 건강해진 모습을 데이터로 확인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미온적 태도가 아니라 ‘건강한 사회의 실현을 반드시 이끌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그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된다. 렌틸콩 햇반이나 두유 등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에는 저속노화가 소수의 특권이 아닌 대중의 선택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정희원 교수는 얼마 전 서울시 초대 건강총괄관으로 임명되며 저속노화 개념을 제도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건강한 개인들의 집합이 곧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믿음을 지닌 그는 지금 한국 사회를 건강한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정희원 교수의 행보가 흥미로운 이유는 본인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정렬시키려는 태도에 있다. 그는 때로는 땀을 흘리며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밈’의 주인공이 되고, 때로는 잘못된 건강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 치열한 토론을 이끄는 투사가 된다. 스스로가 웃음거리가 되거나 오해를 사는 일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태도로 본인이 몸소 실험하고 확인한 방법을 바탕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저속노화 전문가이자 의사 정희원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KAIST에서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에서 진료와 연구를 거쳐 현재는 저속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대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 초대 건강총괄관으로 임명된 그는 향후 10년에 걸쳐 다방면으로 대규모 예방 건강 증진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서울아산병원을 떠난 이후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사람들에게는 저속노화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저는 한동안 ‘고속노화’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주말에도 근무를 하거나 월요일의 36시간 당직 근무를 앞두고 공포에 떨며 지내곤 했죠. 사직 후에는 개인 유튜브 콘텐츠를 쌓았고, 새로 MBC 라디오 DJ를 맡으면서 방송 준비에도 힘쓰고 있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악기 연주와 발성 연습을 번갈아 하고,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망가진 몸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어요.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10시간을 내리 잤는데, 아직 지난 몇 달간 쌓인 ‘수면 부채’를 갚는 중입니다.
유튜브와 라디오, 두 매체를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요? ‘정희원의 저속노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 이유는 조건과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는 ‘풀 버전’ 콘텐츠가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제 이야기가 종종 ‘이걸 먹으면 젊어진다’는 식의 자극적 메시지로 왜곡되는 게 굉장히 싫었거든요. 또한 그동안 쓴 책, 칼럼, 타 채널 인터뷰 등이 흩어져 있었는데, 이를 한곳에 아카이빙하고 독립적으로 목소리를 낼 ‘스피커’를 만들고 싶었어요. 약 11개월 전 론칭한 채널이 오늘 구독자 50만 명을 달성했어요. 처음에는 ‘50만 명이 되면 스피커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1년 만에 목표를 이룬 셈이죠. 라디오는 유튜브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중장년층까지 아우를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매체라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유튜브에서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논문형 콘텐츠를, 라디오에서는 택시에서 잠깐 들어도 이해되는 정리된 이야기를 전할 계획입니다.
한국에 저속노화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을 향해 친절하게, 때론 단호한 목소리로 건강한 삶을 위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무수히 반복하는 일이 때로는 지겨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많이 지겹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나라가 망하게 생겼기 때문이에요. 제 일은 대규모 인구 집단의 건강 상태와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고,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죠. 선진국이 어떻게 나라의 미래를 개선하는지도 잘 알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 관료들은 관심이 없거나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움직이죠. 그것도 매우 후진적인 방식으로요. 결국 대중이 먼저 알아야 정치와 정책이 변하죠. 그래서 대중 활동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에요. 스피킹 파워를 키워 개개인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면 인구 집단의 건강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료실에서 나와 사회적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금이 커리어 변곡점처럼 보입니다. 향후 10년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것을 일종의 ‘사회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향후 10년에 걸쳐 군사 작전처럼 치밀하게 대규모 예방 건강 증진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에요. 기업과 지자체가 시민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도록 하고, 가공식품 업체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더 건강한 방향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려고 해요. 궁극적으로는 한국인의 식습관 전반을 건강한 쪽으로 이동시켜 가공식품과 F&B 산업 전체의 ‘운동장 기울기’를 바꾸고자 합니다.
정희원 교수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스피킹 파워가 필요하지만, 대중 활동에는 필연적으로 오해와 잡음도 따릅니다. 이 간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누군가는 저를 ‘쇼닥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원래 연구자의 역할은 연구에 그치고, 정책 수립과 집행은 정책가와 관료의 몫이에요. 하지만 역할 구분이 무너진 지금, 실용 학문을 하는 연구자는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해야 해요. 그런데 교수가 보여주기식 연구에 매달리거나 연구비를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쓰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제가 15년간 집중한 ‘노쇠’ 연구 분야조차 AI 등 무관한 요소를 억지로 끼워 넣어 연구비를 받는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 수 없어요. 노쇠 예방과 개선을 위한 해법은 선진국 사례만 봐도 답이 보이며, 이를 따라가는 것도 시급한 상황이지만 그조차 실행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진 자원으로 연구와 실행을 계속 이어가려 합니다.
왜곡된 저속노화 개념을 바로잡고,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법을 전하는 신간 <저속노화 마인드셋>.
신간 <저속노화 마인드셋>을 읽으며, 아직 교수님의 저서를 읽지 않은 사람은 이 책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널리 퍼진 만큼 왜곡되기도 한 저속노화 개념을 다시 단정하게 바로잡고, 개개인이 삶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명확하게 안내하는 책입니다. 저 역시 이번 책을 저속노화 입문서로 권하고 싶어요. 생물학적으로 노화를 늦추려면 생활 습관 개선이 필수예요. 그런데 그 전에 먼저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과 사회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해요. 이 관점이 ‘뿌리’가 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줄기’가 되며, 그 위에 건강한 생활 습관이 접붙여지죠. 이런 과정을 통해 뇌가 맑아지고 라이프스타일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가속노화를 부르는 활동보다 나를 성장시키는 신체, 인지, 사회 활동을 늘리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노화 속도를 늦추는 ‘수비적 접근’과 기능을 개선하는 ‘공격적 접근’을 모두 합쳐 삶을 온전히 ‘풀 소유’하자고 주장해왔어요. 많은 사람이 저를 ‘무소유’를 주장하는 사람으로 오해하지만, 사실 자기 돌봄과 퍼포먼스 향상, 좋은 경험을 모두 갖는 것이 목표입니다.
책 읽기, 글쓰기, 운동하기, 춤추기, 악기 연주하기 등 적극적인 인지 활동을 권하며 본인의 삶 속에서 행하고 있는데, 논문 읽기는 일이 아닌 여가로 즐긴다는 말이 진실인가요? 또한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연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직업 연구자가 되어야 하고, 저 역시 스스로의 정체성을 연구자로 생각해요. 그래서 논문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일이 아니라 즐거움에 가까워요. 악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연습을 ‘일’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죠. 최근에는 서강대 이철승 교수의 <오픈 엑시트>를 읽었어요. 이전 저서 <쌀 재난 국가>에 이어 쌀농사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여러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에요. 그 전에는 김영민 교수의 <한국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는데, 두 권 모두 한국의 모순과 기형적인 구조를 깊이 연구한 저자들의 책입니다.
평생 함께할 악기로 호른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호른을 좋아했어요. 특히 고3과 재수 시절에 말러 교향곡을 자주 들었는데, 말러는 어린 시절 군대 근처에서 들은 호른 소리를 음악에 풍부하게 담았어요.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솔로를 들으며 ‘이 악기는 꼭 연주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오늘 아침에도 새벽부터 연습실에서 호른을 연습했어요. 호른은 며칠만 소홀히 해도 금세 소리가 무너지는 악기예요. 연습할 때는 특히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분석적으로 접근해요. 운동이나 삶의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죠. 가장 불편하고 어려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집중하는 것과 대충 흘려보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삶에서 경험하는 많은 것이 그래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편안하려고만 하죠.
(왼쪽) 정희원 교수가 CJ제일제당과 협업해 선보인 렌틸콩 햇반.
(오른쪽) 정희원 교수가 오랫동안 연주해온 악기, 호른.
이번 책에서 “편안함은 저속노화가 아니라 가속노화를 부른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근력을 길러야 하는데 계속 안마의자에만 누워 있다면 결국 걷지 못하게 됩니다. 하기 싫다고 안 하는 사람을 제가 억지로 설득할 수는 없죠. 하지만 그런 삶을 설계하면 결국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이 모두 떨어집니다. 그런데 의료 시스템은 더 발달해 있으니까 수명이 줄어들지는 않아요. 이게 오히려 비극이 되는 게, 간병이 필요한 상태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빈곤하게 보내게 되는 거죠.
반대로 지나치게 엄격하게 노화 관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조언을 하나요? 진료실에서는 노화에 대한 거부감과 강박이 큰 사람을 자주 봅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40대 후반~50대 초반이 지나면 외모 변화에 강하게 저항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결과 안티에이징 시술, 건강기능식품, 음식에 집착하게 되죠.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노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빨리 사망하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높아요. 블루존 장수 지역 사람들을 보면 특정 음식이나 보조제에 집착하지 않고, 평소에는 저속노화적 생활 습관을 유지하되 즐길 땐 즐기는 균형을 갖고 살죠. 결국 공포와 불안, 집착을 내려놓고 노년을 즐겁게 설계할 수 있어야 해요.
교수님의 글을 읽다 보면 나의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지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면 금세 무너지곤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자신의 현재 상태를 명확히 파악해야 해요. 악기를 연습한다면 녹음을 해서 들어보고, 회사를 운영한다면 재무제표나 손익계산서를 확인하는 것이죠. 문제를 파악한 뒤에는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요. 지극히 내향적인 저도 한 사람을 만나면 세 사람을 소개받고, 그중 좋은 만남이 있으면 또 세 사람을 소개받는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넓혀왔어요. 책을 읽으면 저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어요. 최근에는 AI도 활용해요. AI는 일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 내가 모르는 언어권의 문헌, 포럼을 찾아주기 때문에 언어 장벽을 넘는 데 큰 도움이 되죠. 글을 읽으며 문제를 분석하는 틀을 배우고, 마인드맵으로 생각을 구조화해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마인드맵 중심에 있는 화두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저속노화연구소’라는 법인을 성장시키는 방법이 가장 큰 화두예요.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목표 아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으로 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 어떤 인력이 필요한지, 누구에게 조언을 구할지, 어떤 연구 집단이나 연구소, 스타트업을 벤치마킹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연구가 기본이지만 대중 활동과 캠페인을 통해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예요. 겉멋만 들고 남의 자원을 낭비하는 일도, 연구만 고집하다 재정난에 빠지는 일도 피해야 해요.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영양제 팔이’가 되는 것도, ‘이슬만 먹는 송충이’처럼 연구만 하다가 굶는 것도 지양해야 하죠. 연구, 재정, 대중 활동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지금 저에게 가장 큰 과제입니다.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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