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SEOUL ART WEEK
예술로 물드는 9월, 서울 전역에서 펼쳐지는 예술적 사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몇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Courtesy of Frieze, Lets Studio
페어장에서
9월에는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함께 열린다. 운동장만 한 두 페어장에서 300여 개의 갤러리가 동시에 전시를 펼치는 이른바 ‘더블 페어’다. 프리즈 서울은 9월 4일부터 6일까지, 키아프 서울은 7일까지 하루 더 열린다. 작품 구매를 목적으로 한다면 두 곳 모두 9월 3일에 진행하는 VIP 전용 프리뷰를 노려보는 것이 좋다. 여유 있게 작품를 관람하려면 폐막 직전인 오후 6시 무렵이 적당하다. 그 시간 즈음에는 관람객이 저녁 식사나 행사에 참여하느라 떠나고, 갤러리들도 아티스트나 VIP 컬렉터들과의 프라이빗 디너를 위해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조용히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선보인 작품들을 호젓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프리즈는 코엑스 3층 C·D홀에서 120여 개, 키아프는 코엑스 1층 A·B홀과 2층 ‘더 플라츠’에 175개 갤러리가 참가한다. 프리즈 서울의 핵심 섹션은 ‘포커스 아시아’다. 도쿄 콘 갤러리의 다이키 요코테(Taiki Yokote), 서울 백아트의 추미림, 드로잉룸의 임선구, 상히읗의 정유진, 타이페이 PTT 스페이스의 크리스틴 티엔 왕(Christine Tien Wang) 등 2012년 이후 설립된 아시아 기반의 갤러리 10곳이 솔로 부스를 꾸린다. 이 섹션은 동시대 미술에 새로운 감각을 수혈하는 신진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 접근성도 좋다.
키아프 서울에서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리버스 캐비닛>을 통해 미술 시장에서 큐레토리얼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에 반박할 성찰의 순간을 마련한다. 일민미술관 윤율리 학예실장과 더 피프스 플로어(The 5th Floor) 이와타 토모야 큐레이터가 현대미술의 가치와 자본이 충돌하고 얽히는 아트 페어의 한가운데에서 그 특수성을 반영한 특별전을 연다. 윤율리 큐레이터는 “미술사는 수집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고, 전시는 그것을 진열하는 형식”이라며, 이번 전시를 ‘작가-컬렉터-관객’이라는 전통적 삼각 구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 페어 관람을 이어가면 자연히 피로가 쌓인다. 그럴 때는 코엑스 내부 스튜디오 159에서 열리는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추천한다.
Courtesy of Frieze, Lets Studio
키아프 서울에서 열리는 특별전 <리버스 캐비닛>에 참여하는 정금형 작가의 ‘Under Maintenance’ 설치 전경. Photo by Nick Ash Nick Ash
프리즈 하우스와 DDP에서
지난해 프리즈가 종말을 고했다는 무근거 소문이 퍼진 것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올해 4회째를 맞이하는 프리즈 서울은 새로운 소식을 들고 왔다. 먼저 새로운 공간, ‘프리즈 하우스 서울’이 공개되었다. 서울 약수동에 위치한 이곳은 한국 현대사의 산물인 1988년 건물을 섬세하게 리노베이션한 결과물이다. 총 210㎡의 규모로 4개 층에 걸쳐 구성되어 있으며, 전시실 2개와 조각 작품에 특화된 실내 공간, 그리고 넓은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정원에는 일본 건축 스튜디오 SANAA가 설계한 설치 작품이 자리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연중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이 열리는 문화 허브로 자리 잡을 예정이다.
더욱 놀라운 소식은 세계 정상의 디자인 페어인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가 오는 9월 1일부터 14일까지 자하 하디드의 상징적 건축물인 DDP에서 아시아 최초 전시를 개최한다는 것. 이번 전시는 <창작의 빛: 한국을 비추다>라는 제목으로 런던, 파리, 뉴욕, LA의 카펜터즈 워크숍 갤러리와 브뤼셀, 제네바의 오브젝트 위드 내러티브 등 갤러리 16곳과 국내외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 170여 점이 선보인다. 국내 참여 작가로는 김민재, 이광호, 정다혜, 최병훈 등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한다.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1 Ruffled Chair, 2025 by Minjae Kim for Marta. Courtesy of Marta
2 Unearthed Forms, Scotty, 2023 by Weon Rhee for Charles Burnand Gallery. Courtesy of Myoung Studio
3 A Time of Sincerity, 2025 by Dahye Jeong for Soluna Fine Craft. Courtesy of Soluna Fine Craft
밤의 미술관에서
몇 년 전 프리즈 런던에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도시 전체가 프리즈 위크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리젠트 파크의 상징적인 프리즈 천막 아래에 수십 점의 조각이 설치된 ‘프리즈 조각’ 섹션이나 로컬 아트 신을 강렬하게 느끼게 했던 ‘프리즈 라이브’ 섹션이 바로 그런 감동을 선사했다. “프리즈는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와 이벤트를 통해 도시 자체를 예술 작품처럼 탐험하는 ‘프리즈 위크’가 매우 중요하다”고 권민주 프리즈 아시아 VIP 및 사업개발 총괄이사는 말한다. 행사 기간 동안 공공 미술관, 상업 갤러리, 비영리 기관 등이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도시를 찾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내는 일을 담당하는 그는 강화된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매년 큰 인기를 끈 ‘프리즈 나이트’는 올해에는 ‘네이버후드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계속된다. 갤러리들이 밤 10시까지 문을 열고 DJ 퍼포먼스와 칵테일 파티, 아티스트 토크 등 풍성한 이벤트를 펼치며, 서울 곳곳을 작은 축제장으로 변신시킨다. 먼저 9월 1일에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개막과 함께 ‘을지로 나이트’가 펼쳐진다. 양혜규 스튜디오를 비롯해 여러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가 특별한 밤의 풍경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2일에는 참여 갤러리들이 남산 주변으로 널리 흩어져 있어 전략적인 동선 설계가 요구되는 ‘한남 나이트’, 3일에는 청담동 가구거리와 도산공원 일대를 돌며 즐기는 ‘청담 나이트’가 예정되어 있다. 마지막 4일에는 삼청동 일대의 갤러리들이 모이는 ‘삼청 나이트’가 열리는데, 특히 장영해의 퍼포먼스 작품이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라이브 아트와 퍼포먼스 아트를 조명하는 ‘프리즈 라이브’ 섹션의 일부로, 비물질적 에너지를 매체로 삼아 오직 그 순간에만 살아 숨 쉬는 작가들의 수행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작가의 눈과 귀가 되어 촬영을 도맡는 360° 카메라를 곁에 두고 포즈를 취한 아티스트 임영주.
임영주는 과학과 신앙, 진실과 소문, 사실과 판타지를 엮어 ‘믿음’을 탐구해온 멀티미디어 작가다. 괴석, 기상예보, 민간설화 등 사회 곳곳에 드러난 불확실한 믿음의 징후들을 영상, 설치, VR, 웹사이트, 책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왔다. 올해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작으로 선정된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을 프리즈 서울 페어에서 선보이며,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5> 전시에서는 신작 ‘고 故 The Late’를 발표한다.
셔츠, 발레리나 슈즈 LONGCHAMP. 벨트 랩스커트 LORENA ANTONIAZZI.
믿음의 풍경
올해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 임영주가 ‘헛것들’로 엮어낸 신묘한 이야기로 관객을 초대한다.
임영주는 2016년부터 3~4년 주기로 특정 주제를 출발점 삼아 이를 확장하며 여러 작품을 만들어왔다. 초기 작품들에서는 ‘돌’이 핵심 매개체로 등장한다. 운석과 사금을 찾는 동호회 회원들이 사금을 뜻하는 ‘요정님’을 찾는 현장을 기록한 영상 ‘돌과 요정’(2016), 공영방송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애국가 영상에 등장해 널리 알려진 ‘촛대바위’를 화면 정중앙에 놓고 줌인·줌아웃을 반복하는 작품 ‘애동’(2016/2018) 등은 돌과 그 주변 풍경에 관한 서사를 확장하며 이어졌다. 최근에는 작업실 창밖의 묘지를 바라보며 떠올린 죽음 체험에 대한 단상에서 출발해 ‘웨이팅 M’(2021), ‘라이다라이다 내 무덤 좀 찾아주소’(2023), ‘미련 未練 Mi-ryeon’(2024)으로 차례차례 이야기를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임영주는 한국 사회에서 미신과 신념, 종교적 믿음이 형성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영상, 설치, 퍼포먼스, 책, VR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를 표현해왔다. 돌과 같은 자연 요소뿐 아니라 기상예보, ‘홍콩할매’ 같은 도시 괴담이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경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이러한 ‘불확실한 믿음’을 현대 과학기술과 병치해 현실 너머를 상상하고 죽음, 종말, 외계 같은 실존적 주제까지 담론을 확장하고 있다.
올가을, 임영주의 작업이 한국 미술계의 주요 무대에서 주목받는다. 8월 말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5> 전시에서는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온 외계에 대한 환상과 시도 그리고 실패를 탐구하는 신작을 선보이며, 9월 초에는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서 페어장에서 3채널 영상 설치 작품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을 공개한다.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의 작업실을 찾았다. 인터뷰는 완성을 목전에 둔 신작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먼저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이는 ‘카밍 시그널’은 어떤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제목은 동물이 위기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진정 신호(Calming Signal)’에서 가져왔어요. 3채널 영상 설치작으로 ‘신비’와 ‘박사’라는 두 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중심축으로 삼아 미래에 대한 경고와 불안의 징후를 탐색하는 작품이에요. 이번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가 ‘퓨처 코먼스(Future Commons)’를 주제로 공동체와 공유 경험을 검토하는 작업을 조명한다고 들었을 때, ‘카밍 시그널’이 바로 그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각 문화권의 회전춤처럼 반복적이고 변형된 행동 양식이 안정성의 표시인지 경고 신호인지 되묻고, 개인의 몸짓과 공동체의 리듬이 어떻게 서로를 반영하는지를 영상 언어로 포착하고자 했어요.
<올해의 작가상 2025> 전시에서 2023년부터 작업해온 ‘고 故 The Late’를 선보인다고 들었어요. 어떤 작업인가요? 몇 년 전에 간단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침상에 누운 채 수술실로 이동하고 전신마취를 하는 수동적이고 제한된 경험을 하면서, 이를 VR로 구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보통 VR 작품은 헤드셋을 쓰고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감상하는데, 저는 그런 방식이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수동적이고 제한된 상태를 재현하면 더 깊게 몰입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당시 입주해있던 레지던시의 창밖에는 양지바른 묘지가 있었어요. 매일 그 묘를 보면서 ‘저기 누워 있는 사람은 편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죠. 그러다가 누군가 그 묘가 사후를 대비해 만들어둔 ‘가묘’라고 알려줬어요. 저는 풍수 좋은 터에 묫자리를 마련하는 전통적 풍습이 어쩌면 한국 최초의 ‘메타버스’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이런 사유의 과정을 거치며 ‘빈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이번 전시에서 제가 하려는 일은 그런 ‘빈 공간’에 떠도는 ‘헛것’들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 ‘보려는 노력’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포착하려 합니다. 영상, 책, 웹사이트,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로 구성된 ‘고 故 The Late’는 개별 작업들을 묶는 전시의 제목이자 작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아득한 오늘> 설치 전경.
임영주 예술 세계에서는 동일한 주제가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표현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됩니다. 최근작은 대체로 책이자 영상이자 설치이며 퍼포먼스인데, 매체 간 유연하고 종합적인 작업 태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에게 매체는 이야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땅’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엄격히 구분해서 작업하는 게 아니라 각 매체의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택하죠. 예를 들어 웹사이트는 많은 페이지들을 겹겹이 쌓을 수 있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거나 복합적일 때 주로 활용해요. 영상은 제 내러티브를 집중해서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매체이고, 책은 그중에서도 가장 미래적인 매체라고 생각해요. 접을 수 있고 손에 쥘 수 있으며, 독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 같은 느낌이죠. 책이 지닌 신비롭고도 똑똑한 힘 덕분에 항상 ‘이걸 어떻게 잘 다룰까’ 고민하고요.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공한 회화라는 매체는 어떤 위치인가요? 미술가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상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작업 과정에서 영상 편집이 얼마나 섬세하고 반복적인 작업인지 체험했죠.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프레임 단위로 계속 고치면서 만들어가는 게 좋은 점도 있지만, 동시에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영상 편집과 병행해서 그림을 그렸어요. 유화는 그림을 그린 뒤 물감이 마르기까지 한나절 정도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저는 조용히 생각을 해요. 회화는 내 마음이 쪼그라들었을 때, 그걸 펴는 활동이라는 의미가 컸어요. 작업실에 방문한 큐레이터들이 ‘왜 회화 작품들을 보여주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매체를 함께 보여주는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임영주, ‘석력’, 2016, 기록 영상, 단채널, 1분 50초(loop)
임영주, ‘애동’, 2018, 단채널 영상,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반복 재생, 29분 53초, 작가 소장.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독특한 믿음의 구조를 오랫동안 탐구해왔어요. 한국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국 사회는 정말 빠르게 전환하는 것 같아요. 서로 대척점에 있는 믿음, 예를 들어 A와 B조차도 마치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듯이 손쉽게 A에서 B로, B에서 A로 바뀌곤 하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마음의 작용 기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변화들을 무시하거나 인정하는 모습이에요. 어느 순간 갑자기 ‘이게 말이 되느냐’며 분노로 바뀌기도 하고요. 저는 이 빠른 전환 자체가 무속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믿음의 구조와 유연성은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성향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종교와 미신 같은 정신적인 영역을 역설적으로 과학적 사고 방식과 대비시킴으로써 둘 간의 유사성에 주목한 ‘테스트_물질’ 같은 초기 작품이 인상적이었어요. ‘테스트_물질’은 뜨거운 돌 위에 손을 올려놓고 견디는 실험을 한계치인 59초 동안 반복 재생해서 마치 무한히 견디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영상이에요. 길을 걷다가 종교 단체에서 나눠주는 간행물을 받게 될 때가 있는데, 그 안에는 과학적 근거를 내세워 교리를 설명하는 내용이 많죠. 반면 초등 교과서에 실린 과학 실험 방법이나 상식이 오히려 명상적, 심리적 성격을 띠기도 해요. 어릴 적 우리는 그런 내용을 믿음에 근거해서 받아들였고요. 이런 맥락에서 교과서의 실험 방식을 차용해 미신이나 종교적 수련법들을 유사 과학 실험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 ‘테스트_물질’이에요.
임영주, ‘카밍 시그널’, 2023/2025, 3채널 영상 설치, 콘셉트 이미지.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 후원으로 제작.
‘테스트_물질’을 비롯한 초기 작품에서 ‘돌’이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데, 돌의 어떤 면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괴석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괴석의 구멍이나 틈에 주목하는 이도 있고, 돌의 형태나 실루엣을 보는 이도 있어요. 저는 그 괴석 자체가 어떤 다른 곳으로 통하는 ‘포털’이나 ‘렌즈’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진짜 렌즈나 포털로 작동하려면,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을 잠시 멈추게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돌만 한 게 없다고 느꼈어요. 나무를 보면 ‘대략 100년쯤 됐겠구나’ 하고 어설프게나마 나이를 추정할 수 있지만, 돌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1억 년인지 3000년인지 가늠하기 어렵잖아요. 그 불확실성과 시간의 불명확성, 바로 돌을 포털로서 상상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임영주 작품들을 관통하는 헛웃음 나게 하는 유머를 정말 좋아해요. ‘웃음’의 포인트와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나요? 글쎄요, 저는 사실 농담을 잘 못 알아듣는 편이에요. 누군가 은유적이거나 유머러스한 말을 하면,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하죠.(웃음) 어떤 사람들은 저를 만나본 뒤에 ‘생각보다 조용하고 활동적이지 않다’며 놀라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제 작품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특별하거나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굳이 얘기하자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지나쳐 버리거나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들려주는 것이 유머 포인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역시 옛날 드라마나 관심 가는 이야기들을 무심코 지나치다가 ‘뭐야 뭐야’ 하며 들여다보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들을 작품으로 연결하니까요.
WRITER
안동선(아트 칼럼니스트)
EDITOR
김지선, 강슬비
PHTOGRAPHER
진소연
HAIR&MAKEUP
구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