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YACHTS&BEYOND

럭셔리 호텔 브랜드가 선보이는 웅장한 크루즈 여행부터 아늑한 소규모 요트에서 즐기는 자유로운 항해까지. 바다 위에 펼쳐진 요트 여행의 가능성에 대하여.

바다 위의 호텔

크루즈 요트 에브리마(Evrima)

리츠칼튼의 우아한 항해
2022년, 리츠칼튼은 럭셔리 호텔 브랜드 최초로 전용 크루즈 요트 ‘에브리마(Evrima)’를 출항하며 요트 여행의 시대를 열었다. 에브리마는 전통 크루즈 요트의 대중적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카지노나 대형 공연장 대신 스파와 미식, 예술, 웰니스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뷔페 대신 미슐랭 스타 셰프의 코스 요리를 제공해 조용하고 우아한 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에브리마는 곳곳에 유럽 현대 작가들의 아트 컬렉션을 전시해 ‘움직이는 갤러리’라 불리기도 한다. 리츠칼튼은 요트를 단일 상품이 아닌 컬렉션의 개념으로 확장 중이다. 2024년에는 리츠칼튼의 두 번째 요트 ‘일마(Ilma)’가 운항을 시작했으며, 세 번째 요트 ‘루미나라(Luminara)’ 역시 머지않아 출항할 예정이다.

아만의 요트

아만의 명상적인 요트
아만은 고요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공간에 구현하는 데 능한 브랜드다. 이제 그 미감을 바다 위에서도 이어갈 예정이다. 2027년 출항 예정인 아만의 첫 슈퍼요트 ‘아만가티(Amangati)’는 총 47개의 스위트룸만을 갖춘 프라이빗 요트로 탑승객 모두에게 조용하고 여유로운 항해를 보장한다. 세계적인 요트 디자인 스튜디오 시노트(Sinot)가 설계한 아만가티는 우아한 곡선미의 선체에서 아만 특유의 비움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객실은 일본의 료칸에서 영감을 받아 원초적인 평온함을 불러일으키도록 디자인됐다. 곡선 형태의 천장과 대형 창이 탁 트인 전망을 품고, 바다로 바로 연결되는 넓은 전용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일부 객실에 포함된 작은 수영장에서는 수평선을 독점하며 수영을 즐길 수 있고, 일본식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스파, 바다를 향한 테라스 다이닝, 해상 위의 비치 클럽, 세련된 재즈 클럽 등에서 다채롭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일반 예약뿐 아니라 프라이빗 전세 서비스도 가능해 특정 고객이 전 일정을 온전히 누리는 맞춤 항해도 가능하다. 배터리 기반 전력 시스템을 포함한 친환경 기술을 도입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등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설계도 눈에 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크루즈사와 협업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항로를 설정하고 있다. 바다 위에서도 자신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지킬 수 있도록 설계된, 진정한 의미의 럭셔리를 경험하게 하는 요트다.

포시즌스의 요트

포시즌스가 제안하는 연결의 경험
2026년 1월 출항 예정인 포시즌스의 첫 번째 요트 ‘포시즌스 I(Four Seasons I)’은 움직이는 리조트 그 자체다. 총 95개의 스위트룸을 갖춘 포시즌스 I은 고전적인 선박의 곡선미에 모던한 감각을 더한 디자인이다. 객실 대부분이 바다를 향해 열린 통창과 전용 테라스를 갖추고 있으며, 일부 객실에는 프라이빗 수영장과 자쿠지까지 포함되어 있어 바다 위의 고급 레지던스를 연상케 한다.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퍼널 스위트(Funnel Suite)다. 무려 4개 층으로 이루어진 이 스위트룸은 요트 상단의 독립된 구조로 전용 수영장과 루프 데크, 탁 트인 파노라마 뷰를 갖춘 진정한 플래그십 공간이다. 그러나 이 요트의 특별한 매력은 내부 공간에만 있지 않다.
요트 위에서의 연결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 포시즌스는 ‘마리나 데이(Marina Day)’라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마리나 데이에는 정박 중인 요트에서 내려 전용 보트로 섬이나 마을을 탐험할 수 있으며, 요트 후면의 해양 플랫폼에서는 스노클링, 제트스키, 패들보드 같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여기에 다양한 미식을 경험할 수 있는 11개의 레스토랑과 바, 스파 시설과 피트니스 센터, 실내와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요가 체험 등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이 더해져 항해 중에도 몸과 마음을 온전히 재충전할 수 있다. 이처럼 포시즌스의 요트는 사람과 공간, 미식과 웰니스, 새로운 환경을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소규모 요트 여행기

요트를 타는 사진

Photo by Stewart Ferebee/Trunk Archive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은 요트 여행이야.” 수년간의 세계여행을 끝내고 온 선배는 자기가 했던 모든 여행을 통틀어서 요트 여행이 최고라고 이야기했다. 여행이라면 나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경력을 자랑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방학이 되면 돈을 탈탈 털어서 어디로든 배낭여행을 떠났고, 회사에 다닐 때도 2주간 휴가를 내고 유럽 여행을 떠나곤 했다. 여행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여행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열망에 에어비앤비로 직장을 옮기기도 했고, 7년간 출장을 포함해 거의 매달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요트 여행이라니, 그것도 몇 시간 체험이 아니라 요트에서 먹고 자는 여행이라니,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여행이었다.
여행에 관해서는 최고의 실행력을 자랑하는 나는 곧장 함께 떠날 사람들을 모았고, 모험심 가득한 여섯 사람이 모여 푸켓으로 떠나는 4박 5일간의 요트 여행을 시작했다. 요트의 종류는 크게 ‘모노헐(Monohull)’과 ‘멀티헐(Multihull)’로 나뉜다. 모노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체가 하나인 요트로 2~4인 정도의 소규모 여행에 적합하다. 멀티헐은 선채가 두 개 이상인 요트이며, 그중 두 개의 선체를 이어 붙인 카타마란형(Catamaran) 요트는 4~8인 규모의 여행에 적합하다. 카타마란형 요트는 넓은 갑판이 특징으로, 누울 수 있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항해를 하면서 소위 ‘멍때리기’ 하기에 완벽한 구조다. 내부 면적도 넓어서 보통 방 4개, 화장실 2개, 거실, 주방, 라운지까지 갖추고 있다. 예약한 요트로 가니 미리 준비하고 있던 선장님이 우리를 반긴다. 요트 여행이 보편화된 유럽 사람들은 요트만 빌려 직접 운항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장님이 필요하다. 선장님의 손을 잡고 선착장에서 요트로 점프한다. 생각해보니 이제 바다에 둥둥 떠서 4박 5일을 보내는 거다. 잠도 바다 위에서 자고, 밥도 바다 위에서 먹는다. 육지가 아닌 바다 위에서 살아보는 경험이다.
배가 출항하고 육지와 점점 멀어진다. 바닷바람이 온몸에 부서지듯 닿는다. 보이는 것은 오직 수평선이다.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어느 순간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자리에 가만히 머물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현은 행복의 조건으로 ‘지금 여기에 머무르기’를 말한다. 말은 너무 쉽다. 그런데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지금 여기에 머무른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일상에서 신경 써야 하는 수많은 일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대한 후회까지 버무려지면 지금 여기는커녕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트 위에서는 나도 모르게 무념무상 상태로 빠져든다. 요트를 타기 전에는 열심히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감상도 올리고, 인생샷도 실컷 찍고, 갑판 위에서 책도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요트를 타니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그냥 가만히 존재하게 된다. 바다를 바라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람과 파도의 소리를 듣는다. 그야말로 ‘지금 여기’ 머무르는 거다. 육지에서는 너무나 어려웠던 일이 요트 위에서는 왜 이렇게 쉬운 걸까.

요트 위에서

Photo by Paul Westlake/Trunk Archive

육지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던 ‘지금 여기에 머물기’를 자연스럽게 실천하다 보면 배가 고파온다. 밥을 해 먹을 시간이다. 대부분의 요트 회사에서는 미리 주문하면 식재료를 요트에 채워준다. 덕분에 요트의 냉장고와 냉동실에는 쌀, 빵, 닭고기, 소고기, 새우, 각종 채소와 과일, 요거트 등이 가득하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요리를 시작한다. 바다 위에서 진수성찬을 즐기고 싶다는 욕심에 고기도 굽고, 파스타도 만든다. 에어컨이 없는 주방에서 요리하니 땀이 줄줄 흐른다. 육지에서 이렇게 땀 나게 요리를 했다면 분명 불편하고 빨리 샤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을 텐데, 여기에서는 마치 자연인이 된 듯 모든 것이 용납된다. 바다 위에서 땀 뻘뻘 흘리며 요리하고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그 맛이란, 미슐랭 레스토랑과도 바꿀 수 없다. 그리고 요트 위에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라면이다. 한국에서 먹는 라면은 정크 푸드지만, 해외에서 먹는 라면은 소울 푸드다. 하물며 요트 위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말해 무엇하랴. 첫 요트 여행에는 봉지라면만 가져갔는데, 다음 여행부터는 컵라면도 함께 챙겼다. 멀미 때문에 속이 안 좋아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 컵라면을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이 괜찮아진다. 요트 위에서 먹는 컵라면은 소울 푸드를 넘어 보약이 되는 걸까?
배가 부르면 이제 수영을 할 시간이다. 요트에서 바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다시 바다 위로 올라온다. 스노클링을 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한 바다도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도 있다. 수심이 기본 20미터 이상이라 수영에 자신이 없다면 멋은 좀 떨어지지만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드는 게 안전하다.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퐁당 떨어지며 생각한다. 다음번에 반드시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야지. 수영이 지겨워지면 카야킹을 하거나 패들보드를 타도 된다. 특히 카약을 하며 아침을 맞이하는 건 요트 여행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매일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 갑판 위의 그늘막에 앉거나 누워서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쩌면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조금은 유치한 생각마저 든다.
럭셔리 리조트나 호텔과 비교하면 요트 여행은 불편하다. 비용은 동남아의 5성급 리조트와 맞먹고 성수기에는 훨씬 더 비싸지기도 한다. 물을 펑펑 쓰며 샤워할 수도 없고, 잘 차려진 조식이나 말끔히 정리된 선베드와 수영장을 기대할 수도 없다. 좁은 방에서 출렁거리는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며 잠을 청해야 한다. 날씨가 안 좋으면 출렁거리는 파도 때문에 멀미가 올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모든 순간과 경험을 그리워하고 잊지 못해서 계속 찾게 된다. 아마도 바다 위에서는 과거도 미래도 잊어버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EDITOR
김지선, 백가경
WRITER
김은지(헤이요트 공동 창업자)
PHOTO
Photo by Paul Westlake/Trunk Archive, COURTESY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