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사진가의 여름
더위와 습도, 여러 가지 이유로 여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이들을 위해 심미안을 지닌 세 명의 사진가들이 여름 안에서만 응시할 수 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찰나를 전한다.
첫 다이빙의 순간
한승무 작가가 호주의 바닷가 마을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바라본 시원한 여름의 찰나.
한승무, ‘브런스윅헤드 다리에서 다이빙하는 아이들’
한승무, ‘브로드워터 바닷가의 준지와 오두막’
어떤 계기로 이 장면을 포착하게 됐나요? 첫 번째 사진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브런스윅헤드라는 동네의 다리에서 찍었어요. 해가 좋은 날이면 다이빙하는 동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죠. 저는 이곳 근처에서 살고 있는데, 각각 7살, 8살이 된 제 아이들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다리에서 뛰어내린 날이었어요. 두 번째 사진은 브로드워터라는 바닷가입니다. 저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다라서 자주 가요. 그곳에 있는 빌딩만 한 모래산에서 썰매도 타고 놀다가 태풍이 지나가면 잔뜩 떠밀려오는 나뭇가지들로 오두막 아지트를 지어요. 모래산 꼭대기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다가 준지가 손 씻으러 바다에 갈 때 찍은 사진입니다. 여름을 좋아하나요? 여름은 아무 때나 바다에 들어가도 춥지 않아서 좋아요. 해가 길어서 아이들 학교 마치고 바다에 가도 오랫동안 놀다 올 수 있고요. 한여름에는 바닷가 모래에 발이 델까 봐 숲으로 가요. 깊은 숲속 나무 그늘을 따라 물이 가득한 폭포까지 다녀오기도 해요. 또 여름은 아이들이 벗어놓은 빨래 부피가 작고 햇볕에 뽀송뽀송 잘 말라서 좋습니다. 바다와 강, 계곡 같은 자연에서 어떤 영감을 받나요? 모르겠어요. 특별히 영감을 받지는 않아요. 이상하게 사진 찍기도 어렵고요. 항상 움직이고 복잡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바다와 강, 계곡, 폭포 같은 곳은 사진을 찍으면 대부분 잘 안 나와요. 허옇게 뜨거나 지글지글하는 등 아예 못 봐줄 정도일 때도 있어요. 그래서 ‘아, 이런 곳에는 더 좋은 카메라와 렌즈가 필요한가 보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자라서 여유가 생기면 훨씬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와야지’라고 생각해요. 올해 여름휴가는 어디로 떠날 계획인가요? 제가 살고 있는 호주는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예요. 직접 차를 운전해서 호주 중심에 있는 울룰루 바위에 가보고 싶고 서핑보드도 하나 사고 싶지만, 물가가 너무 오르고 중학교 가는 아이들 학비도 만만치 않아서 아마 동네 바다나 산에 갈 것 같아요. 근래에 세운 계획이나 새롭게 관심이 가는 피사체가 있나요?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동네 부모님들이 아이들 생일 케이크를 열심히 만들곤 해요. 그 케이크들을 모은 사진집을 내고 싶어요. 그간 사진 전시는 한두 번 했는데,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요새는 사진이 너무 어려워요. 대신 올해 말에 서울에 있는 ‘하우스갤러리 2303’(@housegallery_2303)에서 그림 전시를 합니다.
복숭아와 파도
서퍼이자 사진가 안수향이 물 밖에서, 물 안에서 포착한 여름.
안수향, ‘늦여름2’, 부산, 2020
안수향, ‘This summer 2’, 미국 클로비스, 2017
안수향, ‘마지막 파도 하나’, 다대포, 2018
이 사진들은 어떻게 촬영하게 됐나요? ‘늦여름 2’는 제가 어릴 때부터 앓아온 복숭아 알레르기를 극복한 해에 찍었습니다. 사랑해 마지않던 과일, 여름의 기쁨 중 하나를 잃은 채 10여 년을 보냈어요. 그러다 우연히 몸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주저함 없이 여름을 맞이하는 기쁨이란 얼마나 좋은 것이던지요. ‘This Summer 2’는 물과 관련한 사진 작업을 하던 중 찍은 사진이에요. 물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작업이었어요. 어느 여름에 미국 서부 로드 트립 중 한 호텔에서 촬영했는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이었어요. 마찬가지로 그 경계가 흐트러지는 찰나가 참 좋았어요. ‘마지막 파도 하나’는 서핑에 푹 빠져서 살다가 포착한 사진이에요. 방수가 되는 카메라를 챙겨서 자주 바다에 뛰어드는데, 부산 다대포에서 서핑을 하다 라인업(서퍼들이 파도를 타기 위해 대기하는 지점으로 보통 파도가 깨지기 직전의 포인트를 의미)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패들링을 하던 중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작은 서프보드에만 의지해서 나아간 바다 위에서 만난 존재는 모두 다정해요. 여름을 좋아하나요? 어릴 적부터 여름에 비를 맞으며 산책하길 좋아했어요. 공원이나 절에 혼자 우비를 입고 종종 다녀오곤 했거든요. 나무나 꽃이 여름비를 맞고 나서 눈에 띌 정도로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좋았어요. 오래전부터 SNS 아이디를 ‘2nd_summer(두 번째 여름)’로 쓰고 있을 만큼 여름은 늘 영감의 원천이자 여전한 열망의 대상이에요. 바다에서 어떤 영감을 받나요? 서핑을 시작하고 나서 거의 매일 바다에 들어갔어요. 그러면 매일 달라지는 바람, 파도, 조수간만 같은 바다의 큰 흐름이나 상태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돼요. 그러다 보면 바다의 여러 운동과 파동이 나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고요.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증폭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좋아요. 지구와 달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 사이에 내가 있다는 거잖아요. 서로 끌고 끌려가고,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근사해서 마음이 늘 벅차요. 평소 좋아하는 휴가지는 어디인가요? 휴가라는 것을 가본 지 몹시 오래되었네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은 집이 있는 경주에서 휴일을 보내고 있어요. 남들은 일부러 시간 내서 여행을 오는 곳인데, 경주에 산다는 특권을 그래도 제법 잘 누리고 있답니다. 특히 좋아하는 곳은 경주 남산이에요. 포석정으로 올라가서 삼릉으로 내려오는 길에 아름다운 경치를 마주할 수 있답니다. 그간 출간한 책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아무튼 시리즈의 51번째 책 <아무튼, 서핑>을 썼어요.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다 쏟아낸 책이에요. 그래서인지 감사하게도 서퍼들로부터 좋은 피드백도 많이 받았답니다. 서핑 전문가는 아니지만 바다를 통해 얻은 긍정적인 마음과 그로 인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바다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장면과 표정에 관해 주로 서술되어 있어요. 어느 여름밤에 문득 펼치면 조금은 마음이 청량해지는 책이에요.
초록과 파랑의 변주
심규호 작가가 여름에 마주친 반짝이며 부서지는 장면들.
심규호, ‘부여(Buyeo)’, 2021
심규호, ‘파리(Paris)’, 2022
사진을 찍은 장소와 계기에 대해 듣고 싶어요. 연잎은 부여 궁남지, 분수대는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여름 햇살 아래서는 모든 것이 채도가 높고 선명하게 보이죠. 초록의 선명한 색감과 반짝이며 부서지는 물보라에 시선이 끌렸고 그것들을 담았습니다. 여름에서 어떤 영감을 받나요? 누군가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라고 물어오면 항상 겨울이라고 대답했어요. 쨍하고 소란스러운 여름이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은 바뀌기 마련이죠. 땀 흘리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었지만 여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초록과 파랑과 반짝임은 거부할 수가 없고, 제철을 즐기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은 없어요. 하늘에 닿을 듯 솟아나는 생명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여름이 좀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휴양지가 있나요? 작년에 처음으로 가본 그리스 크레타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여행을 할 때 휴양지보다는 도심 관광을 즐기는 편이라 바다가 익숙지 않았는데, 남녀노소 스스럼없이 해변에 누워 햇볕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여유로움을 느꼈어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의 경계에 위치하기에 근방의 나라들과 다른 고유의 문화와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도 신선하고 신비로웠습니다. 전시나 사진집 출간 같은 예정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임민지 작가와 함께 <데드 레터 오피스> 전시를 마무리했고, 2022년에 사진집으로 선보이고 작년에 열었던 동명의 전시 <LA PETITE MORT>의 후속 작품을 준비 중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내년 중으로 발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또 작품 활동뿐 아니라 ‘스튜디오 도시’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Editor
BAEK KA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