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다정한 통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은 환자와 사회가 외치는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써나간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

루스 핏의 울 블렌드 조거는 GOLDEN GOOSE.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은 마포구에 자리한 마인드맨션의원의 대표원장이다. 안주연 원장은 성인 ADHD와 번아웃증후군, 우울증, 스트레스 질환 등을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측면에서 고루 살피고 진단하며 내담자와 함께 풀어가는 다정한 의사다. 2016년 마인드맨션의원을 개원하기 5년 전부터 마인드맨션이라는 이름은 존재했다. 안주연 원장은 SNS에서 소위 ‘뇌과학 덕후’ ‘정신건강의학 덕후’로 불리며 7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이끌었으며, 마인드맨션은 그녀의 닉네임이었다. 좋아하는 분야에 깊게 몰입하지만 때때로 치밀한 계획에는 서툰 안주연 원장은 스스로도 ADHD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질병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남다르게 느껴진다. ADHD를 치료해야 하는 문제로만 보기보다 뜻밖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원인이 개인의 차원만이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도 봐야 한다고 역설하기 때문이다. 안주연 원장은 기꺼이 내담자의 ‘덕후’가 되어 이야기를 경청하고 기억하며 생물·심리·사회학적 측면까지 고루 돌보며 회복을 앞당긴다. 이러한 다정한 시선과 진심 어린 태도는 저서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와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 번째 책은 피로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자격을 요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과 함께 번아웃증후군을 다루는 적절한 방안을 친절히 알려준다. 두 번째 책은 ADHD임을 의심하는 내담자의 질문에 안주연 원장이 따뜻하지만 전문적인 임상 지식을 바탕으로 답변하는 형식이다.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다정한 유머, 정신건강의학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안주연 원장과의 대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초 단위의 연결감’이다. 효율이 극대화되고 사회적 위기와 경제 불황이 뒤섞인 이 시대,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결국 사람 간의 연결감을 통해 이완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몇십 년 지기 우정을 지켜내야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껏 몰랐던 타인과 우연히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도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취약성을 공유하기만 해도 가능하다. 마인드맨션에서 안주연 원장과 만나 어쩌다 정신건강의학에 푹 빠지게 됐는지, 좋은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긴 이야기를 나눴다.
무더위가 기승인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나요? 저는 사실 더위를 많이 안 타고, 여름을 좋아하기도 해요. 원래 아침잠도 많고 게으른 편인데, 여름엔 해가 일찍 뜨고 낮이 길어서 운동을 자주 하고 있어요. 환자분들의 상태를 오랜 기간 지켜보고 치료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도 보게 되더라고요. 우울증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여름에도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얘기하면서 저 역시 컨디션에 맞는 움직임을 계속해서 찾는 중입니다.
어떤 계기로 정신건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의사 역시 개인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전문 분야를 정하는 편이에요. 저는 전공의 시절부터 일반적인 사람들이 스트레스 등으로 잠시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을 주는 클리닉에 관심이 많았어요. 유년 시절 살던 집은 온통 아버지의 책으로 빼곡했어요. 여러 분야의 어른 책을 읽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저는 이야기를 듣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지만, 당시 꿈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였어요.(웃음)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제가 남들보다 뛰어나게 글을 잘 쓰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서 대신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됐죠. 여러 분야 중에서도 비교적 인문학에 가깝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에 마음을 빼앗긴 거예요. 보통 의사들의 MBTI로 ISTJ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저는 ENTP거든요. 대학 시절에도 1등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비교적 스트레스가 덜한 2, 3등이 딱 좋다고 생각했어요. 무리하지 않는 것,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 제 성향이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과 그녀가 쓴 책

안주연 원장이 현장에서 쌓은 임상 지식을 토대로 ADHD에 대한 편견 없는 정보와 진단 과정, 대처 방법 등을 써 내려간 책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

요즘 면접에서도 질문할 만큼 MBTI에 대한 호응이 뜨거워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나요? 현대는 심리학의 시대라고 하죠. 한국 사람은 유형화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어떤 유형인지 알면 상대를 파악하기 쉽다고 생각하죠. 예전부터 혈액형이나 별자리 성격 풀이가 유행하기도 했잖아요. 동시에 집단주의가 심해서 공동체에 폐를 끼치는 걸 싫어하고 모두가 성실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문화가 강해요. 개인보다는 항상 집단을 우선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고 욕망하는 것보다 당위를 먼저 따르죠. 그러니 자신을 스스로 관찰해서 알아가기보다 MBTI 같은 테스트를 통해 알게 되는 거예요. 비로소 타인과 함께 자신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게 되고요. 사실 이런 테스트가 없어도 친구끼리 ‘너는 계획적이진 않지만 창의적인 면이 있어’ 같은 식으로 말해줄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의 특성상 그런 대화가 어려워요. 일종의 결함으로 받아들이기 쉽거든요. ‘내가 계획적이지 않아서 네게 민폐를 준다는 거야?’라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요.
여전히 각박한 사회 속에서 ‘나’에 대해 알기 위해선 어떤 태도를 취하면 좋을까요? 중요한 질문이에요. 오감을 활용해서 나의 감각을 느끼고 이야기하는 걸 추천해요. 오감으로 느낀 내용에는 비교적 가치 판단이 필요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너는 시원한 음식을 좋아하는구나’ ‘나는 꽃향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 하는 식으로 가치 판단이 덜 들어간 소재로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좀 더 나아가서 직장의 점심시간에도 ‘괜찮다면 저는 샐러드를 먹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자기의 의견을 조금씩 더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어요. 번아웃증후군은 관리되지 않은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증후군이에요. 이를 완화하기 위해선 다원성을 인정하는 조직을 만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지난해 1월 출간한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를 유익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내담자의 제안으로 시작한 책이에요. 하지만 흔쾌히 승낙하기는 어려웠어요. ADHD는 증상을 모아놓은 증후군이 아니라 질병으로서 엄밀히 진단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전에 펴낸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는 번아웃증후군에 대해 쓰는 것이라 큰 부담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ADHD 관련 책은 전문적인 의료 정보와 임상을 바탕으로 써야 했기에 무게감이 달랐어요. 그러한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인연이 깊은 한 내담자가 ADHD는 외로운 질병이라며, 제가 책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또 책을 기획하는 분들도 저만의 캐릭터를 살려서 내담자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듯이 쓰면 좋을 것 같다고 오래 설득해서, 이건 운명이라고 느끼고 집필을 결심했습니다.
책을 쓰면서 유독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전에 쓴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에서 번아웃증후군은 신자유주의 등 사회구조에서 비롯한 문제라고 지적했어요. ADHD 역시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할 정도로 바쁘고 정신없는 사회 속에서 더욱 발현되는 거예요. 하지만 이를 치료하기 위한 방안을 얘기하다 보면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개인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거든요. 저는 그런 방향을 경계하기 때문에 최대한 글의 맥락과 어조를 잘 조절해서 ADHD가 반드시 개선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창의적인 측면도 있고, ADHD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애를 썼어요 .
특히 ADHD 아내를 둔 파트너의 인터뷰에서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조언을 얻을 수 있었어요. 실제 내담자와 파트너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의견을 물어보고 나서 쓴 내용이에요. 그 파트너는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서 ADHD인 아내를 돕는다고 해요. 그 기준 안에선 흔쾌히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를 넘어서게 되면 오히려 상대를 원망하거나 계속해서 잔소리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당사자 역시 기준을 넘어서는 걸 경계하고 함께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며 서로 고마운 마음을 주고받는 거죠. 그런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게 중요해요.

내담자의 감사 선물

안주연 원장이 진료를 맡았던 내담자가 감사의 의미로 선물한 자수 작품.

몇 년 전부터 ADHD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요. 때로는 이런 과한 관심이 우려되기도 하나요? ADHD는 1980년대부터 진단되기 시작한, 역사가 짧은 질환이에요. 한국은 아직 환자 발굴 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껏 몰랐던 ADHD에 대해서 여러 얘기에 과도하게 노출되다 보니 염증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렸을 때는 ADHD 증상이 있는 줄 몰랐다가 어른이 돼서야 어려움을 감지하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이런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취업난이나 경제적 난관을 겪는 와중에 ADHD의 증상을 빠르게 고쳐서 일을 잘하겠다는, 일종의 자기 계발로 여겨지는 측면은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ADHD의 원인을 찾을 때 사회구조를 봐야 한다고 언급했군요? 맞아요. ADHD는 기질적 특성이라 발달장애에 속해요. 타고난 기질은 쉽게 교정할 수 없어요. 1~2년 이상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 여유가 필요해요. 어떤 분은 약물치료 후에 증상이 호전돼서 예전에 하지 못했던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소위 ‘갓생’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기도 해요.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다면서요. 우리가 사는 발전주의 사회의 특징을 지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가열 차게 사는 거죠. 이런 목적으로 ADHD 약을 복용하면 그 양이 점점 더 늘면서 결국 탈이 나요.
원장님도 ADHD 같은 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아슬아슬하게 ADHD 경계에 있어요. 평소 계획 없이 지내는 편이지만, 사람을 만나고 진료를 보는 것을 좋아해요. 소위 ‘정신건강의학 덕후’라고 할 수 있어요.(웃음) 스스로 가장 재밌다고 느끼는 분야의 전문의가 돼서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고 치료할 수 있으니 덕업일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제 성향은 특히 환자의 진료 기록을 구조적으로 잘 볼 수 있도록 해줘요. 게다가 기억력도 좋은 편이라 환자가 오래전에 얘기했던 정보를 토대로 경향성을 알려주기도 하죠.
책에도 쓴 ‘연결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네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내향인이라도 자기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해요. 절친한 친구뿐 아니라 자주 가는 카페의 주인처럼 일시적인 사이라도 좋아요. 예전에 몇몇 예술인과 함께 연결감에 대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연결감은 ‘초 단위’라는 단어를 만들었어요. 잘 모르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언뜻 취약한 부분이나 속내를 얘기하면서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죠. 연결감이란 상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초 단위의 감각이에요. 이러한 연결감을 공유하는 관계는 동료가 돼서 협업할 수 있고 잘 맞으면 친구가 될 수도 있죠.
마인드맨션은 특히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40~50대 여성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제 또래네요. 요즘 40~50대는 예전과 많이 다르죠. 젊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주변 환경을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활력도 훨씬 높고 치매로부터도 안전하다고 해요. 나이에 구애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하면서 입고 싶은 옷을 옷장에만 넣어두지 말고, 노화에 대해 너무 스트레스받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심박수 120 정도인 운동을 꾸준히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DITOR
BAEK KAKYUNG
PHOTOGRAPHER
LEE JAEAN
FASHION EDITOR
강슬비
HAIR&MAKEUP
배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