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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같은 건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설계한 건축가 민현준은 미술이 일상이 되는 공간을 꿈꾼다. 그의 건축은 공원의 따뜻한 포용력을 닮았다.

건축사사무소 엠피아트(MPART)의 민현준 대표 사진

건축사사무소 엠피아트(MPART)의 민현준 대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건축 십 년 후의 기록’을 담은 책 <셰이프리스 미술관>을 출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하 서울관)이 2013년 11월 개관한 이후 약 12년 만이다. 2009년 12월부터 진행한 서울관의 공모전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그와 미술관의 운명적인 관계는 무려 16년 동안 지속되었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상징적인 터에 미술관을 짓기 위해 수많은 난제를 해결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지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땅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을 중재하고 미술관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작동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많은 사람의 염원과 헌신 덕분에 열린 미술관이 완공되었지만, 미술관과 그의 동행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미술관이 원래 취지대로 유연하게 적응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민현준 건축가는 집필을 마친 뒤 “드디어 끝났네요. 이제 내려놓을 수 있어요”라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서울을 대표하는 공공 미술관이 건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건축가 특유의 고집스러운 의무감에서 이제야 벗어났다.
민현준이 추구하는 건축은 한마디로 ‘공원 같은 건축’이다. 물리적으로 보면 건축물은 완공되는 순간부터 점점 노후화가 진행되지만, 공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하고 주변과 함께 무르익는다. 공원 같은 건축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등과 상생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공원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서울관 내부에 반영되어 곳곳에서 기능 없이 비워진 공간들과 만날 수 있다. 더욱이 담장과 경계가 없는 서울관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순간, 은연중에 조금씩 공간에 빠져들도록 설계되었다.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온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나 행인까지 서로 다른 이유로 모인 사람들 모두를 조용히 끌어안는다. 민현준은 이곳에서 ‘잠시 길을 잃어도 좋다’고 귀띔한다. 관람객 각자가 스스로 자신만의 동선을 만들어가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고정된 동선의 압박이나 공공 미술관에 관한 딱딱한 편견에서 벗어날수록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종친부 마당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서울관의 교육동 사진

종친부 마당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서울관의 교육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셰이프리스 미술관>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미술관의 재발견’이었죠. 앞으로 미술관을 찾는 방문객에게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화당 출판사와 함께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원래는 전문가를 위한 책을 준비했다가 일반인도 볼 수 있도록 바꾸었죠. 그러다 보니 전문가와 일반인을 위한 이야기가 섞여 있어요. 미술과 건축에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대중적으로 접근했지만, 책의 5장 ‘관람객 중심형 미술관’은 전문가한테도 생소한 부분이죠. 초고는 분량이 더 많았는데, 다행히 출판사에서 정리를 잘해줬어요. 유튜브 시대라서 다들 긴 이야기를 싫어해요. 3초 안에 건축가의 의도를 모두 보여주고 한눈에 사로잡아야 하는 시대죠. 하지만 서울관은 그렇게 볼 수 있는 건축물이 아니다 보니 그 의미와 가치를 책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관람객들이 미술관과 터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더 감흥이 클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글로 정리하는 일은 건축과는 다른 작업이었어요. 건축적 사유는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반면 글은 엄밀함이 필요했어요. 정확한 의미를 묻는 편집팀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발가벗겨진 느낌이었죠. 처음부터 정리하다 보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를 많이 했어요. 책을 출간하고 나서야 서울관 프로젝트를 끝낸 느낌이 드네요.
서울관 착공 전으로 되돌아가 보죠. 2009년 가을, 소격동의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가 개방되면서 열린 <플랫폼 2009> 전시가 생각납니다. 저녁에 들어가 보니 섬뜩하고 낯선 기운이 느껴졌는데, 이곳에 새롭게 미술관을 조성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기무사는 당시에는 쳐다보기만 해도 잡혀갈 것 같은 무서운 공간으로 인식되었어요. 공포 그 자체였죠. 바로 옆의 경복궁이 열려 있는 공간인 반면, 기무사는 군부대가 보안 감시를 위해 사용하던 공간이라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어요. 역사가들도 자세히 알지 못해서 책을 쓰면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나 출판사에서 찾아낸 기록도 있어요. 정말 기운이 센 곳이죠. 공사할 때 귀신이 나왔다거나 기무사에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어요. 일제강점기에 병원 건물로 지어졌다가 한국전쟁 발발 후 군부대가 사용하면서 기무사가 되었어요. 한국전쟁 당시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정되죠. 그래서인지 저희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하는 동안 무언가가 도와주고 있는 영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어려울 때마다 어떡하든 해결이 되었거든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신기하게 잘 풀렸어요. 이거 못 하겠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도 결국 해결이 되었어요. 프로젝트가 쓰러질 것 같다가 다시 살아나다 보니 신이 내 편이라는 느낌이었죠.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육동을 관통해 종친부로 이어지는 공중보행로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경복궁의 절경 사진

교육동을 관통해 종친부로 이어지는 공중보행로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경복궁의 절경.

테라코타 타일과의 조화를 의도한 서울박스 외피 곡면 유리 사진

테라코타 타일과의 조화를 의도한 서울박스 외피 곡면 유리.

당시 서울관 건립은 미술계의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맞아요.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에너지가 넘쳤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서울에 없다는 점에서 결핍이 있었던 터라 무엇보다 열의가 강했어요. 누가 맡아도 실패할 수 없는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저희가 참여하기 전에도 많은 에너지가 모여 있었어요. 땅의 기운뿐만 아니라 미술관 건립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고, 원로 미술인들이 제 손을 꼭 붙잡고 잘해달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사전 답사를 하면서 해외 미술관뿐만 아니라 미술품을 많이 봤어요. 어떤 작품들은 한국에 전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만 해도 해골을 쌓을 만큼 천장이 높은 공간이 없으니까 론 뮤익의 전시는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국내에 대형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죠.
책을 보면 서울관을 주변의 도시적·역사적 맥락에 조용히 녹아드는 ‘셰이프리스 미술관’으로 정의합니다. 어떤 개념의 미술관인지 설명해주세요. 책 제목이자 공모전에서 제안한 개념인 셰이프리스(Shapeless) 미술관은 형태가 없다기보다는 형태 이면의 것들로 형태를 만들려는 시도였어요. 형상을 앞세우기보다는 공간의 배열에 무게를 두고자 했어요. 이곳은 형태가 너무 세고 많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조율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형태가 되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를테면, 조선 왕조의 정궁인 경복궁 바로 옆에 강한 형태의 미술관을 만들면 마치 <오징어 게임>의 영희와 철수처럼 대조적으로 보이겠죠. 저희도 다른 건물은 서울관처럼 작업하지는 않아요. 서울관은 주변의 에너지를 담고 그것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라 미술관에 사용된 테라코타 타일처럼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시도를 했죠. 사실은 형태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한 작업이에요.
서울관은 국가지정문화재 종친부(宗親府)와 공존하고, 기무사의 본관을 복원해 미술관의 로비로 활용하고 있어요. 책을 읽어보면 미술관의 완성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특히 종친부의 발견이라는 의외의 변수는 셰이프리스 미술관이라서 대처가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 한복판인 만큼 땅을 깊이 파면 뭔가 나올 거라 예상했어요. 1954년 공중에서 찍은 경복궁 사진에 종친부가 보이죠. 건물로 꽉 차 있어요. 뭔가 발굴되면 그 부분은 비워둔 채 전시장을 짓겠다는 전략이었어요. 종친부나 기무사 중 하나만 있었으면 미술관은 들어서기 힘들었겠지만, 두 공간이 서로 충돌하는 바람에 그 틈으로 미술관이 들어설 수 있었어요. 기무사라는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종친부도 복원해야 하니 쉽지 않았죠. 결국 종친부 복원과 미술관 시공을 따로 진행해 울타리를 쳐가며 공사를 했고, 이런 결합은 다시 나오기 힘든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햇빛에 따라 다양한 음영을 빚어내는 테라코타 타일 외벽 사진

햇빛에 따라 다양한 음영을 빚어내는 테라코타 타일 외벽.

서울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곳곳에 마당이 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유럽에 가면 광장 문화가 늘 부러웠는데, 서울관에는 그에 못지않은 마당이 있고 접근성도 좋아요. 미술관에 벽이나 경계가 없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당을 오가며 즐기고 있어요. 건축물 사이의 빈 공간인 마당을 부각했어요. 고정된 기능이 없는 마당은 전시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놀이터가 될 수도 있어요. 미국에서는 절대 이런 마당을 만들 수 없어요. 그러면 후미진 곳이 생기잖아요. 그 안에서 약을 한다든지 노상방뇨를 하거나 여러 사건이 생길 수 있어서 관리하기가 무척 힘들어지죠. 우리나라는 안전하니까 이런 설계가 가능해요. 주변 기능을 조율하는 마당의 기능을 살리되 미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외국의 경우 빈 공간이나 광장이 있어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빠르게 상업화되는 걸 볼 수 있어요. 공공 영역에서 이렇게 순수하게 모두를 포용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너무 힘들어요.
처음에는 미술관을 박스 개념으로 설명했죠. 서울박스, 전시박스, 계단박스로 불렸어요. 각 전시실들을 연결하는 중심 공간인 서울박스부터 지금은 전시마당으로 이름을 바꾼 전시박스까지 잘 활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작년 봄에 정영선 조경가의 전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진행할 때 전시마당에 정원을 조성한 것이 무척 좋았습니다. 미술관을 개관했을 때 서도호,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서울박스의 장소적 특징에 잘 맞춘 작품을 선보인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서울박스는 반투명 유리를 통해 빛이 확산되는 반면, 전시마당은 햇빛이 그대로 들어와요. 그래서 멀티플렉스 극장의 로비와 다르게 영상관에서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면 눈이 부시죠. 영화의 빛에 빠져 있다 나오면 현실의 빛과 만나는 식이죠. 유럽 성당에 가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성당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어두침침하지만 서서히 눈이 적응을 하면 잘 보이죠. 그러다가 나올 때는 그 경험을 거꾸로 하는 거죠. 블랙 박스 형태인 영상관이나 다원공간은 직사광선이 그대로 들어오는 전시마당과 대비가 되죠. 그런 것들은 나름의 실험이었어요. 서울박스는 조도를 조정해서 전시장과 함께 그림자가 생기지 않게 맞추었고, 반면 전시마당은 직사광선이 관객의 눈에 영향을 주도록 만들었어요. 서울박스가 전통적이라면 전시마당은 현대적이고 진보적이죠. 미술관 안으로 갈수록 실험적인 다원 미술을 할 수 있도록 배치를 한 셈이에요.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전시실과 공간을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전시실의 크기와 높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서울관은 하나의 큰 형태가 없지만 건물을 만들 때 연구한 형태 논리가 많았어요. 빛이나 비례 등 중요 요소들이 있었죠. 무엇보다 전시장 하나하나에 어떤 작품을 전시할지 먼저 생각하면서 나름 사이즈를 계산했어요. 전통 회화의 경우 보통 약 8미터 간격으로 기둥을 세워서 벽면에 그림을 거는 구조죠. 반면 설치를 하려면 보다 큰 공간이 필요해요. 위에서 매달 수도 있고 아래에서 올려다볼 수도 있어야 하고요. 미술관 답사 경험과 미술계의 에너지가 하나로 모여서 지금의 전시장 조합이 탄생했어요. 이곳에서는 기존 과천관과 다른 크기와 규모의 작품이 전시되길 바랐죠.

서울관의 현대적인 미감과 어우러진 종친부 건물의 처마 사진

서울관의 현대적인 미감과 어우러진 종친부 건물의 처마.

서울관은 관람객의 동선보다 전시실의 작품에 더 집중한 구조인 것 같아요. 처음 오는 관람객이라면 지하 전시실 사이에서 헤맬 수밖에 없어요. 물론 건축가 입장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선보다는 작품과의 ‘조우’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처음 오는 관람객이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반가사유상을 곧바로 보고 나오는 것과 잠시 헤매다가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을 주죠. 여기가 어디인가 살펴보다가 작품과 조우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고전 미술관처럼 연대기순으로 이동하기보다는 관람객이 자유롭게 동선을 선택해 전시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의도였어요. 또 전시실 안에서는 예술의 기운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하면서도, 창을 내어 바깥세상과 연결되도록 제안하기도 했어요. 완공 후에도 과연 이 방식이 잘 작동할지 걱정했는데, 미술관이 처음 의도대로 운영되고 있고 관람객 반응도 좋아 만족스러워요. 서울관은 연간 관람객 150만 명을 달성했어요. 그 정도 관객을 모으려면 주말에는 최소 1만 명은 와야 하는데, 그게 실현이 되니까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죠.(웃음)
관람객이 미술관 자체를 어떻게 경험하길 원하나요? 서울관은 안도 다다오 건물과는 반대죠. 안도의 건물은 그가 의도한 대로 봐야 해요. 미술관의 동선을 좇아 관람하면서 이런저런 감동을 받는 거죠. 그의 주택 역시 건축가가 제안한 방식 대로 사는 것이죠. 서울관은 관람객들이 경험하는 히스토리나 감상이 다 달라요. 누구에게는 미술관의 중심부가 중요하고, 누구에게는 경복궁과의 관계나 기무사의 역사가 중요하고, 누구는 관람 후 쉴 수 있는 카페가 중요할 수도 있어요. 각자 자기 나름의 즐기는 방법이 만들어질 수 있죠. 그렇게 공원 같은 미술관을 의도했어요. 축구공을 들고 가면 축구장으로 쓰고, 음식을 싸 들고 오면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이곳은 공원처럼 각자의 문화를 갖고 즐길 수 있어요. 그 지평은 넓을수록 좋지 않을까요?
설명을 들으니 서울관의 관람 동선이 약한 고리가 아니라 새로운 연결이나 경험을 만드는 제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반면 계단박스로 불리던 교육동의 계단은 지금은 다소 잊힌 공간이 된 것 같아요. 개관 초기에는 영상관에서 영화를 보고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간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서울관은 미술관의 형태를 일부러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작가들이 공간을 보고 작품을 설치하고 싶게끔 여지를 남긴 곳이에요. 특히 교육동의 계단은 어떻게 쓰일지 정하지 않고 비워둔 공간이죠. 계단 밑은 나중에 허물고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도록 계획했어요.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한 후 계단을 올라와 경복궁을 보고는 ‘이게 여기였네’ 하는 발견의 느낌을 얻을 수 있어요. 미술관 밖 현실을 만나는 곳이죠. 개관 무렵 미술관을 소개할 때 꼭 이 계단으로 나가라고 추천했어요. 서울관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화이트 큐브로도, 장소 특정적 공간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유연함이 있어요. 저는 미술관을 채우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많이 두고 싶었어요. 전시마다 다른 경험이 생기고, 작가가 공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기를 바라거든요. 이 공간에서 작가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해요.

지하 전시실과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 사진

지하 전시실과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

작가들이 미술관의 공간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마침 기억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2020년 <낯선 전쟁> 전시에서 아이 웨이웨이가 실물 크기의 각종 폭탄을 시트지로 재현해 전시실 벽에 붙였던 ‘폭탄’이 떠오릅니다. 2전시실의 높은 천장과 거대한 벽을 잘 활용한 작품은 압도될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그냥 벽면 밖에 없는 미술관은 뭔가를 상상하기 어렵죠. 건축가는 스토리를 만들 만한 것들을 작가에게 제시해야만 해요. 화이트 큐브처럼 작가한테 마음대로 작업하라는 식이 아니라, 창과 작품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이곳에만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어요. 론 뮤익의 작품 ‘매스’는 높게 쌓은 해골 위로 5전시실의 창밖에 있는 나무들이 보이게 했어요. 서울관에는 작가들에게 그런 영감을 줄 수 있는 재료가 많죠. 10여 년 동안 작가들이 전시실을 이용하는 방식을 바라보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폭탄’ 작품도 기억나는데, 아이 웨이웨이가 만들었군요! 공간을 쓰는 감각이 정말 놀라운 작가가 있어요. 작가라면 공간을 활용해 메시지와 함께 감동을 전달해야 해요. 론 뮤익의 전시와 어울리는 창도 사실 처음에는 다들 없애라고 했어요. 다른 전시를 할 때 막아놓았는데, 이번에는 열어서 잘 활용한 것 같아요.
요즘은 대부분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관람하다 보니 상영관마다의 특별한 추억이 없죠. 예전에는 <서편제>를 충무로 단성사에서 봤다는 식으로, 극장과 영화를 함께 경험하고 기억했습니다. 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봤으니 서울관과 론 뮤익의 전시는 잊지 못할 겁니다. 서울관이 장소 특정적 미술관으로 기억될까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한 서울관은 사실 특이한 건물이죠. 지금은 개관할 때와 달리 미술관이 자리를 잡아서 존재감이 있어요. DDP는 외관이 굉장히 뛰어난 건축물이지만, 그곳에서 열린 전시가 얼마나 기억 속에 남을까요? 서울관은 일상에서 함께하면서 천천히 익숙해지게 되죠. 설계할 때 미술관에서의 일상을 꿈꾸었어요. 무엇보다 관람객이 자꾸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여기서 10여 년 동안 전시하면서 쌓인 문화적 성과를 모아놓으면, 여느 미술관보다 많을 거예요. 그간 서울 시민이나 관람객의 삶에 영향을 준 성공적인 공공 건축물이라고 자부하죠. 이곳의 가치는 씹고 씹어야 우러나와요. 이 건물이 미술의 경험을 일상화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언론에서 서울관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식으로 평가해준 것이 좋았어요. 물론 움직여도 뼈대는 흔들리면 안 되죠.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는 미술관의 관리자들에게 뼈대는 건들지 마라, 시스템은 이런 거라고 말하고 싶어서였어요. 뼈대는 건축가가 만들고 미술관 관계자들이 그것을 운용하면서 변형하는 거예요. 자칫 그 뼈대를 흔들면 전체가 돌아가지 않을 수 있어요.

Writer
JUN JONGHYUK(칼럼니스트)
Photographer
CHIN SOYEON
Editor
김지선, 박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