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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WONDERLAND

디지털 크리에이터이자 아트 디렉터 캔델라 펠리차가 자신의 원더랜드로 초대했다.

가이아 베누티와 캔델라 펠리차.

감각을 나누며 함께 성장해온 가이아 베누티와 캔델라 펠리차.

“우리 집, 다시 만들어볼까?” 캔델라 펠리차(Candela Pelizza)의 말 한마디에 오랜 친구 가이아 베누티(Gaia Venuti)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018년, 자신의 공간을 가이아 베누티에게 맡긴 이후 두 사람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이상의 우정을 쌓으면서 이제는 삶과 일을 모두 함께하고 있다. 둘의 첫 인연은 매거진 <그라치아(Grazia) >에서 시작했다.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아직 낯설던 때 두 사람은 최신 스타일을 이끌어가는 소위 ‘잇걸’로 불렸다. “가이아의 라이프스타일과 감각은 저에게 정말 많은 영감을 줬어요.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단호한 태도로 ‘아니요’라고 말할 줄 안다는 거예요. 의무감 때문이거나 거절이 불편해서 제 제안을 승낙한 것이 아니에요. 만약 가이아가 ‘예스’라고 했다면,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해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진심 어린 약속이에요. 그래서 그녀와 무언가를 함께 하면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나와요.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마음 깊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죠.” 캔델라 펠리차는 집을 디자인하는 전 과정을 가이아 베누티에게 맡기고 출장길에 나섰다.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도 서로의 맥락으로 만들어내는 협업은 그들의 우정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캔델라 펠리차는 198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부모와 쌍둥이 언니 바네사(Vanesa)와 함께 유년을 보냈다. 열일곱 살, 자매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날아올랐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모델로 데뷔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그녀는 디지털 크리에이터이자 기업가, 아트 디렉터로서 여러 브랜드와 미디어, 잡지와 협업하며 감각적인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마치 이미지로 엮은 한 권의 잡지를 보는 듯하다.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창의적인 동료, 가이아 베누티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모던과 빈티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 속 미감을 탐구하던 2011년, 뷰티 콘셉트 스토어 바하마 마마(Bahama Mama)로 자신만의 미적 세계를 드러냈다. 가이아 베누티는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작업하기에 디자인은 늘 집주인의 성격을 닮는다. “저는 사람의 영혼을 읽는 일을 가장 잘해요. 고객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에요. 멋진 프로젝트를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요즘은 모든 것이 쉽게 공유되고, 쉽게 복제되니까요. 하지만 영혼을 읽는 일은 제가 오랜 시간 배워온 기술이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결국 제 작업은 그 사람을 닮게 되죠.” 캔델라 펠리차의 집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크리에이터이자 아트 디렉터, 동시에 세 아이의 엄마이자 친구, 연인으로 살아가는 복합적인 삶이 중심이 됐다. 다면적인 삶의 층위는 시간대나 계절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가지는 집을 떠올렸고, 그 변화무쌍한 에너지를 색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레노베이션의 첫 단추는 컬러 팔레트를 정하는 것이었고, 이후 모든 과정은 자연스럽게 매우 빠른 속도로 이어졌다.

토마토 레드 컬러가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주방

토마토 레드 컬러가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주방. 조명은 블룸, 테이블은 티에리 XXL, 의자는 H.H.H.

아침이면 고요한 명상실이 되고, 저녁이면 와인을 나누는 살롱이 되는 거실

아침이면 고요한 명상실이 되고, 저녁이면 와인을 나누는 살롱이 되는 거실. 벽면에는 캔델라 펠리차의 얼굴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화려한 천장 조명은 블룸, 야자수 화기는 코르테사.

캔델라 펠리차는 출장에서 돌아온 날, 집에 들어서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마치 동화 속 앨리스가 토끼굴을 따라 들어간 것처럼 어느새 현실과는 다른 세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시간과 공간은 흐릿해지고 색과 감정만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었다. 조용히 스며드는 따뜻한 회색, 누드 핑크, 아이보리와 연보랏빛 라벤더 컬러가 그녀의 마음을 감싸듯 집 안을 채우고 있었다. “집을 비운 건 일주일 남짓이었어요. 그런데 꽃으로 꾸민 복도가 그렇게 숨 막히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어요. 경이롭고 기쁜 순간이었죠.” 그녀의 말처럼 복도는 집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손으로 그린 듯한 커다란 꽃무늬 벽화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밀라노 출신 여성 아티스트 듀오 피오리스코 아틀리에(Fiorisco Atelier)의 작품이다. 그 앞을 비추는 카르텔(Kartell)의 조명은 마치 꽃과 빛이 엉킨 밤의 정원처럼 보인다. 주방은 놀랄 만큼 절제된 공간이다. 톤 다운된 무광 소재와 정돈된 선들이 캔델라 펠리차의 미니멀한 기질을 반영한다. 파스텔 핑크 벽면과 아이보리 조명이 부드러운 온기를 더하는 주방은 가족이 모이는 중심 공간으로 기능한다. 드레스룸은 그녀의 패션 감각을 그대로 담았다. 카르텔의 모던한 옷걸이와 조형적인 조명 아래 실크 블라우스와 니트, 빈티지 슈즈가 정돈되어 있다. 거울 앞에서는 그녀의 하루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시간대에 따라 좋아하는 공간이 달라요. 아침에는 거실이에요.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창밖으로 초록 나무들이 보여요. 명상을 하거나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기 좋은 곳이에요. 밤에는 주방이 좋아요. 몽환적이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틀고 세상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복도는 언제나 저를 맞이해주는 공간이에요. 새로운 친구 같은 느낌이죠. 집을 나설 때면 ‘사랑해’라고 인사하고 키스까지 하고 나가죠.(웃음)” 집 안 곳곳에는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거실 내 큰 소파는 온 가족의 중심이고, 처음 들인 부드러운 촉감의 카펫은 모두가 맨발로 걸어 다니는 변화를 만들었다. 소파는 아들 마르틴의 점프 놀이터가 되었고, 주방 테이블은 딸과 함께 최적의 청소 방법을 찾는 작은 실험실이 되었다. 그 옆엔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오브제가 장난감처럼 놓여 있고, 창밖에서 스며든 햇살이 아이들 머리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하나의 공간 안에 다양한 표정과 온도를 담고자 한 의도대로 집은 그녀의 삶의 궤적을 따라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밀라노 디자인 페어 2025’에서 캔델라 펠리차의 집은 ‘캔델라 인 카르텔랜드(Candela in KartellLand)’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캔델라 펠리차, 가이아 베누티 그리고 카르텔 디자이너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집에 어울리는 소파를 찾다가 카르텔에 문의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동 프로젝트로 이어졌어요.” 이를 계기로 캔델라 펠리차는 집의 일부를 외부에 개방했고 가이아 베누티는 일반적으로 조합하지 않을 법한 색과 가구를 과감히 섞었다. 여기에 빈티지 오브제를 활용해 독특한 컬러 플레이를 펼쳤다. 무엇보다 ‘집처럼 느껴지는 경험’이 중요했다. 흔히 디자인 위크에서 접하는 상업적이고 차가운 쇼룸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공명하는 공간이었다. 평소 가이아 베누티는 카르텔의 상상과 위트를 흠모하고 있었다. “카르텔은 오랫동안 재료와 기술, 디자인의 경계를 실험해온 브랜드예요. 그 안에는 시대를 이끌어온 디자이너들의 실험 정신과 오브제를 예술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죠. 샹들리에나 카펫, 암체어, 소파 등은 물론이고 접근 방식도 굉장히 다층적이죠.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장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브랜드라 할 수 있어요. 저는 카르텔을 현대적인 동화처럼 느껴요. 현실과 상상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세계. 이는 자연스럽게 캔델라의 삶과도 연결됐죠.”

여성 아티스트 듀오 피오리스코 아틀리에의 작품으로 채운 복도

여성 아티스트 듀오 피오리스코 아틀리에의 작품으로 채운 복도. 강렬한 색감의 스툴은 카르텔의 필라스트로와 콜론나.

캔델라 펠리차에게 집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에너지’다. 따뜻한 기운, 사랑받는 느낌 같은 감정들이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는다. 발은 그곳을 떠나도, 마음은 머문다. 처음 이 집에 들어섰을 때 캔델라 펠리차가 느낀 선명한 감정은 눈에 보이는 컬러나 디자인보다 훨씬 본질적인 요소일 것이다. 누군가 말없이 자신을 안아주는 듯한 포근함, 말을 걸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알아채는 공간. 나만의 원더랜드를 품은 집 말이다.

환상적인 동화 속 같은 욕실

환상적인 동화 속 같은 욕실. 라임빛 스툴은 카르텔, 화기와 도자기 작품은 가이아홈프로젝트의 빈티지 컬렉션.

EDITOR
BAEK KAKYUNG
PHOTOGRAPHER
MONICA SPEZIA WRITER GYE 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