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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FE LIKE THE AURORA
디자이너 김민주의 브랜드 민주킴이 10주년을 맞았다. 김민주의 지난 10년은 오로라처럼 경이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과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2013년 9월, 스물여덟 살의 디자이너 김민주를 처음 만났다.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3학년 때 완성한 컬렉션 ‘디어 마이 프렌즈(Dear My Friends)’로 H&M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고, 4학년 졸업 작품인 마스터 컬렉션 ‘비 커버(Be Cover)’로 수석 졸업을 한 직후였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스튜디오에서 취재차 마주한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잔뜩 신이 나서 손을 맞잡고 깡총깡총 뛰었다. 얼마 뒤 만화가를 꿈꾸던 소녀가 만든 사랑스러운 ‘일상 만화 코스프레’ 룩이 2014년 첫 LVMH 프라이즈 세미파이널리스트까지 올라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다음 정해진 미래는 당시 겐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움베르토 레온의 제안을 받아들여 럭셔리 브랜드에서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꿔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모험을 택했다. 그리고 올해, 민주킴(Minju kim)을 시작한 지 꼭 10년이 됐다.
12년 만에 그녀를 만나러 간 하얀 한옥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고즈넉한 한옥의 대문 너머로 아이들이 걸어가며 부르는 노랫소리,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2023년 1월, 북촌 골목길 초입에 위치한 작은 한옥을 수리해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디자이너인 동시에 브랜드 대표로서 좀 더 전문적으로 운영해보겠다는 결심에 쇼룸을 통한 홀세일 판매를 전부 접고 B2C로 전환한 시기도 그쯤이다.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맡겨버린 기분이 들었어요. 고객을 직접 만나지 못하니 사람들이 내 옷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컬렉션을 열심히 만들어도 바이어가 고른 것들만 생산과 판매로 이어지니까요.” 김민주는 최근 3년 동안 매장을 열고,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고, VIP 행사를 하면서 ‘진짜’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실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내 옷을 보게 되었죠. 그들을 빛나게 하고, 실제로 살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 공고해지는 과정에 들어선 김민주는 자신이 그리는 그림처럼 자주 활짝 웃는다(구체적으로 웃고 있는 캐릭터를 그리진 않지만, 어쨌든 그녀의 그림이 떠오른다). 패션계에 흔한 인위적인 미소, 입술을 일그러뜨린 냉소적인 웃음, 과장된 파안대소 중 어디에도 들지 않는 웃음이다. 처음 봤을 때도 그렇게 웃었지만 그때보다 성숙하고 의젓하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녀의 주거 공간인 하얀 한옥 2층으로 올라갔다. 넓은 창밖으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 아크가 조용히 느릿느릿 묘한 걸음걸이로 나타났다. 원래 유기묘였던 아크는 잘 구운 식빵 색의 먼치킨이다. 그리고 2024년에 출시한 털북숭이 백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동네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쭉 종로에서 살았어요. 조용하고 좋은 동네죠. 사람들이 압구정이나 강남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강남과 옥수동에 사무실을 마련한 적도 있지만, 결국 여기로 다시 돌아왔어요. 2020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적인 디자이너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러려면 이 동네가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한국적인 디자이너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나요? <넥스트 인 패션>에서 내 이름 앞에는 항상 코리아, 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어요. 함께 출연한 다른 디자이너들은 항상 자기 나라의 전통을 작업에 반영했죠. 영국 출신인 다니엘 플래처는 영국의 신사 문화나 어릴 적 즐기던 크리켓에서 영감을 얻고, 중국인 디자이너 엔젤 첸은 항상 용이나 한자를 그려 넣는데, 저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문화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내 스타일, 한국 스타일이라고 둘러댔죠. 그러고 나서 돌아오자마자 바리 컬렉션을 준비했어요. 바리 컬렉션을 공개한 뒤 V&A 뮤지엄 측의 연락을 받고 거장의 작품들 사이에서 패션쇼를 하게 됐고요. 우리나라를 보여주면서 좋은 것이 더 많이 따라왔다고 느껴요. 외국에서 한국 디자이너를 꼽을 때 자연스레 떠올리는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도 큰 영광이고요.
민주킴은 매 시즌 컬렉션을 선보이지만, 일관된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어요. 자주 언급하는 월터 반 베이렌동크를 비롯해 앤트워프 식스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학창 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실제로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그런 디자이너들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사진이나 그림,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디자인을 꾸준히 발전시켜나가는 사람들이 늘 주위에 있었어요. 너무나 당연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만의 것을 만들기 어렵다고 느꼈죠. 전 옷을 전위적으로 재해석하거나 해체하는 타입의 디자이너가 아니기에 저만의 시그너처를 담는 게 중요하고, 또 그런 게 멋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꾸준히 한다는 건, 가끔 내가 정체돼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만들기도 하죠. 늘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만든 것이 옛스러워 보이지는 않을까, 너무 뻔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 하지만 내가 하는 작업은 나만이 한다는 확신이 있어요. 지금 입고 있는 2025 봄/여름 컬렉션 ‘찬란’의 프린트는 2024년 봄에 플로리스트 박소희와 함께 한 전시에 사용한 꽃을 직접 촬영해서 원단에 인쇄한 것이에요. 결국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해뒀다가 재탄생시키는 것은 흔치 않은 방식이기도 하고, 그 과정 자체가 흥미로워요. 이런 접근법과 방향성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죠. 저는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디자인을 하고 있고 그 디자인은 누군가의 마음은 움직일 거예요. 요즘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떳떳하게 하는 데 더 집중하려고 해요.
창의적인 작업을 꾸준히 하려면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정말 중요하죠. 어렵기도 하고요. 그것도 일종의 훈련이 아닐까요? 어렸을 땐 디자이너가 되면 10년, 20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10년을 채우기도 만만치 않고, 함께 시작한 디자이너 중에 아직까지 남은 이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에서 그동안 잘해왔다는 자신감과 근거를 찾고 있어요. 다행히 협업 프로젝트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지난해 진행한 락피쉬 웨더웨어와의 협업은 반응이 좋아서 올해 다시 했고, 9월에 오픈하는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호텔 유니폼 디자인도 맡았죠. 에잇세컨즈와 협업한 결과물도 9월에 론칭합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주킴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모습.
꽃이 지고 남은 흔적에서 시작한 2025 봄/여름 컬렉션 ‘찬란’.
민주킴의 아카이브 패브릭으로 제작한 미니 토트백.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민주킴 웨딩 컬렉션.
민주킴에게 협업을 제안하면서 그들이 기대하는 건 뭘까요? 기존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브랜드를 새롭게 보여주는 것. 디자인력을 보여주고 싶거나 특별한 게 필요할 때 민주킴을 찾는 편이에요. 브랜드 색이 강한 만큼, 민주킴의 IP(지적재산권)가 더해졌을 때 즉각적으로 가치를 상승시키거나 차별화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협업을 하게 되면 디자인을 포함해 컬렉션 전반에 대한 브랜딩을 완성해서 전달해요. 그럼에도 아직 국내 기업은 한국 디자이너에게 보수 면에서 인색한 부분이 있답니다. 해외에서 잘돼야 실력 있는 디자이너라고 인정해주는 경향도 여전하고요. 그런 것들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힘들어하고 우리나라로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수익 창출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겠죠? 유혹은 항상 있었어요. 인수나 투자를 제안하는 곳도 많았죠. 하지만 나 자신이 대량생산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고, 제안한 측에 사업을 함께 성장시키고 수익을 높일 전략적 아이디어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진정성 있는 디자이너인 동시에 능력 있는 사업가가 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디자인에 진심과 정체성을 담는 건 절대 양보할 수 없기에 제가 사업적인 면은 부족한 아티스트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죠.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나 자신을 지키려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재정적인 부분을 잘 유지해나갈 수 있어야 하기에 세컨드 브랜드 파쿠아(Pakua)도 시작하게 됐어요. 파쿠아에서 많은 걸 시도해보려고 해요. 10주년을 맞아 기분 전환도 되고, 브랜드 이름부터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지어 시작한 브랜드라 새롭게 배우는 게 많답니다.
그러고 보면 파쿠아 론칭 전후로 민주킴 컬렉션도 어딘가 달라진 느낌입니다. 이제 두 브랜드를 운영하니까요. 민주킴은 소녀적인 사랑스러움과 동화적인 코드를 유지하면서 우아하고 성숙한 면을 좀 더 강조하려 해요. 파쿠아는 어린 소녀의 감성, 스포티함, 일상복의 코드를 담고 있죠. 전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만화와 캐릭터를 좋아해요. 아직도 늘 그림을 그리고요. 그런 아이 같은 면을 파쿠아에 마음껏 투영하고 있고 그게 정말 재미있어요. 그동안 활용하지 않고 모아둔 스케치와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서 적용하면서 제 디자인 영역도 확실히 더 확장됐다고 느껴요.
일과 개인적인 삶을 나누기보다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군요. 지난 시간 동안 제가 이뤄온 것들은 목록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많아요. 그 경력이 저 자신과 살아온 삶을 설명해주죠. 디자이너로서 성장하는 것에 대한 기쁨이 매우 큰 편이에요. 힘들 때나 난관에 부딪힐 때도 이뤄온 것들에서 자신감을 찾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힘을 내려 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거 보여드릴까요? 제 보물인데.
네, 보물이라니 궁금한데요? 힘들 때마다 꺼내 보는 앨범이에요. 보통 어렸을 때 사진만 꽂아두는데, 저는 어른이 된 후에도 소중한 순간과 손편지들을 모았어요. 이건 폴 스미스에게 받은 편지고, 이 사진은 H&M 어워드 때 오신 부모님 사진. <넥스트 인 패션>에서 우승한 저와 출연자들, 그리고 스태프들과 찍은 사진도 있어요. 내 인생이 이렇게 다채롭고 충만했지,라고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곤 해요. 남들이 접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고 가졌으니 불평하면 안 된다고 말이죠. V&A 뮤지엄에서 패션쇼를 할 땐 정말 행복했어요. 영국에서 3분 만에 패션쇼 입장 티켓이 매진되고, 저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그 벅찬 기분이란.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준 팬레터들도 소중해요. 파쿠아를 시작할 때 나를 좋아해주는 어린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삶 자체도 만화 캐릭터 같네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항상 힘을 내는. 그런 기운이 옷에 모두 스며들거든요! 좋은 기운으로 옷을 만들어야 입는 사람에게도 그 기운이 전해져요. 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죠. 아직까지도 어머니가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답니다. 부모님께 늘 감사해요. 언젠가 모든 걸 멈춰야 할 위기에 처해서 아버지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제가 일궈온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위로해주셨어요.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탄탄대로처럼 보이지만 어려운 때도 많았군요.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거나 만들어놓은 제품이 아예 판매되지 않는 일들은 비일비재해요. 모든 디자이너가 겪는 일이죠. 그 와중에도 새 옷을 만들어 다음 컬렉션을 이어나가는 전투의 연속이에요. 앞서 말한 것처럼 창작자인 동시에 사업가로 살아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만족감이 정말 크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패션에 대해 알지 못하고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에요.
패션의 어떤 점이 좋나요? 사람들에게 패션은 정말 중요해요. 삶의 주인공이 되게 해주고,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패션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도 20대 때보다 지금의 나 자신이 더 예쁘다고 느껴요. 패션을 통해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다듬으면서 나만의 모습을 완성해가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명품을 사는 이유도 결국 나는 특별한 사람이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해요. 잘못된 마케팅 때문에 오히려 모두가 똑같아지고 기준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점이 아쉽지만, 결국 패션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모습을 구현해내는 것이죠. 그렇기에 패션계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나도 그중 하나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고요.
멘토링 강의를 하거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죠? 사실 사디(SADI) 졸업 후 선생님이 되려고 앤트워프에서 다시 패션을 공부한 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고, 그분들의 가르침을 통해 제 자신이 정말 많이 변했다고 느꼈거든요. 외모에 대한 지적도 받아봤고, 관심 없던 패션에 대한 재미를 발견하기도 했어요. 그런 것들이 쌓여 디자인을 잘하게 된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누구에게나 잠재력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좋은 가르침을 받았기에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요.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새롭게 시도하는 모습이 놀랍고 기대도 되고요. 지금은 민주킴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내려놨지만요.
민주킴의 다음은 뭘까요? 처음에는 민주킴을 10년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10년이 된 지금은 앞으로 5년 더,라는 약속을 저 자신과 한 상태예요. 전 방향을 정하면 쉽게 바꾸지 않는 편이거든요. 대체불가한 사람이 되려면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어요. 그러다 보면 장인이 돼 있지 않을까요? 디자인 분야에서 인정받는 ‘장인’.
왼쪽 디자이너 김민주의 해사한 웃음과 닮아 있는 민주킴 플래그십 스토어.
오른쪽 북촌에 위치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민주킴의 하얀 한옥.
WRITER
SONG BORAH
PHOTOGRAPHER
CHIN SOYEON
EDITOR
박경미
HAIR&MAKEUP
이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