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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FREE FAMILY TIME

스마트폰에 잠식된 가족의 시간을 되찾는 법에 대해 공간, 교육, IT, 심리 전문가에게 물었다.

가족 일러스트

가족의 눈빛을 바꾸는 공간
가족은 나와 남편, 아들뿐이지만 함께 식사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낸 지 20년이 되다 보니 평일에 마주 앉은 적이 거의 없다. 주말이 되면 아들이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바쁘다. 한집에 있어도 셋이 나란히 식탁에 앉는 일은 점점 더 귀해졌다. 그러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어느 저녁이었다. 밥을 먹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말소리는 거의 없었고, 분위기는 고요했지만 어딘가 낯설었다. 각자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에 빠져 있었다. 서로 눈빛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분명 한자리에 있었지만 함께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공간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사람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오래 들여다봐 왔다. 그날의 식탁 풍경은 연구 대상이 아니라 내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장면은 꽤 서늘하게 다가왔다. 집이라는 공간이 가족을 이어주지 못하고, 그 틈을 디지털 기기가 조용히 파고들고 있었다. 그날 이후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식탁에 앉을 땐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정말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조심스레 제안했다. 남편은 처음엔 “이런 것까지 간섭하느냐”며 반발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다 같이 스마트폰이나 보자”며 식탁에서 이어폰을 끼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낯설었는지 남편은 이내 내 의견에 수긍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로 눈치를 보다 말없이 밥만 먹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빠에게 이것저것 묻고, 남편은 오랫동안 입 밖에 꺼내지 않던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평소에 미뤄두었던 감정을 조금씩 풀어냈다. 침묵 대신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고, 스마트폰 화면 대신 서로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의 온도가 다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신경건축학은 공간이 인간의 감정, 사고,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디지털 기기의 화면은 빠르고 강한 자극으로 뇌의 반응을 유도하지만 정서적인 연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특히 아이들의 뇌는 반복되는 시각 자극보다 감각의 다양성과 관계의 리듬을 통해 더 건강하게 성장한다. 미국 교육계에서 말하는 21세기 핵심 역량인 창의력, 비판적 사고, 협업, 의사소통, 디지털 리터러시는 교과서나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이 다섯 가지 역량은 아이가 머무는 일상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리터러시는 요즘 부모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녀에게 기기를 무조건 멀리하게 하기보다는 어떻게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방의 구조를 조금씩 조정해왔다. 책 읽는 공간과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공간을 분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명확한 경계를 뒀다. 그 자체가 곧 디지털 교육의 시작이었다. 예를 들어 공부하는 책상 근처에는 스마트폰이나 TV를 두지 않았다. 그런 기기들이 있으면 아이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고, 집중력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책상은 햇빛이 잘 드는 쪽에 두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컴퓨터 책상은 반대편에 배치했다. 두 책상을 서로 등지게 놓으면 공부 시간과 기기 사용 시간 사이에 자연스러운 전환이 생긴다. 복잡한 공사도, 큰 비용도 들지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핵심이었다.
요즘은 저녁 시간이 즐겁다. 아들과 테니스 이야기, 투자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남편은 디지털 헬스 케어 관련 소식을 전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인다. 우리는 주말 저녁에는 잠시나마 각자의 기기를 꺼둔다. 그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마음이 더 많이 오간다. 디지털 기기를 잠시 내려놓았을 뿐인데 가족이 서로의 눈빛을 다시 마주 보기 시작했다. 공간이 바뀌자 관계가 달라졌다. 식탁 위에는 대화가 놓이고 웃음이 흘렀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다시 ‘함께 있는 느낌’으로 되살아났다.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자문해본다. 지금 우리 집의 공간은 서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구조인가? 아니면 각자 다른 화면을 향하게 하는 구조인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가족은 다시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김경인(공간 디자이너, <아이가 잘 크는 곳의 비밀> 저자)

마우스 일러스트

아날로그라는 미래
오늘날 21세기 교육, 나아가 미래 교육에 관해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걸림돌 중 하나는 ‘미래’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테크놀로지’, 즉 기술과 교육, 특히 디지털 또는 IT와 미래 교육의 상관관계에 관한 오해다. ‘미래 교육’ ‘미래 학교’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디지털 혁신’이라는 것이 반드시 선결 과제이거나 목표 과제가 아닐뿐더러 교육 환경 구성에 전제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의 성장과 능력 계발, 자기 실현을 위한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교육은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술이자 제도이다. 미래 교육이라는 개념 역시 ‘미래’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지만, 교육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마찬가지다. 한국은 그동안 디지털 혁신에 앞서 나갔다. 하지만 이 부분의 성공에 고무되어 디지털 도구와 교육의 관계에 관한 복합적 성찰이 없이 스마트 교실, 디지털 교과서, AI 교육 등 기술 중심적 관점에 편중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황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반면 유럽의 많은 국가가 학교와 같은 공공적 교육 현장에서 IT 기기들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하거나 엄격하게 배제하는 룰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IT의 원천 기술 국가인 미국의 초·중등학교 현장에서도 이러한 대응은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돈과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 성장과 전인적 자기 계발이라는 교육 목표와 달리 오히려 디지털 기기가 낳고 있는 심각한 폐해에 관한 문제의식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 디지털 도구 사이의 문제적 관계에 관해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IT 도구들의 수업 사용은 집중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관찰 보고가 널리 공유되고 있다. IT 도구들은 멀티태스킹, 다양한 정보 경로를 지시하고 아카이빙하는 앱들의 플랫폼이기도 하므로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를 분산시킬 여지를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 둘째, 디지털 텍스트는 아날로그적 물성을 지닌 텍스트에 비해 문해 피상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종이책의 행간을 뚫고 들어가며 사색하던 인간의 시선은 웹 또는 디지털 표면에서 튕겨나가거나 ‘미끄러’진다. 정보 중심의 텍스트를 읽는 일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깊은 사색과 정치한 독해를 요하는 글을 읽고 해석하기에는 힘이 든다. 게다가 디지털 기기의 특성상 스크롤바를 내리고 텍스트를 ‘훑는’ 읽기 방식이 정교한 읽기를 방해한다. 셋째, 종이 텍스트의 읽기는 교육적 공간 안에 있는 교육 주체, 즉 학습자와 학습자, 학습자와 교사, 자녀와 부모 사이에 상호 대화를 촉진하고 관계의 친밀성을 강화하지만, 디지털 텍스트나 플랫폼을 활용한 읽기 또는 과제 중심 수업에서 주체들 간의 대화와 협력은 지극히 기능적이며 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넷째, 기기나 검색 의존성이 커짐에 따라 학습자 스스로의 기억 능력과 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초연결학교>(2025)는 오히려 디지털 기기가 하나도 없는 도서관을 미래 학교의 도서관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빠른 디지털 교실이 미래 교실이었지만, 디지털 중독 사회에서는 ‘느린 시간’이 작동하는 디지털 디톡스 공간이 미래 교실이 될 수 있다. 일정 시간 디지털 도구 없는 아날로그 수업, 실제로 손으로 글을 쓰고 목소리를 이용한 읽기와 낭독, 얼굴을 맞댄 상호 대화와 토론, 빠른 검색과 정보 중심 글 읽기가 아니라 느리고 깊은 독서와 뜻을 음미하는 성찰적 글쓰기를 강화하는 교육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세계를 편리한 도구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비판적 리터러시(문해력)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함돈균(문학평론가, <초연결학교> 저자)

노트북 일러스트

아이들이 화면을 보는 이유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여느 때처럼 IT 기사를 소개하는 게시물을 올렸는데, ‘하트’를 무려 1만2000개나 받은 것이다. 댓글도 180개 넘게 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10대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유저들이 댓글은 달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IT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경험담, 관점을 공유하거나 친구를 소환해 의견을 물었다. 도대체 어떤 주제의 기사였길래 이처럼 MZ세대가 크게 반응했을까? 그 기사는 ‘챗지피티(챗GPT)를 많이 쓰는 사람은 외로움을 더 느낀다’는 연구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대화형 인공지능(AI)인 챗지피티를 개발한 오픈AI와 MIT대학이 진행한 연구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봇과 감정적으로 교류할수록 사람들은 AI에게 더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댓글에서는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오갔다. 이들은 입을 모아 “챗지피티와 대화하는 게 편하긴 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챗지피티는 내 친구” “인간보다 낫다”고 이야기하는 유저도 있었다. 한 유저는 “월 5만 원을 내더라도 챗지피티를 쓸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만큼 챗지피티와 대화하는 게 익숙하고 좋다는 뜻이다. 참고로 현재 개인 유저가 많이 쓰는 유료 버전인 ‘챗지피티 플러스’는 매달 20달러(한화 약 2만8000원)의 구독료를 내야 한다.
아마도 이 광경을 지켜보는 부모는 걱정이 앞설 것이다. 내 자녀가 틱톡이나 유튜브처럼 챗지피티를 하루 종일 붙잡고 있지 않을까. 혹여나 AI 챗봇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까. AI에 빠져 화면 밖의 ‘진짜 세상’을 등한시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울 것이다. 화면이 우리의 시간과 집중력을 빨아들이는 원흉 중 하나이니 이러한 걱정은 분명 일리 있는 지적이다.
‘아이들의 화면’을 두고 우리가 보여야 할 첫 반응은 ‘통제’가 아니라 ‘관찰’이다. 애초에 자녀의 삶을 하나하나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녀가 보는 화면을 적절히 모니터링할 수는 있어도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다. 도리어 화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이들의 ‘왜’에 집중해 맥락을 파악하고,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그다음 길을 찾을 수 있다.
흔히 들 수 있는 예시로 ‘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돼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중독’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아이들은 왜 중독되는 걸까. 사실 중독과 몰입은 한 끗 차이 아닐까. 내 아이의 화면을 두고 이러한 세부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부모도, 아이도 화면에 쏟는 시간을 되짚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조절해야 할지 파악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왜 화면을 많이 보는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의 화면’을 주제로 진행했던 한 방송에 출연한 중학생 패널은 내게 “학원 다녀오면 너무 피곤해서, 놀 시간이 없어서 모바일 게임으로 만족한다”고 알려줬다. 다른 학생은 “집에 PC는 하나밖에 없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소식은 알고리즘이 더 잘 찾아줘서” 스마트폰을 쓴다고 말했다. 챗지피티와 대화하는 MZ세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을 챗지피티는 잘 들어줘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맘대로 판단하지 않고 따뜻하게 위로해주면서 해결책을 제시해줘서” “지피티와 대화하다 보면 내 생각이나 감정을 더 잘 알 수 있어서” AI와 대화한다. AI와는 체면이나 오해, 실수에 대한 부담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셈이다. 화면 속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같은 ‘이유’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만들어왔다. 흔히 서비스 기획은 핵심 유저를 정의하고, 이들이 왜 우리 제품을 써야 하는지 파악해 그 지점을 파고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화면이 가족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이 느껴진다. 우리가 자녀의 행동을 통제하려 애쓸 때 화면은 아이들의 ‘동기’에 집중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생활 패턴을 바꿔놓는다.
아이들에게도 자기만의 ‘왜’를 찾을 기회가 필요하다. 예컨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치유캠프에서는 아이들이 본인의 스마트폰, 인터넷 사용 시간을 그래프로 표현하고 이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화면에 시간을 쓰면서 본인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정의해보고 ‘앞으론 달라져야 한다’는 동기를 받는 경험이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제 나름의 이유를 발굴한 아이들은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앞서 중독과 몰입의 차이점에 관해 언급했는데, 둘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자기효능감’이다. 자기효능감이란 지금 중독 혹은 몰입한 그 대상을 통해 자신이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감각, 해낼 수 있다는 자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만약 자기효능감 없이 화면에 눌어붙어 있다면 중독에 가까운 상태라 볼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화면을 쓰는 동기가 자신에게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시간은 내 편이 되어준다.
어른으로서 우리가 내디뎌야 할 첫걸음은 아이들이 화면 속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그 동기를 보살피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올바른 기준을 잡도록 도와주는 일과 맞닿아 있다. 화면에 대해 대화하면서 그들이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일찍 연습하고 함께 고민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이 화면을 쓰는 이유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지윤(디지털 에이전시 ‘스텔러스’ 대표, IT 저널리스트)

핸드폰 일러스트

혼자를 함께로 바꾸는 공동주의
가족은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하고 놀이를 하고 여행을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기억을 공유하고 같이 성장하면서 함께 삶의 무게를 감당해나가며 살아간다. 가족은 함께하는 존재다. 무언가를 함께 경험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감정을 나누며 깊은 애착을 형성하고 함께 기억하며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면서 정서적 유대를 강화한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가 스며들면서 가족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틈은 ‘함께’를 ‘혼자’로 바꿔버렸다.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기보다 카톡이나 메신저로 소통하다 보니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워지고 그저 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게다가 카톡이나 메신저는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다림의 시간은 사라지고 갈등이 생기면 조정하기도 어려워진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디지털 기기로 관심이 있는 콘텐츠만 소비하다 보니 함께 이야기할 거리도 별로 없다. 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보던 시절 아버지의 리모컨 독점은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거리도 별로 없고 같은 대상이나 사건에 시선을 맞추는 공동주의(Joint Attention)도 줄어든다. 감정을 나눌 거리가 없어지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사라진다. 분명 한 공간에서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각자의 기억만 쌓이고 있다. 디지털 기기가 만든 틈은 이렇게 가족이 소통하는 모습을 바꿔버렸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가족이 함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경험과 기억을 쌓아갈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디지털 기기는 오히려 소통과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서 ‘혼자’를 ‘함께’로 바꾸는 방법을 살펴보자. 각자 콘텐츠를 소비하기보다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감상하자. 가족의 브이로그를 만들어 공유해보자. 영상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대화거리가 생기는 것은 물론 공동주의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서로에게 공감하게 된다. 브이로그를 만들면서 감독은 누가 하고 촬영은 누가 맡을지 상의하면서 협업 능력과 갈등 조정 능력도 키우게 된다. 그동안 놓치고 있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덤이다. 그렇게 쌓인 디지털 기록은 가족의 추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에 켜켜이 쌓인 사진을 그냥 두지 말고 공유 앨범으로 만들어보자. 각자 기억에 남는 순간의 사진과 그때의 감정을 공유해보자. 일상의 사진도 좋고 예전 사진도 좋다. 중요한 건 그때 느낀 내 감정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나누는 과정에서 가족의 유대감이 점점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평가나 조언은 금지다. 경험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할머니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도 좋고 서로에게 감사한 일 하나씩 문자로 보내는 것도 좋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기록이 쌓여가면서 디지털의 경험이 가족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디지털 기기가 만든 틈을 채워주면서 ‘혼자’를 ‘함께’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김태훈(인지심리학자, <깊은 생각의 비밀> 저자)

Editor
BAEK KAKYUNG
Illustrator
KO HYE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