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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디자이너 조앤 버제스의 집에 기록된 아름다운 이야기.

무도회장 댄서들이 휴식용으로 사용하던 소파를 아트룸 중앙에 놓았다. 조앤 버제스는 마치 관객석에 앉듯 소파에 앉아 아트룸의 작품들을 감상하곤 한다.

“이 집은 정말 독특했어요.” 조앤 버제스(Joanne Burgess)는 소파에 기댄 채 부드러운 오후 햇살을 받으며 회상했다. 창문으로 흘러 들어온 빛은 테라초 바닥 위로 춤추듯 퍼졌고 코너 통창 밖으로는 생명력 넘치는 정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복도를 따라 이어진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패턴 벽지는 우리를 숲과 정원 그리고 바다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 정돈된 공간은 그 자체로 독창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집은 여관, 학교, 건축 사무소,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사용되면서 여러 시대의 흔적이 뒤죽박죽 섞인 상태였어요. 당시 남편은 ‘이 공간을 매입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18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은 19세기에 조지아풍의 정면을 덧대고, 20세기에는 대규모 확장 공사를 했다. 1980년대에 건축 사무소로 사용하며 나선형 목재 계단을 넣었고, 이후 게스트하우스로 바뀌면서 3층에 일곱 개의 침실과 욕실들을 마련하기도 했다. 무리한 개조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옷장에서 샤워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오히려 이런 황당무계한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 집만의 특징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나선형 계단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조지아풍 스타일과 미드센추리 스타일이 이렇듯 조화롭게 혼합된 것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도전이자 행운이었어요. 레노베이션 과정에서 뜻밖의 발견도 이어졌죠. 욕실 철거 중 벽난로 뒤에 숨겨져 있던 18세기 오리지널 델프트 타일(Delft Tiles)을 발견했어요. 마감재를 제거할 때마다 역사의 흔적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죠. 마치 인테리어 디자인 백과사전을 펼치는 듯했어요.”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 벽지가 시선을 사로잡는 계단.

위쪽 주방 바닥에 테라초 타일을 깔아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으며, 식사와 관련한 예술 작품과 오브제를 세심하게 배치했다.
아래왼쪽 주방에는 통창을 설계해 실내와 정원의 경계를 허물었다.
아래오른쪽 계단, 전등, 액자 등 다양한 시대와 디자인이 교차하며 그녀만의 스타일이 탄생했다.

예술적 커리어가 쌓인 집
조앤 버제스는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편리한 집인 동시에 디자이너의 도전 정신을 실험하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기 위한 해법은 ‘컬러’였다. “보통 눈이 편안한 집이라고 하면 모노톤을 떠올리지만, 이는 삶의 재미를 포기하는 일과 같아요. 화려한 컬러와 패턴을 사용하되 비슷한 계열의 색상을 조합했어요. 그러면 시각적으로 편안하면서도 각 방의 차이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죠.” 그녀에게 이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창의성을 펼치는 캔버스와도 같았다.
조앤 버제스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음악을 전공하며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음악 산업에서 10년간 일하면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인테리어 디자인에 더욱 끌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설임 없이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한 경험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큰 자산이 되었다. “1cm의 오차가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공 전 도면 작업부터 신중해야 합니다. 저는 음악을 전공한 덕분에 숫자와 도면에 익숙해요. 도면에 작성된 공간의 구조를 읽자마자 이 집을 어떻게 살릴지 감이 오더라고요.” 시작은 다소 늦었지만, 그녀의 확고한 열정과 재능은 짧은 시간 안에 런던의 하이엔드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앤티크 소재를 바탕으로 시대와 장르, 스타일을 초월해 매치하는 방식은 그녀만의 독창적인 접근법으로 평가받는다. 조앤 버제스는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집의 기본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공간의 흐름을 재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불필요한 문을 막아 동선을 단순화하고, 과도하게 많은 침실을 줄여 공간을 여유롭게 만들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조지아 스타일과 미드센추리 스타일을 기반으로 이탈리아 포스트모던 건축 그룹 멤피스 디자인의 대담한 스타일을 혼합했다. 단순히 독특한 공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시대의 흔적과 자신의 취향을 믹스 매치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 것이다. 그녀의 인테리어 회사의 이름인 ‘더 큐리어스 하우스(The Curious House)’에서 드러나듯, 각각의 방은 호기심을 자아낼 만한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1층은 집의 이야기를 여는 서막이다. 답답했던 공간들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연결해 새롭게 태어났다. ‘아트룸’이라 불리는 거실은 원래 건축가의 대기실로 사용되며 다른 공간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었지만, 벽을 허물고 계단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집의 중심으로 끌어냈다. 주방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정원 쪽으로 난 두 개의 벽을 과감히 허물고 대형 통창을 설치해 실내와 정원이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주방 바닥에 깔린 테라초 타일은 전체 컬러 팔레트를 선정하는 기준이자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녀는 공간마다 어울리는 예술 작품을 걸어놓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공간의 테마에 맞춰 작품을 선정했어요. 주방에는 음식, 욕실에는 보트, 거실에는 인물화를 배치하는 식이죠. 벽 페인트는 주로 따뜻한 색조를 사용하는데, 이는 외부 자연의 느낌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내요.” 공간을 연결하고 나누는 장치로 컬러와 패턴을 활용하기도 한다. “컬러 페인트를 활용해 벽 없이 공간을 구분할 수 있어요. 좁은 복도에는 화려한 색과 패턴의 벽지로 착시 효과를 주면 시선을 집중시키고 공간감을 확장할 수 있죠.” 조앤 버제스가 가장 매력적인 공간으로 꼽는 곳은 아트룸이다. “아트룸에는 경매에서 구입한 아름다운 소파가 있어요. 과거 무도회장 댄서들이 휴식을 취하던 소파인데, 이곳에선 마치 관객석 같아요. 편하게 앉아서 아트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기에 제격이거든요.”

조앤 버제스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오크니 의자에 앉은 모습. 스코틀랜드의 농부들이 오크니섬에서 나는 재료를 활용해 손수 만든 의자다.

대담한 스타일을 혼합한 침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물건과 이야기
그녀는 물건을 고를 때 늘 직감을 따른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그냥 사요. ‘어디에 둘까?’ ‘다른 것들과 어울릴까?’ 같은 걱정은 하지 않죠. 오히려 다양한 물건이 섞일수록 더 매력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수집품 중에서 오크니 의자를 가장 아낀다고 덧붙였다. “본래 단순하고 실용적인 가구로 설계된 이 의자는 스코틀랜드 오크니섬에서 얻은 재료로 농부들이 직접 만들었어요. 당시 화로를 피우던 생활 습관에 따라 연기를 피하고자 의자를 낮게 설계했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실용적인 기능이 많아요.” 짚으로 엮은 곡선 구조와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높은 등받이는 차가운 밤에 불 앞에 둘러앉아 있던 농부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 역시 유명 작가의 작품만 고집하지 않아요. 저를 끌어당기면 그걸로 충분해요”라며 서재에 걸린 ‘트램프 아트(Tramp Art,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노동자들이 자투리 재료로 만든 조각품)’를 가리켰다. 네덜란드에서 주문 제작한 타일 싱크대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으로도 구할 수 없어서 직접 원하는 모양과 구조를 그려 주문 제작했어요”라고 무심히 말했지만, 그 과정에 담긴 열정과 노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유명 예술품이나 디자인 마스터피스보다 집주인의 손길이 닿은 물건이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앤 버제스의 프로젝트들은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방마다 다른 컬러와 패턴 벽지, 코너에 자리한 조형 작품, 개성 넘치는 가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로 완성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골방의 천재가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며 내놓는 것이 아니에요. 취향과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것을 수집하고 배우다 보면 결국에는 나만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죠. 이 집은 단순히 저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협업과도 같아요.”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좁은 복도에 화려한 벽지를 붙여 공간이 넓어 보이는 착시 효과를 유도했다.
책장과 벽을 그린 컬러로 조합해 개성 있는 서재를 완성했다.
황동 다리의 세면대와 이탈리아 앤티크 수집품으로 단장한 욕실.
시대와 장르, 스타일을 넘나드는 접근법이 돋보이는 서재.

Editor
BAEK KA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