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김수자라는 우주
파리의 전시장에 김수자의 우주가 펼쳐졌다
카르트 블랑슈 김수자 <호흡—별자리(To Breathe—Constellation)> 전시 전경,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Paris, 2024,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Florent Michel/ 11h45/ Pinault Collection
케링 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소유한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는 지금 파리에서 가장 뜨거운 예술적 장소다. 1763년에 곡물 저장소로 시작해 이후 상품거래소와 상공회의소, 증권거래소 등으로 이용된 이 건물은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안도 다다오에 의해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우아한 유리 돔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천장에는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로통드(rotonde)관은 미술관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얼마 전 로통드관의 위와 아래가 뒤집어졌다. 혹은 위와 아래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표현도 맞겠다. 로통드관의 원형 전시장 바닥에 설치한 거울에 돔의 구조와 화려한 천장 그림 등이 비춰져 아름다우면서도 성찰적인 공간이 완성되었다. 우주적 공간에 떨어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위와 아래를 번갈아 바라보거나 바닥에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응시했고,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비로운 마법을 부린 사람은 ‘보따리’의 작가 김수자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김수자 작가에게 전시의 기획부터 실현까지 전권을 부여하는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를 제안했고, 김수자 작가는 자신의 대표적 작품들과 아름다운 공간을 하나로 엮는 건축적 보따리를 선보였다.
카르트 블랑슈 김수자 <호흡—별자리(To Breathe—Constellation)> 전시 전경,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Paris, 2024,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Florent Michel/ 11h45/ Pinault Collection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축적된 김수자의 핵심 작품들이 총망라된다. 로통드관에서 선보인 바닥 설치작품 ‘호흡’을 중심으로, 로통드 공간을 둘러싼 24개 쇼케이스에는 작가의 소우주들이 담겼다. 작가가 19년간 사용해 몸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요가 매트, 굽는 과정에서 생긴 갈라짐을 궤적처럼 남긴 달항아리, 머리카락을 스캔해서 프린트한 작업, 해변에서 달이 뜨는 풍경을 보고 영감을 얻은 작업 등 예술과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담긴 작품들이다. 지하 공간에서는 영상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번잡한 대도시에서 부동자세로 세상을 마주하는 작가의 꼿꼿한 뒷모습을 담은 퍼포먼스 영상 ‘바늘 여인’을 비롯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여러 대륙을 옮겨가며 작업한 ‘실의 궤적’ 연작 6편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상영 중이다. 김수자라는 우주를 이루는 행성의 궤적을 따라 천천히 유영할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카르트 블랑슈 김수자 <호흡—별자리(To Breathe—Constellation)> 전시 전경,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Paris, 2024,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Florent Michel/ 11h45/ Pinault Collection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에서 열리는 <호흡-별자리(To Breathe-Constellation)>전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저 역시 이번 전시의 반응에 조금 놀랐어요. 많은 도시를 이동하며 살지만 파리라는 도시와는 특히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사람들도 저의 작업을 많이 좋아해주었고요. 그래서 유럽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파리를 거쳐가는 습관이 있어요. 그냥 공항만 가더라도 파리를 거쳐서 가는 거죠. 많은 사람이 파리를 사랑하는 만큼 저 역시 파리를 사랑해요.
이번 전시에서 부여받은 카르트 블랑슈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프랑스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 카르트 블랑슈는 기획부터 실현까지 작가가 하고 싶은 대로 전시를 꾸릴 수 있는 전권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굉장한 신뢰를 부여받은 거예요. 작가로서는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드림 프로젝트’를 펼칠 수 있는 기회죠.
인터뷰를 위해서지만, 예술가 김수자와 줌 화면을 통해 서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평소에도 종종 줌으로 사람들을 만나나요?
업무적인 미팅은 자주 하고 있죠. 그러나 친구들과는 주로 텍스트 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누고, 줌 채팅이나 전화는 하지 않아요.
‘줌 피로(Zoom Fatigue)’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라고 해요.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을 피로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넘어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줌 화면도 하나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카르트 블랑슈 김수자 <호흡—별자리(To Breathe—Constellation)> 전시 전경,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Paris, 2024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Florent Michel/ 11h45/ Pinault Collection
거울은 자신을 직시하게 하는 장치인데, 김수자의 작업에서 거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에서 처음으로 거울을 사용했는데, 보따리 트럭을 설치하며 한쪽 벽면에 거울을 두었어요. 당시 코소보 전쟁이 있었기에 난민에게 바치는 작업을 한 것이죠. 출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난민들에게 거울이 시각적 출구 역할을 하길 바랐고, 거울을 통해 공간 전체를 래핑하는 의미도 있었어요. 거울을 보따리의 패브릭으로 생각하고, 공간 자체를 염하는 작업을 한 것이죠.
부르스 드 코메르스 전시장에서도 거울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거울을 하나의 펼쳐진 바늘로 보았다”는 말도 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거울이 어떤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나요?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천장과 돔이 굉장히 아름답잖아요. 또 삶의 여정을 표현하는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바닥에 설치한 거울이 이 모든 것을 되비추며 발 아래서 시각적인 돔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관객의 몸이 천상과 천하의 경계에 놓이는 상황이 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가 바느질인 셈이죠. 우리나라 말 중 ‘누빈다’는 단어가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요. 거울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움직임을 누비는 것이죠.
작품과 공명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거나 땅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는 등 작품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전시장에서 마주한 관객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사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처음부터 건축 보따리 안에 들어온 관객을 퍼포머(Performer)로 보았어요. 크리스털 팰리스에서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사람들의 움직임을 퍼포먼스로 보고 있었어요. 아주 비밀스러운 퍼포머들이었죠.(웃음) 저의 건축적인 보따리 안에 초대된 퍼포머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움직이면서 반응하고, 어떻게 보면 나르시시스트적 관점에서 스스로를 보고 있을 거예요. 그런 상황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보는 거울하고는 굉장히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일상의 공간보다 장엄한 공간에서 광활한 스케일을 느끼며 부유하는 경험을 제시하고자 했죠.
밀폐된 쇼케이스 안에 배치한 작품들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미술관 측은 “각각의 쇼케이스가 축소된 세계 혹은 소우주와도 같다”고 설명했는데, 이 소우주들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바닥에 거울이 있는 로통드 공간이 하나의 몸이라면 24개의 유리 케이스는 저의 손과 발이라 생각해요. 신체 부위나 장기처럼 연결되어 있는 셈이죠. 그동안 보따리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던져온 질문과 태도들이 모두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맞댄 엄지와 검지가 비어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제 손의 석고 작품, 만드는 중에 변형이 일어나서 금이 가 있는 달항아리 작품, 내 몸의 기하학이 담겨 있는 요가 매트, 머리카락을 스캔해서 프린트한 작품, 아마씨를 재배한 작품 등을 배치했어요. 내가 예술과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서로 다 연관돼서 24개의 유리 케이스에서 보여지는 거예요. 원래 저는 이런 식으로 프레이밍해서 작업을 보여주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작업을 해보니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김수자, ‘바늘 여인’, 1999-2000, 4채널 퍼포먼스 비디오, 6분 30초, 피노 컬렉션 소장 Courtesy of the Kimsooja Studio. ©Kimsooja/ ADAGP, Paris, 2024
김수자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동시에 작품들 사이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김수자라는 예술가의 세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지하 공간에는 ‘바늘 여인’과 ‘실의 궤적’ 등의 영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꼿꼿한 자세로 세상과 마주하는 ‘바늘 여인’의 모습에 무척 감동을 받았는데, 당시의 바늘 여인과 2024년의 김수자 작가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를까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당시에는 좀 더 정면성이 강했고, 내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한발 물러난 느낌,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요.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는 있어도 내 몸과 마음을 그 안에 넣는다는 느낌보다 빠져나와서 바라보는 느낌이에요. 삶의 궤적이 계속 움직이며 다른 층위를 형성하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가 아닌가 싶어요. 다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바늘 여인’ 퍼포먼스를 다시 한번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같은 길에서 같은 퍼포먼스를 해도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겠죠. 언젠가 영감을 받는 시기가 오면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예술가가 아닌 김수자 작가님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예술가가 아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만약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성직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종교에 종사하거나 수련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봉사하는 일을 했을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그런 일에 대한 갈망이 컸거든요. 그런데 예술가의 천성과 기질을 분명히 가지고 있기에 그 안에서도 나만의 예술을 했을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일을 예술로 변형하거나 전환시켰을 거예요.
김수자 작가님의 작품은 자아를 응시하고 성찰하게 하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작가에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자아를 응시하는 과정에 가까운가요, 타인과 인류 전체를 응시하는 시간에 가까운가요?
그 두 가지는 항상 공존하는 인식인 것 같아요. 자신의 내부 세계를 들여다볼 수 없으면 외부 세계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김수자, 2024 Courtesy of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Florent Michel/ 11h45/ Pinault Collection
김수자의 작업을 이끄는 구심력은 무엇인가요?
특정 작업에서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크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사실 작품 내부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구조 내지는 도형적인 구조를 탐구하는 일도 작업의 중요한 한 축이에요. 내가 추구하는 조형적이고 형식적인 구조와 인간이나 자아에 대한 성찰은 수평적으로 함께 가요. 이 두 궤적을 함께 보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늘 이걸 생각하면서 작업을 해왔어요. 구조에 대한 탐구와 인류애적 가치가 작품 안에서 공존할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운 좋게도 형식과 실제, 삶과 예술의 경계를 두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었죠.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이해, 포용, 사랑은 김수자의 작업을 이루는 중요한 한 축입니다. 작품을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감싸고 연결하며 치유의 손길을 내미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의 취약함 때문일 거예요. 자신이 취약하기 때문에 타인의 취약함을 볼 수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자기 연민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그렇지만 자기 연민도 세상을 향해 확장될 수 있기에 버려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현재 가장 몰입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항상 남의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이지 제가 먼저 질문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질문이 있으면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최근에는 세라믹 달항아리 작업을 재미있게 해서 이 작업을 계속 해보고 싶어요. 이 외에도 다양한 매체와 규모를 지닌 작업들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김수자의 주위를 맴도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몸에 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는 나이인 것 같아요. 삶이 던진 죽음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곱씹는 중입니다.
Editor
KIM JI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