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칸디다 회퍼의 시선이 닿은 곳

칸디다 회퍼가 빛과 시간으로 직조한 부재의 미학

Candida Höfer, ‘Musée du Louvre Paris XI I 2005’, 2005, C-print, 247×2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cao Museum of art

Candida Höfer, ‘Stiftsbibliothek St. Gallen I 2021’, 2021, Inkjet print, 180×162.9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Candida Höfer, ‘Neues Museum Berlin XII’, 2009, C-print, 180×213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cao Museum of art

Candida Höfer, ‘Iglesia de San Jerónimo Tlacochahuaya I 2015’, 2015, C-print, 180×22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cao Museum of art

도서관, 극장, 미술관, 박물관처럼 문명을 상징하는 공공장소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온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그의 작품은 엄정하고 단호한 질서를 이루지만, 한편으로는 정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정은 아마도 경이감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인간은 대체로 축적보다 파괴에 능한 존재지만, 칸디다 회퍼의 작품은 인간이 분명히 지적이고 심미적인 가치를 추구해왔음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인류의 존재 의미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단서를 얻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작 회퍼는 손쉬운 낙관이나 비관을 결코 내비치지 않는 작가이고,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모습은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말이다. 초기 작업 이후 작품에 인간의 형상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운 칸디다 회퍼의 사진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부재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해당 공간에 깃든 인간의 영향력과 존재감을 체감하게 된다. 회퍼는 이를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더 풍성하게 오가는 파티장의 아이러니”에 비유하기도 했다.
우리가 그의 작품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작품에 깃들어 있는 대가의 고요한 시선과 성실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부터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작업을 이어오며 자신만의 균형과 기술을 완성한 칸디다 회퍼는 촬영할 때 추가적인 조명 장비를 더하지 않고 오로지 자연광과 장소에 원래 존재하는 인공광만을 사용한다. 실제로 해당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때 느껴지는 빛만을 사진에 담는 것이다. 조도를 철저히 계산하고 오랜 경험으로 얻은 직감으로 촬영 지점을 골라 세심하게 작업한 뒤 후반 작업을 할 때도 인위적인 보정을 더하지 않는다. 촬영 과정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인화 과정과 선별 작업을 거쳐야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 became form)’라는 미술계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작업 방식은 칸디다 회퍼라는 예술가에게 아주 잘 맞는 맞춤옷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의 본질적 특성과 꼭 맞는 일은 아무리 반복해서 해도 지루하지 않다. 여전히 촬영이 즐겁기 때문에 카메라를 잡는다는 회퍼의 말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칸디다 회퍼의 시선이 닿은 곳만 훑어보아도 인류의 빛나는 성취를 어느 정도 더듬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목록은 끝없이 갱신 중이다. 회퍼는 수백 년 된 유적뿐 아니라 현대적인 건축물의 계단이나 공연장의 이면 등 일상 공간의 태연한 아름다움을 담기도 한다. 회퍼는 언제나 본인의 작품은 건축 사진이 아니라고 말해왔다. 그가 작품을 통해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공간과 인간의 관계이며, 공간이 품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시간성과 아름다운 색채의 별자리는 그 자체로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 돌아오는 5월, 서울의 국제갤러리에서 칸디다 회퍼의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이동이 제한된 기간에 촬영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자연스레 전시의 주제는 ‘회복에 대한 희망’이 되었다.

Candida Höfer, ‘Neues Museum Berlin VI’, 2009, C-print, 163×118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cao Museum of art

Candida Höfer, ‘Palacio do Itamaratí Brasilia I’, 2005, C-print, 200×25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cao Museum of art

당신이 매일 보는 장면이 궁금합니다. 현재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있나요?
A 라인강을 마주한 나의 쾰른 집 1층 작업실에 있습니다. 밖은 잿빛이고 비가 와서 축축하네요.
어떤 공간과 질서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나요?
A 소파에 앉아 강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평온함을 느낍니다.
칸디다 회퍼의 작품에 담긴 공공 공간, 즉 미술관, 도서관, 박물관, 극장 등은 인간이 창조한 예술과 문화가 두텁게 축적된 공간이자 현재에도 인간의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사진에 담길 공간을 선정하나요?
A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딘가에서 흥미를 끄는 공간의 이미지를 볼 때도 있고, 제안을 받기도 합니다. 결국 작업에 이르게 하는 것은 공간에 대한 일종의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반드시 아름다움이나 화려함, 명성에 기반한 공감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것이죠. 독일어에는 “Der Ort hat Etwas(공간에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 무언가를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공감을 느낀다고 해도 그런 감정의 이유를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프라이버시, 사람, 공간에 얽힌 사적인 경험으로 인해 공공 공간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공공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초기에 독일에 사는 튀르키예인을 대상으로 작업하면서 점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저를 환대해주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삶에 침입한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집, 식당, 상점, 만남의 장소를 촬영하면서 그들이 주변 환경을 자신의 출신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 경험을 통해 공간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에서 공간으로 초점이 옮겨진 거죠. 더는 사적 장소에 침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공공장소, 최소한 준공공건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탐험의 첫 번째 목적지는 어디였나요?
A 박물관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도, 제가 방해받지도 않으면서 촬영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요. 그런 점을 고려하면서 다른 공공장소를 찾아보았어요. 도서관에 흥미를 느꼈지만 거기에는 늘 사람이 있어 촬영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초기 사진 일부에는 공간에 사람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점차 대담해져서 개관 시간 전후로 촬영 허가를 요청했죠.
즉흥적이고 본능적으로 이끌린 공간을 촬영한 경험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이 사진으로 담는 일상의 공간은 이를테면 어떤 것들인가요?
A 나 스스로를 공간(space)에 국한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보다는 피사체나 색채의 별자리(constellations)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게 맞겠네요. 나중에 그것들을 살펴보면서 좀 더 세밀한 작업을 할 가치가 있는지 결정합니다.
스마트폰으로도 가벼운 촬영을 하나요? 모든 사람의 스마트폰 앨범에는 가장 솔직한 관심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스마트폰에는 어떤 사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여느 사람과 똑같을 거예요. 음식과 친구들의 아이들 사진이 있습니다.

Candida Höfer, ‘Neuer Stahlhof Düsseldorf I | 2012’, 2012, C-print, 180×234.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cao Museum of art

Candida Höfer, ‘Musée Carnavalet Paris XX 2020’, 2020, Inkjet print, 180×18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당신은 수백 년 된 유적뿐 아니라 현대 건축물에도 똑같은 무게로 시선을 나눕니다. 품고 있는 시간이 긴 역사적인 공간과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공간을 촬영할 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 개인적으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연상하는 바가 다르겠죠. 저에게 공간은 그저 공간입니다. 모든 공간에는 건물을 짓는 시간, 사용한 시간 같은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현대적인 공간에도 적용됩니다. 항상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지금까지 촬영한 수많은 공간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나요?
A 한 공간을 특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나의 눈에 기억되어 있는 공간은 늘 마지막에 사진에 담은 곳입니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오래된 카메라’가 되어서 한 컷씩 필름을 넘기다 마지막 테이크에서 항상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예술은 지적인 프로젝트인가요, 감성적인 프로젝트인가요?
A 저는 감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공간과 시간은 포착될 수 있다. 그것이 사진의 능력이다. 하지만 촬영 전에 그 공간을 체험해야만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진을 촬영하기 전에 그 공간을 체험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A 공간을 촬영하는 것은 공간의 성격을 포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성격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지만, 개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죠. 저는 그냥 공간에 서서 가만히 기다립니다. 그러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카메라를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자연스레 알 수 있어요.
칸디다 회퍼의 사진에는 인간이 부재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해당 공간에 깃든 인류의 영향력과 존재감을 상기하게 됩니다. 작품에서 인간을 배제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빈 공간은 그 공간에 사람이 없을 때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또한 인간을 위해 만든 공간에 사람이 없으면 그 공간에 누가 있었을지 상상해보게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없는 공간은 그 공간에 있는 우리 자신을 상상하게 하기도 하죠. 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빈 공간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Darla Nam, Courtesy of the artist

Candida Höfer, ‘Schloss St. Emmeram Regensburg XXVIII’, 2003 ©Candida Höfer,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cao Museum of art

과거의 인터뷰에서 “사진을 찍을 때 유일하게 활성화되는 감각이 있다면 공간 특유의 냄새일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공간의 냄새는 해당 공간을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A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이미지에 완전히 집중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각은 후각이고, 아무리 다른 것에 집중하더라도 후각을 억제할 수는 없죠. 그리고 후각은 기억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냄새는 제가 사진을 찍었던 공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죠.
요즘은 주로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나요? 도구에 따라 공간에 대한 접근 방식과 결과물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A 대형 카메라에는 추가 장비가 필요합니다. 장비를 쓰려면 팀이 있어야 하고요. 팀을 구성하면 유연성이 제한됩니다. 저는 홀로 가볍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소니의 핸드헬드 카메라에 점점 더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의 자유를 되찾아주니까요.
무수히 많은 작업을 해온 당신도 여전히 사진 촬영할 때 긴장되는 순간이 있나요?
A 저는 촬영할 때 긴장하지 않아요. 다만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을 때, 사람들이 바닥에 충격을 줄 정도로 움직여서 민감한 카메라를 불안정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고 긴장하는 정도입니다.
최근 몰입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A 올해 열리는 전시가 많아요. 그래서 촬영해야 할 이미지보다는 이미 촬영한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고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요.
5월에 서울의 국제갤러리에서 열릴 전시에서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 예정인가요?
A 이번 전시에서 보여드릴 대부분의 공간은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된 기간에 촬영한 것입니다. 최근에 재건축 혹은 복원이 되었거나, 곧 공사할 예정인 곳들 말이지요. 자연스레 전반적인 주제는 ‘회복에 대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칸디다 회퍼의 작품은 종말 이후 문명을 탐구하려는 외계 생명체에게 아주 좋은 증거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인류에 대한 정보를 한 문장으로 남길 수 있다면, 어떤 문장이 좋을까요?
A 오, 좋은 생각이네요. 이 문장이 좋을 것 같아요. “여기에 사람들이 있었다(There have been PEOPLE here).”

Editor
KIM JI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