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미식을 위한 여행

단순히 식사로 느낄 수 없었던 총체적인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셰프의 숙소가 있다

포르투갈 알렌테주에 위치한 카사 노사의 식사 풍경. 한 번에 한 팀의 예약만 받기에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모두가 아는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닌 새로운 곳에 방문하고 싶다면, 음식이 중심인 미식 스테이는 어떨까. 각 나라의 대표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셰프가 세운 리조트나 게스트 하우스가 늘어나고 있다. 레스토랑에서나 만날 수 있는 셰프의 요리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럭셔리’로 분류될 만한 공간들이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벨칸토(Belcanto)를 운영하며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셰프로 유명한 호세 아빌레스(Jose Avillez)는 포르투갈 여행객에게 널리 알려진 도시인 리스본과 포르투를 벗어났다. 리스본에서 차로 2시간여 떨어진 동쪽 내륙에 위치한 알렌테주(Alentejo) 지역에 자연과 어우러지는 리조트 카사 노사(Casa Nossa)를 열었다. 포르투갈 전체 와인 생산량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알렌테주 지역이지만, 국내에서 이 지역이 관광지로 각광받은 적은 없다. 2002년에 유럽에서 가장 큰 인공 호수인 알케바(Alqueva) 저수지가 생긴 이후 물, 나무, 얕은 언덕이 만드는 풍광이 펼쳐지는 이 지역이 점차 개발되기 시작했다. 수년 전에 이 지역을 눈여겨본 아빌레스 셰프는 자연과 미식이 어우러진 휴식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셰프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든 포르투갈의 일상식을 선보이는데,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먹을 수 있을 법한 잘 정돈된 ‘포르투갈 집밥’을 낸다. 통창으로 둘러싸인 식탁에서 고요한 풍경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정찬이다. 작년부터 숙박객을 받기 시작한 이곳은 일반 리조트와는 조금 다르다. 총 10개의 스위트룸으로 이루어졌으나 개별 객실 예약은 받지 않아 나의 가족, 지인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시간과 공간이 보장된다. 여행지에서의 집을 표방하는 이곳은 방문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미리 전달받아 액자에 넣고, 각자의 방에 비치해두는 섬세한 배려를 하기도 한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벨칸토의 셰프가 카사 노사에서 준비하는 해산물과 채소 요리. 리조트 주변의 농장에서 재배한 아스파라거스 등 채소 요리로 시작해, 포르투갈 바다에서 얻는 해산물로 육수를 내고 새우나 로브스터를 올려 따뜻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패밀리 스타일의 음식을 선보인다.

리조트 주변 마을에서 구한 작물인 토마토나 아스파라거스 등으로 매끼의 식사를 시작한다. 포르투갈에서 흔히 먹는 대구를 끓인 맑은 국물 요리 안에 제철 과일을 넣어 제공하는 등 다른 나라에서 보긴 어렵지만 알렌테주의 포르투갈 가정에서 흔히 먹는 메뉴를 재해석한다. 긴 코스가 아니라 패밀리 스타일로 덜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준비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거창하거나 화려한 공간보다 자연에서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 전 세계의 누가 와도 이질적으로 느끼지 않을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여기에 포르투갈의 맛이 더해지는 거죠.” 아빌레스 셰프가 응접실에 둔 작품 속 스스로의 그림자에 기댄 사람의 모습에서도 그가 어떤 휴식처를 갈망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 외에 야외 수영장과 선베드, 따뜻한 물이 가득한 자쿠지, 건식·습식 사우나까지 준비되어 있다. 테니스장과 축구장도 있고, 호수를 따라 긴 산책도 가능하다. 모터 달린 요트를 타고 먼 호수로 나갈 수도 있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하늘, 물, 나무가 함께한다.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 식사 전에 주전부리를 함께 먹기도 하고, 호숫가를 바라보는 야외 공간에서 불을 피우고 ‘불멍’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사 노사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COURTESY OF Chablé Yucatan Resort. 멕시코 유카탄에 위치한 샤블레 유카탄. 마야 문명의 잔재가 있는 곳을 리조트로 개발한 이곳은 멕시코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이탈리아 모데나에 위치한 카사 마리아 루이자.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의 셰프 마시모 보투라가 지난 20년간 영감받은 예술품을 모아 곳곳에 전시한다.

이탈리아의 모데나에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Osteria Francescana)의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 셰프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 카사 마리아 루이자(Casa Maria Luigia)가 있다. 아트 컬렉터로도 유명한 보투라 셰프의 아내 라라 길모어(Lara Gilmore)는 이 장소를 컨템퍼러리 아트의 집합체로 만들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프로스트 체어에 앉아 셰프가 그간 모아온 LP 음반을 마음껏 들을 수도 있고,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의 대형 작품이 웅장하게 걸려 있는 벽을 마주하고 와인 한 잔을 음미할 수도 있다. 체크인을 진행하는 바로 옆방에는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네온 작품이 반짝이고, 건물 테라스로 나서면 성인 상반신 크기만 한 조르조 디 팔마(Giorgio di Palma)의 조각 작품인 녹아 흘러내리는 젤라토를 마주한다. 이보다 더 입을 벌어지게 하는 건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라 불리는 운동 공간이다. 트레드밀이 놓인 벽 뒤로 줄리언 오피, 데이미언 허스트, 로버트 롱고, 필립 타페 등의 예술 작품이 즐비하다. 이 모든 예술 작품이 보투라 셰프의 창의성을 이끌어낸다. 그가 운영하는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는 이탈리아 소재 식당으로는 최초로 2016년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조리법이나 문화를 기반으로 하되, 유수의 예술 작품에서 얻은 영감으로 새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인다. 레몬 타르트나 송아지 요리가 다양한 색과 형태를 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접시에 오른다. 보투라 셰프는 자신의 음식을 설명할 때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요리에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덧대어도 그 뼈대는 이탈리아 문화에 있어요. 현시대에서 경험한 모든 것에 기반해 요리에 어떤 개념을 얼마만큼 더할지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거죠.”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고, 지금의 레스토랑을 유명하게 만든 과거의 메뉴는 이제 카사 마리아 루이자 안에 위치한 식당 프란체스카나에서 만나볼 수 있다. 카사 마리아 루이자의 숙박객들은 이 식당 예약의 우선권을 갖는다.
게스트 하우스가 위치한 모데나는 발사믹 식초로도 유명하기에, 게스트 하우스 안쪽에 있는 식초 저장소 아세타이아 마리아 루이자(Acetaia Maria Luigia)에서 1910년경부터 각각 다른 1400여 개의 배럴에 숙성되는 발사믹 식초를 보관하고 있다. 저장소 앞마당에서는 일요일마다 ‘바비큐가 아니야(Not Barbecue)’라고 이름 붙은 훈연, 훈제 만찬을 선보여왔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 9월에는 알 가토 베르데(Al Gatto Verde)라는 새로운 식당을 열었다. 훈연 요리에서도 발상의 전환을 해볼 여지를 끊임없이 찾는다.

카사 마리아 루이자 내부에 지난 9월 새롭게 문 연 식당 알 가토 베르데에서 선보이는 요리. 지난 3년간 야외 그릴에서 시도한 다양한 레시피를 접목해 만들었다.

지난 몇 년간 세계 미식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남미에서도 셰프들이 리조트 레스토랑에 눈짓한다. 멕시코 시티 소재 레스토랑 퀸토닐(Quintonil)의 호르헤 바예호(Jorge Vallejo) 셰프는 멕시코 리조트 체인 샤블레(Chablé)와 손을 잡았다. 샤블레 유카탄 리조트(Chablé Yucatan Resort)는 작년 월드 50 베스트 호텔 리스트에서 13위에 올랐고, 칸쿤 이외에도 주목할 만한 다양한 지역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셰프는 마야 문명에 기반한 멕시코의 전통과 현재를 음식으로 이어간다. 통돼지를 스테인리스 박스에 넣고 각종 허브로 덮은 뒤, 그 위에 흙을 덧대고 숯을 올려 천천히 익힌 고기를 사용해서 야외 타코 피크닉을 만들기도 하고, 멕시코 술인 테킬라와 메즈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한 음식도 선보인다. 피망과 고추를 태워서 만든 알싸한 소스는 훈연 향이 강하게 올라오는 메즈칼과 특히나 잘 어울린다.
이 외에도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방문객이 식사 후 밤늦게 운전하지 않을 수 있게 레스토랑에 인접한 게스트 하우스나 호텔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탈리아 국경에 근접한 슬로베니아에 위치한 히사 프랑코(Hisa Franko)도 아나 로스(Ana Ros) 셰프의 음식만 선보이는 게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까지 함께 운영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레스토랑 싱글 스레드(Single Thread) 또한 마찬가지다. 싱글 스레드에서 운영하는 숙소에서 숙박하면 레스토랑도 자동으로 예약된다. 이런 공간들은 여행을 계획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먹으러’ 떠나기만 하면 된다.

Writer
LEE SUMMER SUNMIN(미식, 여행 저널리스트)
Photographer
JOSE AVILLEZ COURTESY OF Casa Nossa, MARCO PODERI, LIDO VANNUCCHI COURTESY OF Casa Maria Luig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