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시작의 말들
시작의 동력이 되어주는 문장들
나만의 관점을 갖기 위하여
무엇을 나의 관점으로 삼을 것인가? 이 질문은 여러 상황에서 유효하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앞서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인장이 강하게 찍힌 글쓰기를 하는 비비언 고닉은 <멀리 오래 보기>에서 관점을 가질 때 명징해지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저 관점을 하나 가지기만 해도 정말로 할 말이 있을 때와 단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종이 위에 검은 점을 옮기고 있을 때를 진지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삶의 다른 영역에도 영감을 주는 말이다. 나만의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비언 고닉은 선명한 관점이 있는 문장을 찾을 때까지 오래 머무르며 응시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밝힌다. 그의 글은 긴 기다림과 고통스러운 자기 이해의 과정을 거쳐야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좀 더 해상도 높은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더 멀리 가고, 더 오래 보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비비언 고닉의 <멀리 오래 보기>, 에트르.
바깥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통의 일기는 자신의 하루 일과나 내부 세계를 반추하는 작업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면 일기가 왜 일기라는 장르의 주류 형식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아닌 타인들과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외면 일기를 시도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떤 때는, 슈퍼마켓의 계산대에 줄 서 기다리는 여자에게서 어머니의 말과 몸짓을 다시 만났다. 그러니까 바로 바깥에, 전철이나 RER의 승객들과 갈르리 라파예트나 오샹의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들 안에 나의 지나온 삶이 침잠되어 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간결하게 묘사한 스냅사진 같은 기록들이 모여 한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풍경화가 완성되었다. 1985년부터 1992년에 쓴 일기는 <바깥 일기>로, 1993년부터 1999년에 쓴 일기는 <밖의 삶>으로 묶였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작업 중 하나는 자아라는 좁은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일 테다. 이 두 권의 일기는 외부 세계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는 일에 무한한 영감을 준다. 가죽 등받이 의자는 프리츠 한센의 시리즈 7, 두 권의 책은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와 <밖의 삶>, 열린책들.
우리가 일하는 이유
일본의 노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일과 인생>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일해야 할까’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기시미 이치로에 의하면 일한다는 것은 곧 살아간다는 것과 동의어다. 따라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일 반복하는 일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하루 중 상당 시간을 그 안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가끔은 즐겁기까지 한 성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 일한다. 그것이 ‘살기 위해 일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우리가 일터에서 쉽게 불행해지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가 설정해둔 엄격한 기준에 맞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가치는 생산성에 있지 않다. 경쟁이나 성과의 무게에 압도되지 않을 때 비로소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는 허영심으로서의 야심을 지적하고 열등감을 줄이는 노동의 방식을 독려하며,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여겨야 일터와 인간관계 안으로 들어갈 용기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원목 의자는 프리츠 한센의 Hven 암체어, 의자 위에 놓인 책은 기시미 이치로의 <일과 인생>, 을유문화사.
삶을 움직이는 걷기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일과 중 유일하게 걷는 시간이고, 운동을 위해 러닝머신에 올라 멍하니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단단한 지면을 디디는 감각이나 걷는 행위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게 된다. 17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쓰인 걷기에 관한 글을 한데 모은 <걷기의 즐거움>은 걷는 행위의 풍성한 기쁨을 일깨워준다. 많은 작가와 철학자에게 두 발을 번갈아 앞으로 내디디는 행위는 곧 생각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루소는 “걷지 않는다면 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레슬리 스티븐은 “글쓰기란 결국 산책의 부산물”이라고 고백했다. 걷기는 때론 막막하고 갑갑한 삶에 신선한 공기와 영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밤 산책에 나선 버지니아 울프는 어둠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을 생생히 묘사하고, 윌리엄 쿠퍼는 청명한 겨울의 정오 산책을 칭송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을 좀처럼 확보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 걷기는 가장 손쉬운 명상법이다. “꾸준하게 땅을 밟고 나아가면서 지적인 균형감을 유지한다”와 같은 문장을 읽다 보면, 새해에는 걷는 인간이고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외 여러 작가의 글을 엮은 <걷기의 즐거움>, 인플루엔셜.
Contributing Editor
KIM JI SEON
Photographer
PARK JAE 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