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프랭크 게리의 도달점

천진한 예술성에 한계가 없다고 말하는 작품들

ⓒIwan Baan

전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
아흔이 넘은 건축계 거장 프랭크 게리(Frank Gehry). 그는 구겨지고 휘어진 건물을 만든다. 그의 건물에는 입면이 없다. 건축물의 앞, 뒤, 옆을 정하는 대신 하나의 유기체처럼 자유로운 입체 조형을 추구하기 때문.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철물점에서 버려진 나무와 철판 조각을 모아 미래도시 모형을 만들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통해 철망과 강골판, 목재 등 재료로 만든 자신의 집 게리 하우스(Gehry Residence)로 명성을 얻었고 댄싱 하우스, 디즈니 콘서트홀, 시티 오브 와인 등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펼쳤다. 1989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세계 건축사에 이름을 올린 그는 국내에서는 2019년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을 설계해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건축이 높은 평가를 받는 데는 자유로운 조형의 외관이 큰 몫을 차지하지만 그 내면에는 해체주의적 이념이 녹아 있다. 그는 직선과 사각, 직육면체를 통해 기능과 효율 중심의 현대건축에서 벗어나 예술적 상상력, 형태를 강조한 건축물을 선보인다. ‘건축가인가, 예술가인가?’라는 물음이 한평생 그를 따랐지만 프랭크 게리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전위적인 형태를 통해 공간을 탐구하는 그는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끊임없이 모형 작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케치를 바탕으로 실물 모형을 만들고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데이터화해 구조역학을 계산함으로써 공간의 안정성을 늘 확인한다. 한편 그의 예술성은 건축물을 넘어 가구, 조명 등의 디자인에서도 빛을 발한다. 창의적인 시선, 새로운 형태를 가미한 오브제를 통해 공간에 예술성을 더하는 일에 열심이다. 지난 12월 열린 ‘아트바젤 인 마이애미 비치’에서는 루이 비통과 협업 전시를 열었는데, 오랜 시간 다방면에서 메종과 함께 탄생시킨 작품들을 선보였다. 나무와 판지를 활용한 모델링을 시각적으로 연출한 동시에, 2014년 프랭크 게리가 메종 쇼윈도를 위해 디자인한 돛 모양의 그물 구조물을 재현했다. 또 전시를 기념하며 루이 비통과 프랭크 게리는 그의 예술 세계의 핵심적 주제인 건축과 형태, 재료 탐색, 동물에서 영감받은 한정판 핸드백 컬렉션을 소개했다.

바다 위 윤슬처럼 지역의 볕이 일렁이는 루마 아를 외관.

반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 300여 점의 그림을 그린 도시 아를에 들어선 대규모 예술 복합단지 루마 아를.

건축 철학의 총체, 구겐하임 미술관
프랭크 게리의 대표작을 말할 때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을 빼놓을 수 없다. 제철·조선으로 유명했으나 1970년대 이후 경쟁력을 잃은, 스페인의 작은 공업 도시를 위해 그가 설계한 미술관은 1997년 완공과 함께 단숨에 빌바오를 예술의 도시로 만들었다. 그는 물고기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초안을 그렸고, 당시 신소재로 여겨지던 티타늄을 마감재로 활용해 자유로운 형태의 건축물을 완성했다. 비틀어지고 굽은 형태의 건물 내부는 중앙홀을 중심으로 원형 계단을 타고 오르며 전시를 관람하도록 설계됐다. 1층에는 7개의 전시실이, 2층과 3층엔 상설 전시실이 자리한다. 한편 프랭크 게리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아랍에미리트에 구겐하임 아부다비(Abu Dhabi) 미술관을 만들고 있다. 2006년 미술관 건립 계약을 체결했으나 정치·경제 등 여러 문제로 긴 시간 계획이 지연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빌바오 미술관의 2배 규모로 기대가 매우 큰데, 프랭크 게리는 아랍에미리트와 주변 지역의 환경, 전통 건축양식에서 영감받아 공간을 설계했다고 밝혔다. 일례로 박물관 외부의 원뿔 형태 구조물은 아랍에미리트의 전통적인 풍력 타워에서 영감을 받았다. 최근 미술관을 운영하는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구겐하임 아부다비 미술관의 관장으로 마리에트 웨스터만(Mariët Westermann)을 임명한 만큼 머지않아 미술관이 완공되리라 예측해본다.

프랭크 게리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진행했던 건축 프로젝트인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Vitra Design Museum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준비 중인 구겐하임 아부다비 미술관의 조감도. ⓒGehry Partners

미술관의 예술성을 부각하는 건축
1981년 스위스 가구 브랜드 비트라는 공장에 큰 화재가 나면서 안도 다다오, 알바루 시자(Alvaro Siza) 등 유명 건축가에게 건축물을 하나씩 의뢰한다. 그리고 여러 개의 건축물이 한데 모인 비트라 캠퍼스를 준비하는데, 프랭크 게리도 함께했다. 그는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과 디자인 뮤지엄 전시장, 게이트 하우스 등 총 3개 건물을 담당하며 저명한 건축가들과 호흡을 맞췄다. 비트라가 지닌 디자인 DNA, 여러 건축가들과 융합을 고민한 그는 하얀 외관으로 단순한 아름다움을 자아내지만 기하학적 형태와 입방체 볼륨 또한 뛰어난 건축물을 완성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디자이너의 고유한 스타일은 소재나 형태가 아닌 그만의 철학과 유연한 태도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2021년 프랑스에 완공한 대규모 예술 복합단지 루마 아를(Luma Arles) 내 아트 센터는 지역의 자연미, 예술가 반 고흐의 붓 터치를 현대적인 아름다움으로 재현한 프로젝트로 꼽힌다. 반 고흐가 사랑했던 도시 아를에 들어선 건축물은 알필산맥, 론강, 몽마주르 수도원 등 풍경이 매우 아름다우면서 고대 로마가 번성했던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 프랭크 게리는 “루마 아를 타워는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을 기념하는 동시에,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에 대한 메아리”라고 밝혔다. 이곳은 1만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로 외관을 마감하고 사이사이 유리 부스를 세워 빛에 따라 표면이 곱게 일렁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특히 노을이 질 때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 작품 상당수는 미술관 프로젝트가 차지한다. 그의 자유분방한 공간 설계와 철제 소재를 활용해 조형미를 강조한 입면은 미술관이 지닌 예술성을 한층 부각하기 때문이라 짐작해본다. 그럼에도 그는 “건축의 출발점도 도달점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건축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 내면의 천진한 예술성이 아닐까. 건축 거장의 작품을 통해 신년 내면의 예술성을 꺼내보길 바란다.

Profile 프리랜스 에디터 유승현은 전문지 <인테르니 앤 데코(INTERNI & Decor)> 기자로 시작해 현재 현대카드 앱 매거진 ‘다이브(DIVE)’ 아트·건축 에디터로 일하며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쓴다. 책 <공간 디자이너는 어떻게 일할까?>,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미드센추리 모던> 필진으로도 참여했다.

Editor
LIM JI MIN
Writer
YOO SEUNG 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