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the BEGINNING of AUTUMN
가을의 맛이 온다
터스컨 밤 케이크
카스타냐초(castagnaccio)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밤 케이크. 본래 토스카나에서 많이 생산되는 밤을 주재료로 만든 파이로, 단맛이 거의 없어 음식이 귀하던 시기 식사 대용으로 먹은 전통 음식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 파이의 레시피가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10월 제철을 맞는 밤을 비롯해 호두·잣·건포도 등을 사용해 케이크로 만든다. 밤 가루에 각종 견과류와 메이플시럽 2스푼을 넣고 섞어 굽기만 하면 된다. 밤과 잘 어울리는 로즈메리 같은 허브를 함께 넣으면 풍미는 더 흥미로워진다. 음식의 기원처럼 레드와인을 곁들이는 요리로도 추천한다.
무화과 캐슈넛 크림
봄에 나뭇가지를 잘라 흙에 삽목하여 잘 키우면 무한정 자라는 것이 무화과다. 무화과나무는 8월부터 시작해 10월까지 열매를 내준다. 당도가 높고 특유의 향을 지닌 열매는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디저트 요리에 자주 활용된다. 생무화과를 밀가루도 넣지 않고 오븐도 사용하지 않는 디저트로 즐겨보자. 건포도 같은 마른 과일, 캐슈넛과 코코넛 크림을 함께 갈아서 만든 시트를 얼리고, 그 위에 무화과 슬라이스를 얹어낸다. 특유의 향과 고소한 크림, 서로 다른 질감이 새롭고 달지 않아서 과육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무화과의 열매는 물론, 넓고 푸른 잎도 특별한 계절 음식이 된다. 잎을 말려 차로 마시거나, 시럽으로 만들어 활용하면 무화과의 매력을 더욱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다.
두 가지 사과 파이
최고의 맛을 내려고 기다리는 사과들의 계절이 온다. 잘 익은 사과의 속을 살짝 파고 견과류와 시나몬 가루를 뿌려 오븐에 굽기만 해도 맛있다. 사과 자체가 익히고 나면 소스가 되기 때문에 굳이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 않다. 10월 전후로 출시되는 시나노 골드 같은 노란 사과와 빨간 부사 두 가지를 사용하자. 밀가루에 버터와 생강, 클로브, 시나몬 같은 스파이스를 넣어 반죽한 후 파이 틀에 넣고 사과를 썰어 올리면 된다. 별도로 크림을 채우지 않아도 맛있는 애플파이를 맛볼 수 있다.
비트 슬라이스 케이크
붉은색은 비트의 본질이다. 항산화에 좋은 베타인이라는 성분이 드러내는 색이 바로 붉은색이다. 8월 말에 씨를 심고 10월 말 수확하는 비트는 샐러드나 수프로 먹지만, 붉은 색감을 활용해 디저트로도 만들 수 있다. 비트 슬라이스를 메이플시럽, 히비스커스와 함께 냄비에 넣고 맑고 투명해질 때까지 졸인다. 히비스커스는 비트의 붉은색을 끌어올리고 향을 더해준다. 투명하게 익힌 붉은 비트 슬라이스는 본래 아삭했던 식감이 쫀득한 식감으로 변한다. 밀가루, 버터로 달지 않게 구운 케이크에 생크림과 함께 얹으면 맛의 조화는 물론 시각적으로도 근사한 케이크가 된다.
잭 비 리틀 스쿼시 크렘브륄레
버터넛 스쿼시도 국내에서는 ‘땅콩호박’으로 부르며 보통 호박으로 통칭하지만, 스쿼시는 호박과 다른 종이다. 정확히 말하면 호박은 쿠커비타(Cucurbita)로 분류되는 스쿼시 중 하나다. 따라서 세상에는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꽤 많은 종류의 스쿼시가 존재한다. 보통은 당도가 적은 채소의 특성에 충실해 샐러드로 먹거나 수프로 즐기는데, 잭 비 리틀 스쿼시(Jack B Little Squash)는 모양이 예쁘고 앙증맞아 디저트나 장식용으로도 자주 활용된다. 잭 비 리틀 스쿼시의 속을 파고, 설탕을 조금 넣은 마스카포네 치즈, 그릭 요거트, 리큐르가 들어간 크림을 채우면 재미있는 가을 디저트가 된다.
단호박 푸딩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종류의 호박이지만, 국내에서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단호박을 수확한다. 겨울과 봄에 만나는 단호박은 뉴질랜드에서 난 것이 대부분이다. 단호박을 찌고 으깬 것에 두유나 귀리 우유에 불린 치아시드, 메이플시럽을 넣고 섞는다. 퓌레보다는 꾸덕꾸덕한 식감으로 농도를 조절해 섞고 그래놀라와 단호박 말린 것을 올리자. 가을의 아침 식사로 추천한다.
가을은 도시 농부의 한숨을 돌리게 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방치하는 계절이고, 사계절 중 가장 느슨한 계절이에요.” 집과 작업실 앞에 밭을 두고 직접 농작물을 키우는 박현신 요리연구가가 말한다. 농사일은 초봄과 초여름이 제일 바쁘고, 모든 작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은 때마다 수확해야 하고 겨울에는 봄을 준비해야 하니, 가을이 그나마 여유롭다는 것이다. 폭염과 폭우.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여름을 보낸 농작물은 주어진 여건에 따라 수확 시기와 생산량에도 변화를 보인 해였다. 거친 여름을 보낸 작물을 모두 거둬들이고 난 9월의 어느 날, 그는 가을 식재료로 몇 가지 디저트를 만들었다. 농작물은 무심히 기다려 느리게 키우고, 레시피는 빠르고 간단해야 하며, 스타일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박현신 요리연구가의 철학이 담긴 디저트다. 올해 수확이 조금 늦은 듯한 무화과, 이제 막 밤나무에 주렁주렁 송이들이 달린 밤, 제대로 제철을 맞은 단호박과 사과 등을 활용했다. 밭에 심은 토란이 서둘러 자랐다면 고구마탕 같은 디저트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또 다른 뿌리채소인 비트가 채웠다. 무와 토란 모두 서리가 내리기 전인 11월에 무르익으니 뿌리채소를 가지고 따뜻한 요리를 만드는 시기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박현신 요리연구가는 요리를 하기 위해 식재료를 찾는 것보다, 땅이 계절에 맞게 내주는 식재료로 요리한다. 이는 자연과 요리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집과 작업실, 밭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순환한다. 가을의 맛을 담은 디저트들은 냉장고에 그득한 와인과 함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Editor
HAN JI HEE
Photographer
LEE JU YEON
Food & Styling
박현신(OrTo MaD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