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BETTER THAN SWEET
달착지근한 와인 한 모금, 음미하기 좋은 디저트 와인에 대하여
(왼쪽부터) 샌드만 올드 토니 포트 30
갓 생산된 다양한 품종의 빈티지 와인을 루비 포트 와인이라 칭한다. 루비 포트 와인을 30~40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 및 산화시켜 병입한 와인으로 생산량이 매우 한정적인 데다 퀄리티도 높다. 황갈색을 띠는 것이 특징으로, 위스키와 비슷한 오크 터치와 견과류·바닐라 등의 실키하고 스파이시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750ml, 29만원.
엠 샤푸티에 리브잘트 1987
짙은 붉은색을 띠는 엠 샤푸티에는 라즈베리와 블랙베리의 깊은 풍미가 느껴지며, 뒷맛에서 전해지는 타닌감이 매우 뛰어나다. 다크초콜릿 같은 디저트와 함께하거나 단단한 치즈와 좋은 페어링을 이룬다. 500ml, 8만5천원.
마르쿠스 몰리터 아우스레제 2017
독일 모젤 지역은 ‘늦수확 와인’으로 유명한데, 아우스레제는 여기에 속한다. 섬세한 살구 타르트나 복숭아 아로마가 코끝에 감돌며, 과하지 않은 달콤한 맛 사이로 산미가 뚫고 나오는 반전 매력과 알싸한 뒷맛이 특징이다. 30년 이상 장기 숙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750ml, 11만5천원.
귀부 포도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테른 지역은 온화하고 건조한 날씨와 물안개 자욱한 습도 높은 날씨가 밤낮으로 교차하는데, 극단적인 날씨로 인해 포도는 눅눅하거나 마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포도에 귀부병이 생긴다. 귀부병이란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일종의 회색 곰팡이균이 포도 껍질에 달라붙어 수분은 증발하고 당분만 농축되는 현상을 말한다. 균이 포도에 번식하면서 특유의 풍미가 생성되는데, 이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신맛과 단맛이 적절히 어우러진 디저트 와인이 탄생한다. 소테른 지역에서 나는 가장 유명한 디저트 와인은 샤토 디켐이다. 최고의 와인 등급을 받은 바 있는 귀부 와인의 종결자 샤토 디켐은 존재 자체를 보석과 같은 명품 와인으로 치며 30년 이상 숙성돼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생산된 첫해의 귀부 와인은 마치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듯 맑게 빛나는 호박색을 띠다가 숙성될수록 짙은 색으로 변한다. 오래 숙성될수록 색이 점점 옅어지는 레드와인과 반대다. 디저트 와인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기후에 민감한 데다 포도알마다 보트리티스 시네레아 균의 영향을 받는 정도가 제각각이기 때문. 그러니 수차례에 걸쳐 적당한 포도알을 골라내야 하는 까다로운 선별 작업이 우선시된다. 쪼그라든 포도알만 거두다 보니 수확량이 적어 와인 생산량 또한 현저히 적을 수밖에. 이쯤 되니 디저트 와인을 ‘황금 액체’라고 부르는 이유를 충분히 알겠다. 롯데백화점 한희수 소믈리에는 “디저트 와인은 매해 귀부 포도 수확량이 일정하지 않아 생산량을 가늠하기 어렵죠. 포도나무 한 그루당 귀부 와인 한 잔을 겨우 생산할 정도이니 그만큼 희소성도 높고요”라고 전한다.
디저트 와인은 포도 품종보다 만드는 과정에 따라 종류를 나눈다. 귀부병으로 쪼그라든 포도알에서 과즙을 추출하는 프랑스의 소테른, 수확기가 한참 지나 나무에 매달린 채 수분이 빠져 당도가 높아진 포도알로 만드는 이탈리아의 모스카토, 초겨울 열매를 나무에서 그대로 얼렸다가 압착해 만드는 독일의 아이스바인, 포르투갈의 포트 등 각각의 제조 방식에 따라 나름의 풍미를 지닌 매력적인 디저트 와인이 탄생한다. 그저 달콤한 맛 때문에 인기 높은 것이 아닌 전혀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포도에서 얻은 자연의 선물은 신비함을 넘어 경외감마저 든다. 디저트 와인이 귀히 여겨지는 이유다.
샤토 쉬뒤이로 2017
귀부 와인을 논할 때 프랑스 소테른 지역에서 생산하는 샤토 쉬뒤이로의 빈티지는 빼놓지 않고 언급된다. 최상급 와인인 샤토 디켐의 뒤를 잇는 프리미에 클라세 등급의 와인이다. 맑은 황금색에 한 번 반하고, 스파이시함과 달콤함이 공존하는 복합적 풍미에 또 한 번 반한다. 750ml, 20만원.
다우 빈티지 포트 2016
포르투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포트와인. 와인 발효 도중 주정을 첨가해 발효를 중단시키는 주정 강화 와인이다. 다우 빈티지 포트 2016은 한국에 단 120병만 수입되어 더욱 화제가 되었다. 750ml 25만6천원.
카르메스 드 리외세크 2012
소테른 와인의 아이덴티티를 경험할 수 있는 와인이다. 아카시아 향이나 배, 설탕에 절인 살구 같은 실키하고 향긋한 향이 매력적이다. 좋은 균형감과 단단한 구조감을 갖췄으며 풍미 깊은 과실 향이 긴 여운을 남긴다. 케이크나 달콤한 타르트, 과일, 초콜릿 같은 디저트와 궁합이 좋으며, 합리적인 가격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매력적. 750ml, 9만5천원.
Editor
LIM JI MIN
Photographer
SHIN HOON
Advisor
한희수(롯데백화점 소믈리에)
참고 도서
<역사와 문화, 이야기로 즐기는 와인 상식사전>(길벗) Illustrator @Jineewine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