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NOW AGAIN, SNEAKERS

세대와 스타일을 아우르는 클래식 스니커즈의 귀환

세실리에 반센과 협업한 아식스의 스니커즈.

어떤 룩도 단숨에 근사한 비율로 만들어주는 하이힐, 일상적인 옷차림에 부드러운 힘을 더해주는 매니시한 로퍼와 다채로운 스타일링의 재미를 선사하는 부츠 등 시즌마다 쏟아지는 새롭고 다양한 디자인의 슈즈에 심취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의 슈즈 쇼핑 리스트에서 스니커즈는 존재감이 미미한, 그야말로 ‘운동’을 위한 기능성 ‘운동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즐겨 입는 옷차림과 운동화는 대체로 불협화음을 이루기 일쑤였고 납작하고 투박한 운동화가 내 콤플렉스인 단신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힘주어 꾸민 듯한 스타일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발에 무리가 가는 슈즈를 멀리하면서 자연스레 편안하고 멋스러운 스니커즈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런웨이는 물론 거리에서도 다채로운 디자인의 스니커즈를 매치한 룩들이 트렌드로 떠올랐고, 수년간 이어진 팬데믹 탓에 ‘원마일웨어’의 유행 역시 꾸준히 이어지며 스니커즈를 향한 관심과 호기심은 과거에 비해 수직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뉴발란스 574 모델을 재구성한 미우미우 스니커즈.

이처럼 급부상 중인 스니커즈의 트렌드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점은 바로 10여 년 전 유행했던 과거 추억 속 스니커즈들의 귀환이 돋보인다는 것. 여전히 식지 않는 Y2K 트렌드의 흐름 덕분일까? 그때 그 시절을 대표하는 아이코닉 스니커즈 역할을 충실히 했던 클래식 모델들이 요즘 세대의 간택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에디터의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스니커즈 중에서 최근 다시 전성기를 맞아 몸값이 치솟은 대표적인 제품은 바로 아디다스의 삼바. 무려 1950년에 첫 출시된 아디다스 삼바는 혹한기 얼어붙은 경기장 위에서도 무리 없이 뛸 수 있도록 제작된 기능성 축구화로 탄생했다. 아디다스의 창립자 아돌프 다슬러가 자신이 만든 신발이 더욱 잘 보일 수 있도록 임팩트 있는 줄무늬를 장식해 더욱 인기를 얻은 슈즈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후반 길거리를 물들이며 멋쟁이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돌고 도는 유행 속에서 자취를 감추며 한동안 잊혔던 삼바가 유행을 견인하는 톱 셀러브리티들의 파파라치 사진에 등장하면서 현재는 길고 긴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레어템’으로 등극했다. 블랙핑크 제니를 비롯한 국내 아이돌은 물론 벨라 하디드, 헤일리 비버의 근사한 데일리 룩에 방점을 찍은 슈즈가 바로 삼바였으니까. 클래식 스니커즈 유행의 포문을 연 삼바에 이어 아디다스 가젤과 나이키 에어포스 원, 오니츠카 타이거의 멕시코 66와 푸마 스피드캣 등 다양한 레트로 모델들이 화려하게 귀환하면서 클래식 스니커즈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에는 한계가 있으니, 현재 크림(Kream)을 비롯한 수많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물론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의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도 이러한 스니커즈들은 웃돈을 주고서도 기다려 구입해야 하는 ‘한정판 아이템’ 대접을 받을 정도. 세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벨라 하디드의 다소 난해한(!) 옷차림부터 LA의 세련된 이미지가 연상되는 군더더기 없이 시크한 헤일리 비버까지, 서로 다른 스타일에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클래식 스니커즈의 다재다능한 멋은 덤이다.

왼쪽부터 발렌시아가와 만난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 최근 화제를 모은 티파니와 나이키 컬래버레이션.

클래식 스니커즈를 향한 요즘 세대의 열망을 간파한 럭셔리 브랜드의 영민한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아디다스와 파격적인 협업 컬렉션(이른바 ‘구찌다스’)을 선보였던 구찌는 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조화롭게 어울린 컬렉션으로 호평을 받았다. 패션에 무지한 이들도 단번에 인식할 수 있는 일종의 ‘기호’로 기능하는 아디다스와 구찌 로고가 장식된 컬렉션 중 아디다스 가젤 스니커즈는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한동안 잊혔던 추억의 이름, 가젤이 구찌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하자 쇼를 본 많은 이가 이 화제의 스니커즈를 꼭 구매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불태웠고, 이 효과적인 시너지는 이번 시즌에도 이어지며 스니커즈 마니아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구찌의 바통을 이어받아 아디다스에 러브콜을 보낸 또 다른 ‘협업 제왕’ 발렌시아가는 이번 시즌 뉴욕증권거래소라는 독특한 장소를 배경으로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발렌시아가의 존재감을 대변하는 아이코닉한 트리플S 외에도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 모델을 비장의 카드로 선보여 클래식 스니커즈 열풍에 힘을 보탰다. 런웨이를 힘 있게 누비는 스탠 스미스의 매력은 클래식 스니커즈의 또 다른 행보를 암시하는 예고편처럼 보였을 정도다. 한편 뉴발란스는 기존의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정하고 실용적인 스타일로 사랑받는 브랜드. 여기에 미우미우의 발칙한 사랑스러움이 더해진다고 했을 때, 이 매력적인 제안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뉴발란스 클래식 모델 574를 미우미우식으로 재해석해 선보인 협업 스니커즈야말로 여자들이 꿈꿔온 이상적인 스니커즈의 모습에 가까웠고, 전 세계적으로 솔드아웃 사태를 불러일으키며 오랜 역사를 간직한 스니커즈의 무한한 변신과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회자됐다. 또한 ‘어글리 슈즈’가 유행함에 따라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거나 오랫동안 잊혔던 브랜드의 반가운 활약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어글리 슈즈 혹은 대드 슈즈라는 별명과 함께 스니커즈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살로몬의 약진이 돋보이는데, 그야말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아버지들이 신을 법한 투박하고 유니크한 디자인에 매료된 이들 덕분에 살로몬의 몸값 역시 순식간에 치솟았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꼼데가르송, MM6 마르지엘라에 이어 최근엔 샌디 리앙과 협업해 위트 있는 터치를 가미한 색다른 스니커즈를 선보였으니, 살로몬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로몬과 비슷한 외모로 주가 상승 중인 아식스도 기존의 레트로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 세실리에 반센과 협업을 선보였다. 투박한 러닝화 위에 세실리에 반센의 로맨티시즘이 부드럽게 충돌한 운동화는 근사한 불협화음을 이루며 지금까지도 기약 없는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구찌와 아디다스의 아이덴티티가 조화를 이룬 가젤 스니커즈.

최근 5cm 이상의 하이힐과 발을 갑갑하게 감싸는 신발을 말끔하게 정리한 나의 공간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멋을 선사할 클래식 스니커즈들이 대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단정한 슬랙스와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는 화이트 컬러 스탠 스미스부터 투박한 등산화를 닮았지만 의외로 롱스커트에도 어울리는 살로몬의 트레이닝화까지, 뒤늦게 스니커즈에 푹 빠진 내 위시 리스트가 스스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처럼 긴장감 넘치는 슈즈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클래식 스니커즈의 독보적 질주는 현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새로운 흐름으로, 한동안 우리 일상과 편안한 발걸음을 함께 맞춰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위쪽 컬러 포인트가 돋보이는 샌디 리앙과 살로몬의 협업 스니커즈.
아래쪽 발렌시아가와 만난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

Editor
KIM MI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