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Walking Through The Sculptures

신작 에어매스 시리즈를 발표한 권오상 작가

권오상은 세상에 없던 사진 조각을 만든 조각가다. 존재하지 않았던 창작물의 방식은 획기적이었고, 조각의 육중한 무게를 가볍게 만들었다는 면에서도 혁신적이었다. 2020년부터 사진 조각이 갖고 있던 추상성에 천착한 권오상 작가는 지난해 자신의 조각에 공기를 주입한다. 사진 조각 내부에도 있던 공기다. 그런데 작가는 이전까지 공기를 감싸는 인화지 대신 패브릭을 선택하고, 조각의 규모와 양감, 원하는 형태에 대대적인 변화를 준다. 330m2 규모의 에비뉴엘 아트홀은 그러한 변화의 현장이다. 높이 3.2m, 가로 6m가 넘는 거대한 규모의 에어 매스 신작들이 전시장에 가득 들어차 있다.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1898~1986)의 청동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와상들과 함께, 그 사이사이 반짝거리는 사진 조각 정물들과 거울 지지대들이 놓였다. 전시 <AIR MASS: 바람이 다니는 길>은 독특한 미로 정원이 되어 묘한 감정의 산책을 이끌고 있다.

profile
권오상 작가는 200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1999년 대안공간 루프의 그룹전에서 처음 세상에 없던 사진 조각을 발표하고 2001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하며 근 25년간 현대미술가이자 조각가로 활동해왔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린 개인전과 기획전에 참여했고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 작업을 해왔다.

‘에어 매스’ 시리즈 사이에 선 권오상 작가. 높이 3m의 작품들 사이에 서면 작품이 거대한 바위처럼 보인다.

개인전 제목 <에어 매스: 바람이 다니는 길>은 어떻게 도출된 것인가요?
A: 중학생 시절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수채화를 공부하는데 선생님께서 “정물과 정물 사이에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공기가 흐르는 통로가 있는 조각들이고, 공간감을 내포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정적인 느낌도 났고. ‘더 플랫’ 촬영에서 사물을 배치할 때, ‘뉴 스트럭처’를 전시장에 놓을 때도 늘 그런 말씀을 염두에 두고 진행했어요. 전시 공간에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길을 따라 거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담긴 제목입니다.

2020년부터 시작된 ‘비스듬이 기댄 형태(Reclining Figure)’는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청동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요.
A: 제 사진 조각들은 내부에 어떤 지지체 없이 사진을 허공에서 구부리고 서로 이어 붙여 만들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형태가 일그러져 있었는데, 거기에 추상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부터 추상 조각을 구상하면서 형태에 사진을 붙이기 위한 지지체를 찾다가 헨리 무어의 조각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의 작품에서 추상성이 적용된 정도를 살펴보며 인체가 완전히 분해되어 있는 형태나 구멍이 있는 형태들을 연구했습니다. 사실 헨리 무어는 저의 선생님들 세대가 좋아했던 작가입니다. 아시아 도처에 엄청난 규모의 조각들이 놓인 것을 보면, 1950~1970년대 헨리 무어의 위용은 지금의 제프 쿤스를 능가하는 것으로 보여요. 아시아 정원에 놓인 괴석 또는 수석에서 보이는 구멍이 작품과 연관이 있고요.

특별히 와상에 주목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와상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조각의 한 형식이었습니다. 주로 왕이나 교황의 묘소 석관 위를 장식하는 조각들이 누워 있는 형태의 와상이었죠. 이러한 전통이 당시 조각의 쓰임새이기도 했기 때문에 관심이 커졌고, 여기에 동시대적인 이미지를 입히고 싶었습니다.

헨리 무어는 삶 자체에도 극적인 부분이 있어요. 그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요?
A: 관심을 갖고 볼수록 엉뚱한 덩어리들이 본 형태에 붙은 작품들이 많았어요. 이 덩어리에서 또 다른 상상력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보통의 조각가가 추상 작품을 만드는 것과는 달랐다고 할 수 있어요. 이후 자세히 알아보니 이 덩어리들은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의 지하철역 내부에 피신해 있던 이웃들의 형태, 어두운 곳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가족끼리 끌어안은 형태이거나 보따리 또는 아기를 안고 있는 형태였다는 것을 알았어요. 때마침 전쟁과 같은 코로나19 시기의 한복판에 있어서 이러한 작품 배경이 저에게 더욱 와닿았습니다.

태맨공 28의 난(Orchid of 28 Temenggong) 2013-2022, 비스듬이 기댄 형태 5(Reclining Figure 5) 2022, 세 조각으로 구성된 비스듬이 기댄 형태(Three Piece Reclining Figure) 2023

이번 와상들은 형태도 텍스처도 이전보다 부드러워요. 데오도란트 시리즈에서처럼 매끈하고 글로시한 텍스처를 갖고 있지 않죠.
A: 대단한 의도가 있지는 않고, 새 작품을 구상하며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고 유행을 타는 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처음 사진 조각은 반광택이었고, 2003년부터 코팅을 했습니다. 2020년부터 일련의 추상적인 와상이나 두상들을 등장시켰는데 무광 텍스처로 만들었어요. 특히 이번에 발표한 대형 와상들은 더 매트한 패브릭 텍스처를 갖고 있습니다.

돌과 나무를 깎거나, 흙을 빚는 조소의 클래식한 방식에 관심이 있나요?
A: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게 흙은 좀 쉬운 방식의 재료였고, 돌이나 나무는 저와는 너무 먼 세계와도 같았죠. 하지만 로망은 늘 가지고 있어요. 이젠 직접 하지 않더라도 3D 모델링과 CNC를 이용한 조각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대학에서 만든, 그러니까 아카데믹한 환경에서 나왔던 권오상의 작업이 궁금해요.
A: 대학 3학년 때 시작된 사진 조각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만, 그전에 아카데믹한 조각이라면 대학에 입학해 처음 만들었던 자소상이 떠오릅니다. 사실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모든 작품이 다 기억나고 거의 모두 소장하고 있어요. 심지어 예술고등학교 2학년 미술 전시를 위해 만든 테라코타 자소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 유리를 사용했다. 유리에 반사된 에어매스 시리즈와 정물이 묘한 합을 이룬다.

가구 작업이 그런 고전적인 방식이 아니었나 싶어요. 아라리오갤러리에서 2019년 김민기 작가와 <가구>전을 진행했고, 이후 장 프루베를 오마주하기도 했죠. 가구는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 김민기와의 협업은 조각가의 작업실용 가구로 시작됐고, 후에 개인적으로 발전시켜 장 푸르베 의자와 라운지 체어의 사진으로 사진 조각 가구를 만들기도 했어요. 가구도 하나의 조각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건축가의 가구와 사물에서 흥미를 느끼는데 다분히 조각적이기 때문입니다. 두카티나 엠브이 아구스타 같은 모터바이크들도 하나의 조각처럼 인식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해온 협업 방식은 작가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나요?
A: 협업을 즐기는 편인데, 조각가의 일하는 방식이 협업의 연속이라 그렇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페인팅 작가들의 작품 제작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협업은 슬쩍 놓고 도망가고, 떠넘기고 떠안고, 내 개인전 같기도 하고, 남의 개인전 같기도 합니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거나 작품을 주고받으며 힘을 얻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힘들거나 힘이 빠지는 협업은 해본 적이 없고, 그런 여지가 있다면 시작을 안 했겠죠.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해 협업을 진행하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A: 사실 조각은 협업의 역사입니다. 르네상스 때부터 조각 공방의 뿌리가 협업이었죠.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하면서 그림도 그리고 바티칸 성당도 설계했잖아요. 그는 ‘피에타(The Pieta)’를 스물다섯 살 때 만들었어요. 조각가의 입장에서 보면, ‘피에타’는 그가 시간을 많이 들여 제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기가 막힌 수준급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실력이 증명되었고, 이후 여러 조각가들과 길드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스듬이 기댄 형태와 은하(Reclining Figure & Galaxy) 2023

권오상의 사진 조각은 패션업계가 특히 사랑했죠. 커머셜 브랜드와 한 작업은 어떤 에너지를 주나요?
A: 커머셜한 에너지를 줍니다! 그것은 재화이기도 하고, 대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순조롭게 돌아가는 시스템과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친 강하고도 섬세한 에너지입니다.

지난 파리 패션위크에서 패션 브랜드 잉크와 합을 이뤘어요. 높이가 6m, 길이가 10m 정도 되는 조각이 런웨이를 장식했죠. 5월 25일 잠실 월드타워 야외 미디어 큐브에서도 쇼가 진행돼요. 협업에 가장 고려한 부분이 있나요?
A: 브랜드와 협업할 때 브랜드를 잘 나타내는 ‘뉘앙스’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잉크의 경우, 의상 텍스처들이 작품 표면에 잘 표현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이 텍스처들이 내 조각의 형태에 어떻게 매치될까 고민했습니다. 런웨이에 서는 모델 동선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와상 사이에서 걷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거대한 인체 같기도 하고 큰 바위 같기도 한 작품 사이사이의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번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은 백화점 공간이에요. 백화점에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 있나요?
A: 서울에서 자라서 백화점은 아무래도 익숙한 도시의 풍경입니다. 그리고 제 작품 또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 사물들에 눈길이 가는데, 그중에서도 시계들의 형태가 특히 그렇습니다.

비스듬이 기댄 형태와 데본렉스(Reclining Figure & Devon Rex)의 부분 2023

시계는 ‘더 플랫’ 시리즈를 비롯해 최근까지도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모티프였어요. 어떤 특성에 매료되었나요?
A: 남성 패션지를 많이 보던 시절이 있었어요. 조각의 포즈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잡지에 등장한 오브제로 정물을 만들고 싶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시계가 많더라고요. 나중에 알았지만 가격대가 높았어요. 백화점에서 직접 시계들을 봤죠. 평면에서 보는 볼륨과 실제와는 너무 달랐어요. 좋은 물건은 사실 좋은 조각을 보는 것만큼 좋더라고요.

전시를 진행할 때마다 새롭고자 하는 강박이 있을까요?
A: 신작은 직업적인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998년부터 사진 조각을 시작했고, 1999년 1월 대안공간 루프에서 있었던 그룹전에서 사진 조각을 발표했죠. 작품이 좀 알려진 후인 2001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어요. 2003년에 ‘더 플랫’을 만들었고, 2005년에 ‘더 스컬프처’를 시작했던 때가 30대 초반이었어요. 시리즈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사진 조각, 더 플랫, 더 스컬프처가 계속 서로 주고받으며 변하긴 했지만, 새 시리즈를 내지 말아야지 하고 버티다가 자연스럽게 ‘뉴 스트럭처’(2014), ‘릴리프’(2016)를 냈어요. 2020년 추상성이 강한 사진 조각을 만들다가, 지난해부터 에어 매스 시리즈가 시작된 것이죠. 사실 다 똑같아요. 직업적인 소명으로 다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없던 사진 조각을 만들며 조각가로서 국내외 아트신에 이름을 알렸죠. 많이 이뤘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전히 우선하는 꿈이 있나요?
A: 역사에 남는 것이죠. 교과서에는 제 작품이 실리지만, 종국에 바라는 것은 역사에 남는 거예요.

info
<권오상 AIR MASS: 바람이 다니는 길> 사진 조각으로 제작된 정물 12점과 ‘에어 매스’ 6점이 미로 정원처럼 설치되어 있다. 7월 16일까지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6층 아트홀. 문의 02-3213-2606

Editor
HAN JI HEE
Photographer
MIN HEE 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