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예술을 읽어주는 남자

예술과 관람자 사이를 연결하는 전시해설가 김찬용.

미술관은 사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예술가가 작품에 담아낸 생각과 의도를 공감하고, 때론 나의 삶을 반추하기도 하며 혹은 작품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한없이 잠겨버리기도 한다. 나와 작품 사이에서 전시해설가는 사유의 폭을 더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1세대 전시해설가로 불리는 김찬용은 관람객과 예술 사이에 무채색으로 선 채 작품을 읽어준다.

도슨트란 ‘소정의 정보를 전달하는 자’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 외에 어떤 설명을 더하고 싶나요?
A: 전시해설가라는 명칭은 제가 시작한 용어입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도슨트’라는 단어를 낯설게 생각했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직업명을 말하고 싶었어요. 예술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관람객들이 예술을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작가와 기획자의 이야기를 전달하죠. 관람객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안하되 예술의 깊이나 기획의 철학을 해치지 않도록 가볍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시해설가로서 객관적인 사실에 주목하는 편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견을 담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A: 처음 10년은 객관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전시해설가는 매개체로서 중간에 위치해야 한다고 여기고 팩트 체크된 정보만 전달하려고 했죠. 하지만 성실하게 정보를 전하는 것 외에 김찬용이라는 전시해설가만이 갖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에 대한 제 관점과 의견을 더하니 관람객도 더 공감하는 것 같더군요.

전시 해설을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치나요?
A: 상황마다 달라요. 몇 년 전부터 기획하는 전시는 적어도 1년 전에 전시 해설 의뢰를 하죠. 준비 시간이 넉넉하면 작가와 관련된 책과 논문도 챙겨 봅니다. 때론 며칠 전에 갑작스레 의뢰를 받을 때도 있어요. 최대한 준비를 많이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전시를 그렇게 준비할 수는 없죠. 때문에 변수에 잘 대응해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끔 국공립미술관에서 도슨트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데, 그럴 때 항상 스크립트를 써놓지 말라고 말해요. 해설을 외워서 하면 새로운 변수가 생겼을 때 대응할 수가 없어요. 작품을 그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한 후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해설을 풀어놓아야 하죠. ‘준비는 하되 버릇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해요.

전시해설가의 중요한 능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이타심.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해요. 전시해설가란 미술 전문직이 아니라 미술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곳에 서 있어야 동선에 문제가 없는지, 리액션이 비교적 적은 관람객은 혹시 잘 못 따라오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사용하는 표현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지는 않는지 다양한 지점을 생각해봐야 해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그 업에 대한 신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어떤 신념이나 대단한 가치관 때문에 오랜 시간 전시해설을 해온 건 아니에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건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미술을 좋아하니까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죠. 막상 해보니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10년을 보냈어요. 문득 현실적인 고민이 들었을 때는 다른 길을 선택하기엔 늦었어요. 뒤늦게 다른 일을 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만족스럽거나 행복한 선택이 될 것 같지 않았죠. 다른 선택을 주저하다가 다시 다음 전시에 참여하면 또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오늘이 된 셈이죠.(웃음)

그러고 보니 전시해설 할 때 늘 검은 옷을 입었던 것 같아요.
A: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이에요.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이 우선이지, 제 이야기에만 지나치게 주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미술관 안에서는 시각적으로 지워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검은 옷을 입어요.

지금까지 해설을 맡았던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A: 대학교에 다닐 때 교수님이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의 작품을 추천하셨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 알아보다 소름이 돋을 만큼 매료되었어요. 굉장히 개념적인 작가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색에 빠져들게 하죠. 그리고 그때 생각했어요. ‘눈으로 봐서 너무 낯설기만 한 예술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면 다르게 다가온다.’ 전시해설가란 일을 해보고 싶은 계기가 된 작품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2012년 곤살레스 토레스의 전시가 지금은 사라진 플라톤 미술관에서 열렸어요. 도슨트 공고가 뜨지 않았는데도 곤살레스 토레스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어요. 자원봉사로라도 참여하고 싶었고 바라던 대로 되었죠. 해설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 작품을 한참 바라봤어요.

여전히 미술이라는 영역이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들을 위한 조언이 있을까요?
A: 현대미술 전시에 가서 모든 작품을 3초씩 보라고 해요. 그렇게 작품을 많이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 그림은 왜 이런 색이 되었는지, 이 그림은 왜 이런 형태가 되었는지 멈춰 서게 되는 작품들이 생겨요. 그런 식으로 취향이 잡히면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돼요. 호기심을 가지고 즐기되 꼭 공부하려는 태도로 접근할 필요는 없어요.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레 기억하는 개념이 생기니까요. 처음부터 공부로 접근하면 오히려 취향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요. 가벼움이 계속되다 보면 쌓이고 쌓여 묵직한 취향이 될 거예요.

올해 어떤 전시에서 김찬용 전시해설가의 해설을 들을 수 있나요?
A: 지금은 DDP 뮤지엄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브리티시 팝아트> 해설을 하고 있어요. 5월부터는 한가람 미술관의 <라울 뒤피> 전시와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제이알:크로니클스> 전시를 함께 합니다. 롯데뮤지엄은 현대미술을 주로 다뤄요. 현대에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 혹은 근래에 활동했다가 단명한 예술가 위주로 전시를 기획하는데 ‘예술을 통해 이 시대를 바라보게 한다’는 관점으로 작가를 소개하죠. 현대미술이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때 전시해설가의 설명을 듣는다면 자신의 취향이 좀 더 확장될 수 있을 거예요.

Contributing Editor
PARK MIN
Photographer
LEE JE 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