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우아한 샤토의 부활

15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고성에서 즐기는 자급자족 라이프.

자신의 개성을 담아 아름답게 꾸민 샤토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피에르 소바주.

현관문을 열면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지는 저택 내부.

꿈은 구체적으로 그릴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자연 한복판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동물을 키울 수 있는 자급자족 생활 방식을 즐기고 싶었던 남자, 그래서 넓은 땅이 펼쳐져 있는 집을 찾던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이상적인 장소를 발견한다. 무려 105만6000㎡(32만 평)의 들판 위에 저택, 마구간, 농가, 예배당 및 별채로 구성된 15세기 샤토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 “처음 이곳을 봤을 때 외형에 압도되지는 않았어요. 관리가 되지 않아 황폐한 데다 겨울의 음울한 날씨까지 더해져 우울해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드넓은 공원, 거대한 볼륨의 계단을 보고 이 집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피에르 소바주(Pierre Sauvage)는 디올(Dior), 까스텔바작(Castelbajac)을 거쳐 인테리어 브랜드에 특화된 홍보 회사에서 20년간 일해온 홍보 전문가다. 지금은 인테리어 브랜드 카사 로페즈(Casa Lopez)의 디렉터이자 소유주가 되었다. 인테리어 전문가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경험과 감각을 쌓은 그는 이 낡은 고성을 두고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도전이 될 거라 예감했다. “문제는 집의 크기였습니다. 이렇게 큰 공간은 집처럼 아늑하고 편안하게 연출하는 게 쉽지 않고 자칫 호텔 같은 느낌이 들기 쉬우니까요.”

녹색 벨벳으로 커버링한 거실 벽은 창 너머 녹음이 우거진 정원과 연결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전적인 주철 욕조와 나폴레옹 3세 스타일의 앤티크 샹들리에로 꾸민 욕실.

피에르는 고성의 우아함을 완벽하게 되살리긴 어려워도 그 매력을 이어받고 자신의 개성을 더해 지속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공간 프로젝트를 함께 해온 건축가이자 복원가 프란츠 포티섹(Franz Potisek)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로부터 5년 간 긴 리노베이션의 여정이 펼쳐졌다. 각 건물마다 지어진 연대와 관리 상태가 달랐던 고성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고 개조보다는 복원에 가까운 작업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혹시나’ 했던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으니, 다름 아닌 붕괴 사고였다. 지하실의 대들보가 산산이 부서져 다른 두 개의 층이 무너져 이를 복구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위축된 건 아니었다. 피에르와 프란츠는 침실 하나를 욕실 두 개로 개조하는 등 레이아웃을 과감하게 바꿨고, 무엇보다 음울했던 낡은 공간에 화려한 빛깔, 기발함, 흥겨움을 마음 펼쳐놓았다. “저는 항상 색상에 집착했고 미니멀리즘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모으고 컬러를 섞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고전적인 공간 구조에는 강렬한 컬러와 패턴이 들어간 러그를 매칭해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죠.”

거울 프레임에 설치한 선반 위에 앤티크 도자기 컬렉션을 장식해 우아함이 돋보이는 욕실.

영국 텍스타일 브랜드 워너 하우스 제품으로 꾸민 게스트 룸.

과감한 보색대비가 돋보이는 거실 전경. 패턴 러그는 프란츠 포티섹이 카사 로페즈를 위해 제작한 것이다.

우아한 샤토의 부활
피에르가 수장으로 있는 카사 로페즈는 대담한 색조와 패턴이 조화를 이룬 카펫이 대표적 아이콘으로, 그는 자신의 브랜드에서 느낄 수 있는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고성에 불어넣고 싶었다고. 자이푸르 스타일의 복잡다단한 화조도 패턴 벽지로 장식한 침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타일로 마감한 욕실, 아름다운 보석 색상들을 적용한 벽과 소파가 돋보이는 거실, 밝은 스카이 블루와 버터를 닮은 옐로 톤이 조화를 이룬 주방 등 바닥부터 벽까지 공간마다 가득 찬 색채와 패턴의 향연은 보기만 해도 흥겹고 생기가 감도는 기분 좋은 경험을 선사한다. 한편 피에르는 샤토 특유의 귀족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도 잊지 않았다. 현관 전실은 그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 세이지 그린 톤의 벽면에 피에르가 미리 사두었던 라임 화이트 석고 몰딩 장식을 더해 꾸민 전실은 ‘웨지우드’ 전통 디자인인 재스퍼웨어 시리즈와 닮았고, 그 역시 이를 모티프로 연출한 거라 말한다. “저는 이런 스타일이 차분하고 우아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뉘앙스에 자신의 개성이 빠진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피에르는 웨지우드 스타일의 전실에 이전 집 소유자가 남기고 간 프랑스 신고전주의 스타일인 디렉투아르(Directoire) 데이 베드를 진홍색 벨벳으로 커버링함으로써 자신만의 색상 터치를 잊지 않았다. “개조 작업이 장기간에 이뤄지다 보니 옥션에서 마음에 드는 앤티크 가구와 소품을 살 기회도 많았지만, 이미 이 집에 있던 파손된 물건을 복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어요. 제가 원래 갖고 있던 컬렉션과 이미 이 집의 일부였던 가구와 소품의 혼합은 인테리어 디자인의 진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저택의 모든 공간에서 어느 하나 피에르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자주 애용하는 곳은 다름 아닌 주방이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아 꾸몄다는 주방은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식사 때 외에 업무를 볼 때도 찾게 된다고. “제가 지베르니 정원 근처에도 집이 있어서 모네의 집을 자주 찾았어요. 우리 주방은 그곳과 같은 색상을 사용했지만 더 밝고 화사한 톤이에요.”

침실의 시누아즈리 스타일 벽지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폴린 드 로스차일드(Pauline de Rothschild)가 소유했던 것이며 침대는 프란츠 포티섹 디자인, 러그는 카사 로페즈 디자인.

캐롤리나 어빙 텍스타일과 카사 로페즈 러그로 지중해 바다같이 푸른빛으로 물든 게스트 룸.

고성의 웅장함과 우아함을 한눈에 보여주는 계단부.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진행한 개조 작업에는 정원과 공원 등 외부 환경도 포함되었다. 특히 동물을 돌보며 사는 전원의 삶을 동경한 피에르에게 반려동물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정원과 목초지를 조성해주는 것은 당연한 임무였다. 수풀은 관리가 되지 않아 엉망으로 뒤엉킨 상태였다. 고성 부지를 둘로 쪼개놓은 듯 지형이 변형되어 있었고, 심지어 황폐해진 연못에서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침실에서 창문을 내다볼 때 빛과 푸른 녹음이 보이기만 하면 좋겠다는 비교적 소박한 희망을 품었던 피에르는 유능한 정원 디자이너 루이스 베네치(Louise Benech)를 섭외했다. 그는 중세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질서 정연하면서도 로맨틱한 정원과 목초지를 완성했다. 현재 여기에는 말 아홉 마리, 당나귀 두 마리, 양 열두 마리가 유유자적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며 피에르 또한 동물들과 함께 진정한 시골 생활의 묘미를 만끽하고 있다.

프랑스 느베르(Nevers) 지역에서 생산된 18~19세기 도자 접시를 벽면 가득 설치한 주방 내 홈 오피스.

침실 벽면과 같은 패턴 디자인의 타일로 마감해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게스트 룸.

파리의 18세기 아파트, 파리 근교의 시골집 그리고 이제는 노르망디 샤토까지, 자신이 꿈꾸는 모든 공간을 갖춘 피에르는 그중 이 노르망디 샤토가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라고 말한다. “제게 이 집은 엘도라도와 일맥상통하는 이상향입니다. 자연에 가까운 삶, 자급자족, 집을 떠나지 않고도 매우 활동적인 환경을 갖추고 평화와 고요함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모네의 집 주방을 참조해서 블루와 옐로를 주조색으로 사용한 주방. 가구는 프란츠 포티섹이 제작했다.

카사 로페즈 테이블 웨어, 캐롤리나 어빙 텍스타일 테이블 클로스로 로맨틱하게 연출했다.

Contributing Editor
LEE JUNG MIN
Photographer
AMBROIS TÉZENAS(PHOTOFO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