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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TIC CLASSICISM ON THE LAKE

낭만적 삶을 꿈꾸는 이탈리아의 주말 별장

아치가 돋보이는 프렌치 스타일 창문 너머 호수와 빌라가 보이는 라운지

계절의 변화가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집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참 나무와 밤나무, 단풍나무가 울타리처럼 에워싼 가운데 수련과 연꽃으로 뒤덮인 호수가 자리하고, 호수를 사이에 두고 한가로이 마주해 있는 두 채의 빌라. 봄과 여름이면 수면 위로 피어난 꽃들의 향연에 황홀해지고 가을이면 노을보다 붉게 물든 단풍에 취하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호수와 회색빛 고요함이 빚어내는 신 비로움에 빠져드는 집이라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이 곳은 관광업에 뜻을 품은 젊은 커플 젬마 리카르드(Gemma Richards)와 니콜 로 리냐노(Niccoló Rignano)가 일군 ‘라 폴레이아’(La Foleia)다.

“우리는 4년 전, 1월의 춥고 흐릿한 날 여기에 처음 방문했어요. 스산하기 짝 이 없는 날이었지만 실제 마주한 집과 주변 환경이 주는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 습니다. 신비로움이 감도는 것이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으니 말 이죠.” 당시 밀라노에 거주하고 있던 젬마와 니콜로는 가족의 지인으로부터 이 Freelance Editor LEE JUNG MIN Photographer FILIPPO BAMBERGHI 집을 추천받았고, 매물 사진을 본 후 호기심에 이끌려 답사를 왔었다. “숲과 호수 가 조화를 이룬 독특한 입지, 팔각형으로 된 빌라와 호수로 바로 이어지는 빌라 두 채 등 모든 존재가 놀라운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이 집과 정원에 ‘한눈에 반한’ 젬마와 니콜로는 그날 밤 이곳을 매입하기로 결정했고, 운명처 럼 그들의 숙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모네의 정원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라 폴레이아.

대학에서 각각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젬마와 니콜로는 졸업 후 자신들 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은 관광업이라 생각하고 이와 관련한 실무를 쌓기 위해 장기간 여행길에 올랐다. 이탈리아 각지를 돌고, 호주로 건너가 1년간 요리 사로 일하고 이후 3개월간 동남아시아 여러 곳을 도보, 자전거, 기차로 여행한 후 귀국한 그들은 3년간의 경험을 살려 숙박업에 도전했다. 밀라노에 다양한 타 입의 아파트 3채를 구해 공간을 직접 개조하고 꾸민 후 스테이 시설로 운영했다. 그리고 이들은 마음속에 품은 미래의 프로젝트를 위해 밀라노 외곽에 500㎡ 규모의 밭을 마련하고 직접 농사를 지었다. “자연이 그립기도 했고, 평소 염두에 두 었던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콘셉트를 실천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그 혜택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숙박과 요식업 분야에 ‘슬로 라이프’의 가치를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책장에 가려져 있던 벽화를 복원해 독보적인 인테리어를 완성한 빌라 파딜리오네

젬마와 니콜로의 설명을 들으니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말이 맞다. 밀라노를 떠날 계획이 없었던 그들에게 이 집은 호텔 사업을 위해 차근차근 쌓 아 올린 실력을 총체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상적인 무대로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이 집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강했어요. 원래 소유주는 90세를 바라보고 집과 정원은 10년 이상 관리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요. 저와 니콜로는 마법 같은 장소를 되살리고 싶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 이 장소에 왔고, 이 집 또한 우리를 맞이한 게 아닌가 싶어요.”

두 사람이 빌라 두 채를 구입할 당시 건물은 매우 낡고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1980년대 후반에 완공된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빌라로, 밀라 노의 수백 년 된 아파트에 비하면 신축에 속하는 편. “이곳은 고유의 정체성과 영 혼이 강하게 살아 있어 가능한 한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로 했어요. 오히려 집과 정원이 지닌 과거의 아름다움을 되찾아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빌라는 젬마와 니콜로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예전의 영광을 찾았다. 전기, 하수 시스템, 냉난방, 욕실과 주방 등 설비가 들어가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인테리어 디자 인은 커플이 직접 해결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골동품 시장을 돌며 역사가 있 는 가구와 소품을 구했습니다. 새것은 선택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우리가 원하 던 인테리어 스타일 때문이었지만 지속가능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으니까요.”

투왈 드 주이 패브릭으로 단장한 침대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침실.

두 채의 빌라 중 눈에 띄는 한 곳은 ‘빌라 오타고날레(Ottagonale)’다. 이름 에서 알 수 있듯, 팔각형 평면에 연분홍빛 외관을 지닌 이곳은 각 면이 커다란 프 렌치 창문으로 되어 있는데, 프러시안 그린과 핑크를 주조색으로 사용해 우아한 낭만주의 스타일로 단장한 실내는 연꽃과 수련이 만발한 호수 전경을 품으며 아 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편 호수를 가운데 두고 맞은편에 자리한 ‘빌라 파 딜리오네(Padiglione)’는 원래 이 집안에 존재하는 멋진 자연 풍경을 되살리며 독보적인 자태를 드러냈다. “집을 손보면서 책장 뒤에 숨겨져 있던 프레스코화 를 발견했어요. 벽화는 이 집의 첫 번째 소유자가 연출한 것인데, 그다음 소유주 는 거대한 책장으로 이를 모두 덮어버렸던 거죠.” 길게 뻗은 길 양쪽으로 나무들 이 줄지어 서 있는 정원 풍경을 원근법에 충실해 그린 눈속임 기법을 사용한 벽 화는 인테리어 메인 테마가 되었고, 그 결과 침실 창가에 벽화 장인이 그린 담쟁 이덩굴이 더해지며 집 안 전체가 푸른 정원 그 자체가 되었다.

고전미를 살린 욕실에서도 정원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젬마와 니콜로가 정성을 기울인만큼 본래 모습과 분위 기를 되찾았지만 정원과 호수는 그들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오 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탓에 황폐했던 호수는 해조류로 가득한 데다 냄새도 좋지 않았다. 니콜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은 천연 샘물을 끌어다 호 수를 부활시키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되게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호수 에는 일 년 내내 모기 유충을 먹는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덕분에 여름에 모기가 거의 없답니다. 호수에는 다른 동물 친구도 많은데, 특히 야생 거위나 왜가리가 와서 알을 낳고 가족을 꾸린 다음 이동하는 모습은 실로 아름답죠.”

호수 전망을 품은 테라스는 빈티지 정원 가구로 꾸몄다.

자연의 황홀함을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는 라 폴레이아의 호수와 정원은 이 전 주인이 기초를 잘닦아놓은 덕분이기도 했다. “철학자와 식물학자였던 부부 는 지나치게 다채롭거나 복잡하지 않은 심플한 스타일의 정원을 완성하기 위 해 유명 정원사 지앙프랑코 주스티나(Gianfranco Giustina)를 섭외했다고 해 요.” 이탈리아 북부 라고 마조레(Lago Maggiore) 지역에 있는 보로메안 제도 (Borromean Islands)의 전 수석 정원사이자 유서 깊은 영국 왕립 원예 학회이 자 가드닝 자선단체(Royal Horticultural Society)에서 2014년 세계 최고의 정원사로 선정된 지앙프랑코는 다시금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이 정원에 생명을 불 어넣었다. “등나무, 일본 적송, 덩굴 수국 등 정원에 있는 모든 꽃과 식물은 우연 히 자라난 게 아닙니다. 지앙프랑코는 1년에 두세 번 피는 일본 황제 정원의 수생 붓꽃과 같은 희귀 식물과 품종을 우리 정원에 서식하게 할 만큼 열정을 다해주었 죠. 덕분에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특별한 정원을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4000㎡ 규모의 호수, 이를 둘러싼 정원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듯한 고풍스 러운 빌라 두 채. 젬마와 니콜로의 용기와 열정으로 되살아난 ‘라 폴레이아’는 시 시각각 한여름 밤의 꿈같은 풍경, 모네의 그림 속 정원, 프랑스 궁정의 연회를 떠 올리게 하는 경이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빌라를 매입한 후 지금까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커플은 살면 살수록 자신이 소신껏 빌라를 가꾸고 호텔로 운영 하는 것이 틀리지 않았음에 희열을 느낀다. 밀라노에서 50분, 공항에서 불과 20 분 거리에 있지만 마치 다른 세상 혹은 행성으로 이동한 듯 특별한 휴식처라는 평가를 들을 때면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우리는 방문객이 고급스러우면서도 진정성 가득한 장소에서 여유와 낭만을 느끼기 바랐습니다. 그래서 반짝이는 골 드로 연출한 귀족적인 느낌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피했죠. 원래 이 집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정겨운 시골 별장 같은 분위기를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젬마와 니콜로는 이곳만의 특별함과 정직한 분위기 사이 의 균형감을 올바르게 잡아주는 요인으로 가구부터 식재료에 이르기까지 그 품 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커플이 이곳에 상주하며 호텔을 운영하는 것 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젬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니콜로는 운영 및 직원 관리 등 현장 실무를 담당한다. “저희가 오랜 시간 공유한 경험이 많고 사업적으 로 뜻을 같이한다 해도 말처럼 모든 일이 쉽지는 않아요. 표준 근무 시간이란 것 이 없어서 쉬지 않고 몇 주, 몇 달을 보내는 경우도 잦아, 시간 관리에 매우 유연 하게 대처해야 하죠. 동료로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도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약 해지면 다른 사람이 강해져야 하고 그러다 둘이 힘을 합쳐야만 해결되는 일도 있고 말이죠. 결국 우리는 매일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젬마는 라 폴레이아를 운영하는 것은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아름답고 열정적이면서 두렵고 짜릿한 모험에 승선한 기분이라 표현한다. 이탈리아 여행 이 허용되지 않았던 팬데믹 기간에도 변함없이 문을 열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 그녀는 이 모험의 최고 파트너는 니콜로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오랜 시간 공간을 복원하고 다듬으며 살다 보니 집과 관련한 모든 장단점을 알게 되면서 공간과의 유대 관계가 강하게 형성되었습니다.”

슬로 푸드를 즐길 수 있는 가든 레스토랑.

장인정신이 투철한 니콜로는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를 맞추기 위해 4~5배 이상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공간을 만들었다. 그 만큼 라 폴레이아에는 이들의 열정과 영혼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고, 여기서 가 장 좋아하는 공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은 어쩌면 우문일 수밖에 없을 터. “다양 한 이유로 사랑하는 장소가 너무 많아요. 하지만 봄과 여름, 아침에 일어나 커피 를 마시고 거니는 정원에 대한 감동은 우리 둘 다 같습니다. 프레스코화가 있는 빌라 파딜리오네의 살롱에 있다 보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묘한 설렘을 느 낄 수 있어 좋고요.”

뜻하지 않게 시작한 호텔 사업이지만 돌이켜보면 세계 일주, 밀라노의 작은 아파트 스테이, 농사 그리고 지금 라 폴레이아에 이르기까지 젬마와 니콜로는 순차적으로 꿈을 향한 항로를 밟아왔다. 이탈리아어로 ‘어리석은, 광기’라는 폴리 아(Follia)와 같은 의미를 지닌 라틴어 폴레이아(Foleia)를 호텔 이름으로 택한 젬마와 니콜로, 그들의 우직한 열정이 빚은 휴식처 곳곳에는 지금 찬란한 봄과 여름을 예고하는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Freelance Editor
LEE JUNG MIN
Photographer
FILIPPO BAMBERGHI